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접속 회원가입
아이디 / 비밀번호찾기 

 일본어의 비밀

 메이지 유신의 실체

 역사조작 실태

 야스쿠니 신사

 독도

 동해

 명성황후 시해사건

 관동대학살

 코무덤

 위안부(성노예)

 우키시마호 대폭침

 창씨개명

 일한병합(일한병탄)

 가미가제(神風)의 실체

 역대 제왕(諸王) 현황

 

◎공 지 사 항◎

※ 나르샤학당

※ 한류열풍과 좀비사무라이의 천 년 비밀

[more]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목차 바로가기>> 

성노예에 대한 세계의 시각

도쿄 국제 여성 전범법정
여성을 전시 성노예(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를 단죄하기 위해 2000년12월 도쿄에서 열린 ‘국제 여성 전범법정’은 히로히토(裕仁) 일왕과 일본 정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가브리엘 맥도널드 구(舊)유고 국제전범 법정 전(前) 소장 등 4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로 기소된 히로히토 일왕과 옛 일본군간부 등은 인간의 노예화. 고문. 살인. 인종적 이유 등에 의한 박해 등을 금지하고 있는 ‘인도에 대한 죄’를 위반했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아시아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을 둘러싸고 국제 관습법으로 정착돼온 인도에 대한 죄가 적용된 것은 처음이다. 재판부는 특히 히로히토 일왕에 대해 “실질적인 일본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위안소 설치 등 일본군의 잔학 행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한 기소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로써 일제가 아시아침략 전쟁 패망 후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설치된 극동 국제군사재판에서 사실상 미국측의 주도하에 기소를 모면했던 히로히토 일왕은 전후 반세기 만에 국제 사회에서 전쟁 범죄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일본의 국가 책임에 대해서도 “일본군이 여성을 전시 성노예로 동원, 마치 군수물자처럼 취급하면서 고문과 강간을 자행하고 성 서비스를 강요한 행위는 당시 일본이 가입, 비준했던 인신매매 금지 조약, 강제 노동 금지 조약 등의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히 “일본 정부는 전후 위안부 관련 문서를 소각하는 등 만행 사실을 은폐로 일관하면서 국제법의 정의에 비추어 마땅히 져야 할 법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며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인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일본군 성노예 등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 행위를 단죄하는 첫 국제 민간 법정으로 주목을 끌었던 도쿄 여성 법정에는 히로히토 일왕 등 모두 25명이 전범으로 기소됐었다.



국제여성법정
일본군 성노예 문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2001년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여성법정’이 일본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특히 국제여성법정은 2차대전 중 일본과 싸웠던 연합국 측에 대해 성노예에 관한 기록 공개를 요구하는 한편, 히로히토(裕仁) 前 일왕을 기소하지 않은 배경을 담은 문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 법정은 가브리엘 커크 맥도널드 전 舊유고 전범법정 수석판사가 재판장을 맡았다. 맥도널드 판사는 총 240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성노예(위안부) 제도는 일본 정부와 군대에 의해 입안, 설치되고 관리·유지·조장됐다”면서“고도로 통제되고 제도화된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위안소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채 무장경비병의 순찰 보호를 받았으며 일부 여성은 동굴에 임시로 만들어진 위안소에서 군표를 사서 차례를 기다린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밝혔다. 판결문은 이어 “성노예(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은 지난 56년간 관련자를 처벌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충분하게 사과하지 않으면서 배상도 하지 않은 일본 정부에 있다”고 판시했다.

