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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944년 7월 미 해병 2개 사단이 태평양의 일본 식민지 사이판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일본군 수비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 사망한 사람이 미군 1만5천명, 일본군 4만3천여 명과 민간인을 합쳐 7만5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7월 8일 살아남은 일본군병사와 민간인 수천 명은 미군에 투항하기를 거부하고 사이판 섬 북단 80m 높이의 절벽으로 몰려들었다. 어린아이를 앞세운 이들은 ‘일왕폐하 만세’를 외치며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일왕을 교주로 여기는 황국사상에 병든 자들이었다. 나중에 일본인들은 처절한 패전의 역사를 간직한 이 절벽을 ‘만세 절벽(Banzai Cliff)’이라고 불렀다.

사망자 중에는 1100여 명의 한국인들도 들어있었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과 일본군 부대 시설 공사를 위해 강제 징용으로 끌려왔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한국인 노무자들은 일본군의 총칼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낭떠러지를 뛰어내려야만 했다.

당시 사이판서 유행했던 노래에는 “1등 국민 일본인, 2등 국민 오키나와인, 3등 국민 돼지•차모로(사이판 원주민), 4등 국민 조센진”이라는 가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일제가 겉으로는 일본인과 한국인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동등한 대우를 한다며 ‘내선일체’를 강조하였지만 속으로는 돼지보다 못한 민족으로 치부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아판 '만세절벽'에서 묵념하고 있는 아키히토 일왕 부처

2005년 6월 27일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아시아침략전쟁 패전 60주년을 맞아 이러한 비참한 역사를 간직한 사이판섬을 찾았다. 사이판섬을 찾은 일왕 부부는 사전 계획된 스케줄에 의거 원주민과 미군 추도시설인 ‘마리아나 기념비’, ‘2차 세계대전 위령비’를 헌화 추도하고 ‘만세절벽’을 찾아 묵념했다. 아시아침략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의 아들이 명확한 과거사 반성의 표시도 없이 만세절벽을 찾아 ‘일왕 만세’를 외치며 집단 자살한 일본인들의 넋을 위로하겠다고 나선 모습에서 전쟁의 가해국임을 잊어가는 일본을 본다. 즉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일련의 작태와 연관지어 보면 아키히토가 만세절벽을 찾은 것은 일본을 '전쟁 피해자'로 부각시키려는 속셈인 것이다.

그러나 일왕이 사이판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과거 전범들이 우글거리는 전장을 심방 할 것이 아니라 역사조작.황국사관에 물든 일본인들에 의한 침략.전쟁.대량학살주의적 광기(狂氣)요 진솔된 과거 반성인 것이다.

6월 28일에는 일왕이 지나가는 길에 슬쩍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추념 기념탑'을 방문했다. 1분 동안 헌화 없이 기념탑 앞 도로에서 묵념하고 황급히 돌아가는 깜짝 쇼를 벌렸다. 수행원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이 모습을 지켜봤다. 이것은 현지 한국 교민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마지못한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일왕의 한국인 전몰자 추념기념탑 위령 장면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일본 신문.TV 등 언론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기자들은 "이전부터 확정됐던 일정이 아니란 이유로 사진기자들이 수행버스에 못 탔고, 일부 취재기자가 버스에서 일왕의 위령 장면을 찍으려 하자 궁내청 관계자들이 촬영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궁내청은 "취재기자 중 누구는 카메라를 갖고 있어 찍고, 누구는 없어 못 찍으면 공평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금지했다"는 한심한 답변을 했다. 이 말은 지금도 일본은 언론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개한 국가이며 일왕이 4등 국민 한국인들에게 절하는 모습을 일본국민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약속의 발로인 것이다.

1970년 12월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게토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였다. 이 장면은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으로 전 세계에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었는가. 그러나 일본 정부는 틈만 나면 "그 동안 수 차례 (과거사를) 반성해 왔는데 뭐가 문제냐"고 한국과 아시아 각국에 항변한다. 독일의 발가락도 못 따라가는 일본과 아키히토 일왕이 진정 희생자에 대한 추도의 감정이 있었다면 최소한 헌화 정도는 있어야 했다.

오늘날 일본은 힘있는 미국에 대해서는 ‘금붕어 똥’과 같이 착 달라붙은 기생정치를 일삼고 있다. 하지만 이웃나라의 어떠한 말에도 무시하고 있다. 일본은 이웃나라를 조롱하는 조작된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하여 정부와 기업을 비롯한 수백 개의 집단이 들쥐들과 같이 떼거리로 후원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이웃국가들에게 문제없다고 큰소리 친다. 세계 각국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만 과거 역사를 미화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수상이라는 자는 아시아 각국을 침략하면서 각종 악행을 저질렀던 A급 전범들의 무덤인 야스쿠니신사를 호기에 찬 자세로 제집 드나들듯이 왔다 갔다 한다.

일본헌법에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이를 어겨가면서까지 군대를 보유하고 해외 파병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참혹한 전쟁 역사를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이미 보유한 군대를 합법화하기 위하여 헌법 개정에 서두르고, UN안전보장이사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미국 조야에 기를 쓰고 로비하고 있다. 독도를 비롯한 여러곳의 남의 나라 땅을 자기 땅이라고 집적거리기도 한다. 히로히토나 아키히토 일왕이 공식석상에서 일왕가 혈통이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 발언은 일본인들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된다며 아사히신문을 제외한 어떠한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미개한 일본을 지도했던 한국인을 돼지보다 못한 4등 집단으로 업신여기고, 일왕은 한국인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되며, 한국인 위령탑에 고개 숙이는 일왕의 모습을 일본인들에 절대 보여서는 안 된다며 철저히 통제하는 일본의 작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역사조작 비롯된 것이다. 고대 일본은 자체적인 유구한 역사를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자기네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를 조작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조작의 시작은 일본역사의 시작이라고 하는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묶어 부르는 ‘기기’이다. 그리고 조작된 역사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시기는 모순으로 가듯 찬 메이지 정권 때이다. 메이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비열한 3류 사무라이들은 그들의 비열함.잔인함과 무능력을 숨기기 위하여 수많은 역사를 조작하였다. 메이지 쿠데타는 일본에 있어서 근대화의 시작이었지만 동시에 역사조작 판도라 상자에 손을 담금으로써 그들의 조상과 고향. 민족정신. 평화철학 모두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그들은 총칼로 세계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참혹한 기록을 남겼다.

※ 주 1 : 우리는 통상 '역사왜곡'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왜곡'과 '역사조작'은 분명히 다르다. '왜곡'이란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면 '억지 주장이나, 비틀어서 구부러지게 된 것'등의 의미이다. 즉 중국이 고구려역사를 동북공정에 의거 고구려를 그대로 둔채 한반도역사에서 중국의 변방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역사왜곡에 가깝다.
그러나 이 곳 '역사조작' 카테고리에서 다루는 사실들은 '역사조작'이다. 즉 일본은 그들의 우월성을 날조하기 위하여 일본서기에서 없었던 역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있었던 사실을 감추거나 다른 의미로 조작을 해왔다. 칠지도나 광개토태왕비는 그 곳에 새겨진 글자를 예리한 도구로 다른 글자를 바꾼 것은 왜곡이 아니라 조작인 것이다. 따라서 이하 '역사조작'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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