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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국주의 야욕의 ’발톱’ 드러낸 일본

 

미국은 일본의 아시아침략전쟁이 종식된 후 전후 처리에 있어서 독일과는 다른 방향으로 처리하였다. 일본이 약한 자에게는 잔인하지만 힘과 권력 앞에서는 비굴하리 만큼 약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주변국들의 의견을 묵살하였다. 즉 미국은 일본을 미국의 충견(忠犬)으로 만들기 위하여 일본 왕궁을 폭격하지 않았으며, 히로히토 왕에 대하여 전쟁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또 독일과 같이 분할 통치를 하지도 않으면서 엉뚱하게도 한반도를 분할하도록 소련에 종용하였다. 결국 이것은 미국이 충견을 자처한 일본에 대해 전쟁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에 대해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군사보호 및 핵우산 아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가장 먼저 특혜를 누리도록 하여 오늘날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재건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푸들(개)’ 주인인 미국에는 알아서 행동하지만 그 외 국가들에게는 안하무인으로 변하게 하여 오늘날 버르장머리 없는 일본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前민주당 대표가 “일본은 ‘금붕어의 똥’처럼 미국의 꽁무니만 따라다녔다” 고 비판하자 고이즈미 前총리는 "일본에 위기가 닥쳐도 유엔에는 지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며 "일본은 혼자서 평화와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만큼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일안보조약을 통해 동맹을 맺고 있다"고 강조하여 오로지 미국만 추종하겠다는 ‘신 탈아입미(脫亞入美)’ 정책을 선포했다.

미국의 품속에서 자란 일본은 밑을 볼 수 없는 거만한 스모선수와 같이 변하자 큐리오(QRIO)나 아시모(ASIMO: 일본에서 제작된 로봇)와 같이 피가 흐르지 않는 비열한 민족으로 변질되어 과거 제국주의적 망상에 빠져 들고 있다. 일본은 비대해진 지갑 두께로 군비 확장에 정신이 없고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前주한 일본대사라는 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지껄이는 등 그들이 필요한대로 해석하는 오만 방자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본이 또 다시 ‘대동아공영권’의 옛 꿈을 실현하려는 악랄한 몽상에 물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이 미국에 대해 가자미 눈치를 보면서 이웃 국가들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초어대(釣魚台 댜오위다오)

초어대는 동중국해 부근 해역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대만.일본 등 삼국 영유권 분쟁지역이다. 일본명으로 센카쿠열도(尖閣)이며 중국명으로는 댜오위다오이다. 초어대는 다섯 개의 작은 섬과 암초로 이뤄진 무인도군으로, 3류 사무라이들이 영토확장 야욕에 불타고 있던 1895년 일제가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고 한다. 그 동안 일본은 이 초어대를 자신들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하여 중국이나 대만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무반응으로 일관해 왔다. 중국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이 섬에 상륙하여 중국 땅임을 주장하자 일본은 이들을 강제 연행하는 등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댜오위다오는 중국영토였으며 중국 인민은 조국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결심과 의지에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 일본은 중국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하여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중의원 안보위원회는2004년 3월 ‘센카쿠열도 영토보존’ 결의를 했다. 그리고 자민•민주당의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 의원들은 센카쿠 열도 문제와 한국과의 독도 문제,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의원연맹’을 발족시켰다.

2005년 4월에는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상이 "중단 상태인 시굴권 허가 절차를 재개하라"고 주무 부서에 지시했다. 이것은 중국측이 말하는 이 지역 춘샤오(春曉)가스전과 돤차오(斷橋) 가스전 개발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이 개발 중인 춘샤오 가스전 주변 해역은 일본의 제국석유와 신일본석유 등 에너지 업체들이 1966년 시굴권을 신청해둔 상태였다고 한다. 그 동안 일본 정부는 양국 경계선이 확정되지 않아 마찰의 여지가 있다며 허가를 유보해 왔었다고 한다. 또한 대중국 엔차관과 관련 “고개를 숙여가며 돈을 빌려줄 필요는 없으며, 외교는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경론을 쏟아내며, 일본특유의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가지고 놀리듯 그들의 지갑을 가지고 노는 비열한 작태를 드러냈다.