유엔인권기구
유엔인권위원회의 한 보고서는 무력 분쟁 중 성노예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일제의 아시아침략 전쟁 중 비인간적인 군대 성노예 운영과 관련하여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배상. 전쟁범죄 책임자 처벌 등을 권고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군대 성노예와 인신매매 등 여성폭력에 관한 국제사회의 권고 이행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디카 쿠마라스와미(Ms.Radhika Coomaraswamy) 유엔특별보고관은 2003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59차 유엔인권위에 제출한 여성폭력에 관한 최종보고서에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군 성노예로 억류됐던 ‘위안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아직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한 범죄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들의 대다수도 처벌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과 정부의 배상 책임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 지난96년과 98년의 유엔인권위 결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보고서는 이와 함께 일본은 인신매매를 당한 희생자들의 처우에 관해 국제사회가 내린 많은 권고들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는 인신 매매된 여성들을 불법 이주자들로 간주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은 무력분쟁 중 성폭력에 관한 문제와 관련해 “세계의 대부분 국가들이 서명한 제4차 제네바 협약은 비록 ‘중대한 위반’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전시에 자행된 강간을 금지행위로 간주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은 전쟁 중 강간은 전쟁범죄 또는 반(反)인도적 범죄라는 주장을 폈으며 이러한 반론은 특히 ‘위안부’ 여성과 성노예 문제가 자신들에게 제기됐을 때 일본 정부 관리들에 의해 강력하게 개진됐다고 비판했다.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은 “이러한 간격을 메우는 것이야 말로 국내와 국제수준에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단체와 개인이 자신들의 활동을 집중해야 할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라고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불처벌’ 관행의 종식을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은 지난 57차 유엔인권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과거에 강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자행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엔회원국들이 조사와 기소,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본 군대위안부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여성 폭력자들에 대한 불(不)처벌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하고 있다.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은 제58차 유엔인권위원회 참석 후 기자간담회에서 “일제하 군대위안부는 보스니아 사태를 계기로 국제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전쟁과 무력분쟁시 여성에 대한 강간 등 조직적 성폭력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사례라는 점에서 (최근의 성폭력 사례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은 "일본이 민간단체를 통해 설립한 ‘아시아여성기금’은 군대위안부 희생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舊 유고전범법정(ICTY)이 최근 판결을 통해 강간과 성노예가 반(反)인도적 범죄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2005년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속개된 제61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도 성노예 문제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일본은 각국으로부터 집중 난타를 당했다.

특히 북한 대표부는 "일본은 전시 강간은 전쟁범죄나 반인륜 범죄가 아니라고 생억지를 쓰면서 절대 다수 피해자들이 반대하는 '민간기금'을 통한 위문금 지불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해보려 하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편 한국.미국.일본.영국,네들란드.캐나다.뉴질랜드.중국.대만.필리핀.북한을 포함한 11개국 87개 NGO는 루이즈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에게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의 안보리 진출에 반대한다는 공동성명를 전달했다고 한다.

▲필리핀 성노예(위안부) 여성들의 항의 집회(연합뉴스)


UNHCHR
2002년 8월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UNHCHR)은 ‘위안소’ 등을 비롯해 무력 분쟁 중에 자행된 어떤 형태의 성 노예도 국제인권 및 인도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로 간주된다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보호 및 처벌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로빈슨 인권고등판무관은 제54차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제출한 ‘무력 분쟁 중 조직적 강간, 성노예와 유사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영토점령을 비롯한 무력분쟁은 성폭력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같이 촉구했다. 보고서는 특히 무력분쟁 기간에 자행된 성폭력과 성노예 행위에 대한 불처벌 관행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정부, 그리고 민간단체들의 정치적 의지와 단합된 행동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폭력과 성노예 행위를 저지른 범법자들에 대해서는 국제.인도법이 적용될 수 있지만 예방. 조사. 처벌. 보상 및 재활 등을 비롯한 모든 법적, 초법적 대응에 있어 이러한 범죄들이 각별히 성 차별과 연관될 수 밖에 없는 속성과 파장이 고려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로빈슨 인권고등판무관은 舊유고전범법정(ICTY)이 최근 판결을 통해 강간과 성노예가 반 인도적 범죄라는 점을 인정한 것은 여성 인권보호에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특히 2002년 7월 발효된 국제형사법원에 관한 로마조약에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권고를 반영해 강간, 성폭력, 그리고 성차별과 관련된 범죄들에 관한 특별조항이 삽입된 것은 중대한 진전이며 국제형사법원의 향후 판정은 국제법의 관점에서 성차별에 관한 폭력에 대한 법체계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보고서에 일제하 군대위안부를 뜻하는 ‘위안소(comfort stations)’라는 용어와 무력분쟁의 대상에 ‘영토점령’이란 표현이 명기된 것은 일본 정부에 대한 법적책임 인정과 배상을 권고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유엔특별보고관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인신매매담당 자문관 앤 갤러거 여사
앤 갤러거 자문관은 일본에 의해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의 성격에 관하여 "아시아여성기금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책임인정 및 배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별개의 것"이다. 일본의 조치는 서방언론에 의한 이해가 부족한 형편이며, 여성인권 차원에서 인신매매와 폭력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일본의 군대위안부 문제를 언급하겠다"라고 피력했다.

국제노동기구(ILO)
ILO는 일본정부가 ‘아시아여성기금’과는 별도로 조속한 시일 내에 군대위안부 희생자에 대한 보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ILO는 2001년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군대위안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청구인들 대다수가 ‘아시아여성기금’에 의한 보상을 수용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일본정부가 청구인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단체들과 협의를 해서 더 늦기 전에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희생자들에게 보상할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ILO이사회 산하 ‘협약 및 권고 적용에 관한 전문가위원회’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 하 강제징용 문제에 관해서도 “일본정부가 희생자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처해 나갈 수 있기를 거듭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는 2000년 11월 23일부터 12월 8일까지 비공개로 열린 일본의 ILO협약29호(강제노동금지) 위반과 관련해 제출된 진정서에 대한 전문가위원회의 협의결과를 총회보고를 위해 정리한 것이다. 일본은 지난 1932년 ILO의 강제노동금지 협약을 비준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이른바 군대 ‘위안소’에 수용된 여성들의 심각한 인권침해와 성적 학대를 앞서 지적한바 있으며, 이는 강제노동금지 협약의 요건과 위배된 것으로 적절한 보상의 근원이 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특히 (희생자 피해에 대한) 구제는 오직 ILO협약의 책임 있는 당사자인 일본정부에 의해서만 제공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위원회는 일본정부가 국제법상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희생자에 대해서는 법적 배상을 비롯한 완전한 보상과 함께 책임자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 유엔인권소위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의 보고서와 반인륜적 범죄로 피해를 당한 희생자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 유엔인권소위 결의안이 채택된 사실도 상기시켰다. ILO는 앞서 지난 98년 일본 군대위안부가 ILO의 강제노동 금지 협약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일본 오사카(大阪) 특수영어교사노조는 지난 95년 6월 일본 군대위안부가 ILO협약에 위배된다는 진정을 ILO에 제기했으며, 이어 98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의 포로심문 기록

아시아침략전쟁 당시 일본군뿐 아니라 일본 기업들도 한국인 여성들을 이용해 ‘기업 위안소’를 운영했음을 보여주는 문헌기록과 사진 등이 2003년 1월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조선일보(2003.1.4)에 공개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鄭鎭星) 교수와 미국 UCR 장태한 교수는 지난 6개월 동안 한·미·일 10여 명의 학자들이 공동 발굴한 성노예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고, “일본의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같은 기업들이 일본 정부의 장려· 묵인에 따라 노무자 대상의 기업 위안소를 일본 본토에서 운영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 등에 따르면 기업 성노예의 규모는 노동자 1000명 당 40~50명으로 총 1만5000~2만여 명에 달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그 근거로 일본 육군성과 대동아성 기획원의 공문서, 기업 위안소에서 돈 대신 사용한 ‘금권’, 현재 후쿠오카(福岡)에 남아있는 기업 위안소 건물 사진 등을 제시했다.

▲필리핀 루손섬에서 미군 포로로 잡힌 한국인 성노예 여성에 대한 미군의 신상기록카드

육군성 정비국 전비과는 1940년 홋카이도(北海道)의 한 탄광회사에 보낸 공문에서 “탄광 내 노무자 생산성 향상과 성적욕구 해소를 위해 조선·중국 여성 창부를 유치할 것”을 지시했으며, 1942년 대동아성 기획원 문서에도 ‘노무자를 위해 위안소를 설치하라’는 내용이 나와있다고 정 교수는 밝혔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에 세탁부(洗濯婦) 등의 명의를 이용해 합법을 가장할 것도 지시했다. 기업 위안소의 존재는 지난 92년 일본 시민단체가 제기했지만 군 위안소 문제에 묻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편 장태한 교수는 2002년 7월부터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였다가 2002년 비밀 해제된 문건에서 발굴한 ‘미 정보부대(OSS)의 1945년 중국 쿤밍(昆明) 포로수용소 심문보고서’ 등을 제시하며 “위안부가 ‘강제와 사기’에 의해 끌려왔다는 것이 공식 기록으로 처음 확인됐다”고 밝혔다.
학자들에 따르면 NARA에서 발견된 기록은 1945년 전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붙잡혀온 수백 명의 아시아 출신 위안부들을 미군이 개별 인터뷰한 기록으로 한국 여성 23명 등 107명의 진술을 종합한 이 보고서에는
“23명의 한국여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기업이 위안소로 운영했던 것으로 확인된 일본 후쿠오카(福岡) 지역의 2층 목조 건물
성은 강압과 사기에 의해 위안부(comfort girls)가 됐으며, 이 중 15명은 ‘싱가포르의 일본 공장에서 일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적혀 있다. 미군이 작성한 이들의 프로필에는 사진과 지문·고향 등이 적혀 있었고, 직업란에는 ‘웨이트리스’나 ‘엔터테이너’ 등으로 기재돼 있었다.

장 교수는 NARA에서 발견한 중국 서적 ‘버마 전선 종군기’에 있는 일본군 연대장 타카미의 수첩 내용을 제시하며, 영국·프랑스 여성도 일본군의 성(性) 노리개가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일본 기업인 A,B사의 배를 타고 강제로 전쟁터로 갔다”, “일본군은 패색이 짙어지자 ‘위안부로 일한 사실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고 관련 학자들은 전했다.


한.미.중.일 4개국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국제회의
한.미.중.일 4개국 학자와 연구원 30여 명은 2001년1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가 주최하고 UCLA 한국학연구소 등이 공동 후원한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위안부.강제징용 등 일본의 전쟁범죄를 집중 조명했다.
미국에서 진행중인 한인 위안부. 징용소송 원고측 변호인인 배리 피셔 변호사는“미국은 나치 독일 강제노역 피해배상소송에서 유럽의 희생자들을 도와 결국 독일기업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내도록 했으나 아시아 피해자들에 대해선 일본편을 들어 이들의 정의추구 노력을 실질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며 “법정투쟁을 통해 제한적 범위에서라도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야시 히로후미 일본 간토(關東)-가쿠인대 교수는 “일본의 군위안부 제도 도입과 발전은 당시 일본의 모든 군(軍)조직과 행정조직의 총체적 개입에 의해 이뤄졌다” “일본 기업도 공범자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지량 중국 상하이(上海)사범대 교수는 “위안부제도는 군사적 성노예 제도로 일본 군국주의 전쟁범죄의 중요한 부분이며 여성인권을 짓밟은 가장 폭력적 성범죄”라고 비난했다.
강정숙 한국정신대연구원 연구원은 “사쿠(콘돔) 제조업체인 오카모토주식회사는 민수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생산품 거의 모두가 군위안소에서 비인도적 목적으로 쓰이는 군수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기이윤 증식을 위해 사쿠를 생산했다”고 밝혔다.
김민영 군산국립대 교수는 “일본의 국유철도, 연락선, 상선, 여행사는 모두 징용 노무자 및 위안부들의 동원 및 연행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돕고 이익을 누렸다”면서 “당시 일본이 통제경제 또는 동원체제가 일반적이었다 하더라도 해당 기업들이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던 만큼 결코 전쟁관련 책임이 무효화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창록 부산대 교수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및 그 부속문서의 조문을 살펴볼 때 한국인 개인의 권리까지 포기했는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 법률 144호(한일협정에 근거, 한국인의 대일청구권을 일방 제한) 역시 일본국 헌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는 만큼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재판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법부가 가지는 한계”라며 “인류 역사상 위안부와 강제징용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판에서 법적 정의가 세워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 본 유 죄
김창록 부산대 법대교수는 부산일보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지난 2001년 12월4일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특이한 판결이 내려졌다. '국가가 인가한 강간인 일본군 위안부제도에 대해 일본은 책임이 있으며, 일왕 히로히토를 비롯한 10명의 일본인은 유죄다’라는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의 판결이 그것이다. 이 판결은 우선 죽은 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한 판결의 주체가 국가의 법정이 아니라 피해국과 가해국 시민들이 구성한 '시민의 법정'이며, 그래서 판결을 집행할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이러한 판결의 특이성은 동시에 판결의 의의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판결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자는 죽어서도 법의 심판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또한 판결은, 법의 선언과 집행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그러한 중대한 범죄를 방치할 때는 시민들이 나서서 법과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 점에서 판결은, '약자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 중심의 20세기적 틀을 뛰어넘고자 하는 새로운 세기의 시도라고 보아 마땅할 것이다.
지금까지 '직무유기'로 일관해 온 국가들이 판결을 경청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 국가들에는,피해자들의 아픔을 방치해 온 한국 등 '피해국'들과,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범죄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은 미국 등 연합국 국가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판결에서 '유죄'가 선언된 일본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겸허하게 판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은 판결이 명하는 대로 진상규명 배상 명예회복 역사교육에 당장 나서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역사교과서 파동은 그 하나의 증거다. 게다가 9·11 이후에는 미국의 '전쟁'에 편승하여 자위대를 파병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일체의 전쟁과 전력을 금지하는 헌법 9조의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언뜻 생각하면, 70만 대군을 자랑하며 해외파병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는 한편에서 '전쟁하자'는 해괴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자위대의 파병이나 9조의 개정이 왜 문제인지 갸우뚱거려질 법도 하다. '전력을 가질 수 없으니 적이 침공해 오면 돌을 던지며 맞서야 한다'라는 일본 헌법학자들의 주장은 황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9조는 상징 일왕제와 함께 점령군사령관 맥아더가 패전국 일본에게 지시한 것이다. 점령의 편의를 위해 일왕제를 유지하기로 한 미국이, 침략의 원흉이라는 피해국들의 규탄으로부터 일왕제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금지라는 '피뢰침'을 고안해냈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곧 얼굴을 바꿔 자위대의 창설을 명령했고, 그 후 줄곧 9조의 개정을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9조는 55년 동안이나 개정되지 못했다. 그것은 9조를 개정하는 것은 곧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는 것이다라는 피해국들의 비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침략에 대해 책임은 지지 못하지만 9조가 있으니 걱정 말라'라는 것이 일본의 논리이고 보면, 일왕제에 의해 상징되는 침략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서 9조를 제거하게 되면 침략의 위협은 고스란히 되살아 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한 우파 정치인은 9조를 개정해서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위전쟁도 군대도 부정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상'은 그것만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을 지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도 비정상이다. 게다가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비정상'의 핵심이다.
그 점에서 '일본 유죄'를 선언한 판결은, 반세기 이상 방치되어 온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만시지탄의 응답일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이기도 한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