2. 오키노도리(沖ノ鳥)섬
중국명으로 ‘충즈다오’ 일본명으로 오키노도리로 불리는 이곳은 일본 도쿄에서 태평양 방향으로 무려 1700km 떨어진 일본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위도상으로는 대만과 하와이 호놀룰루보다 더 남쪽에 있다. 이곳은 당초에는 만조 때에만 바닷물 위로 30㎝ 정도 솟는 산호초였다. 일본은 1987년 이 지역을 조사한 결과 수면에 드러난 바위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에 일본 건설성은 수장(水葬)을 막기 위해 1989년 6백억 엔(한화 약7천억 원)을 들여 이 곳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이 붓고, 주위에 철제 구조물을 설치하여 인공섬으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일본은 이 인공섬을 중심으로 200해리(1해리:위도1도의 60분의1로써 약 1852m에 해당됨) 배타적 경제수역(EEZ: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수역)을 선포하여, 오키노도리(沖ノ鳥)섬 주변 65만㎢(일본본토의 1.7배)에 이르는 광활한 대륙붕을 확보하게 되었다. 년간 시설 관리비만 2억 엔(한화 약24억원) 이상 들어간다고 한다.

이곳 주변은 코발트.망간 등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자원의 보고이자, 미군 함정들의 이동 경로다. 그리고 중국의 남지나해 진출을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일본은 이 섬이 행정구역상 오가사하라무라(小笠原村) 소속 도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 섬이 국제법상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정할 수 없는 '바위'일 뿐이라며 일본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2004년 12월 중국은 이 곳에 해양조사선 '과학1호'를 파견하는 등 해양 개척에 나서고 있다.중국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히틀러를 추종하고 있는 정신 나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東京都) 지사는 2005년 초 이 섬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1인 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국제해양법상 섬은 EEZ의 설정 근거가 되지만 바위는 영토로 인정받아도 주위에 EEZ를 설정할 수 없다. 아무튼 일본은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은 끝이 없으며, 거기에 쏟아 부는 정성과 돈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3. 쿠릴열도 남단 도서

이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것으로 일본식 표기로는 구나시리(國後)•에토로후(擇捉)•시코탄(色丹)•하보마이(齒舞) 이다. 일본은 홋카이도(北海道) 동쪽에 있는 이 4개 섬을 ‘잃어버린 북방영토’라고 주장한다. 홋카이도 도청에는 ‘잃어버린 북방영토를 찾자’라는 현수막이 연중 나부끼고 있다. 당국은 ‘북방영토대책본부’라는 상설기구를 만들고 '북방영토(4개 섬) 돌아오는 날 평화의 날' 이라는 간판까지 내걸어 거국적인 반환 운동을 경주하고 있다.

홋카이도는 17세기부터 북방의 여러 섬들과 왕래가 있었다고 일본은 주장하고 있다. 당시 홋카이도를 통치하고 있던 마쓰마에한(松前藩)은 1615년 동방 지방에 살고 있던 아이누(アイヌ)인들이 해달의 가죽을 공물로 보냈으며 마쓰마에한은 이를 다시 도쿠가와 막부에 바쳤다고 한다. 일본은 북방영토에 거주하던 아이누인들이 홋카이도 본도(本島)에는 서식하지 않는 해달을 공물로 보낸 것은 북방에 있는 섬들에 사는 아이누인들과 교역이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하며, 북방영토가 17세기부터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련은 1956년 일본과 공동선언을 할 때 하보마이,시코탄 2개 섬은 일본에 돌려주기로 합의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일본은 4개 섬 모두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2개 섬 만의 반환을 거절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러시아와 경제교류를 하면서 틈만 나면 영토 반환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 일본은 러시아에 차관을 제공하면서 남쿠릴열도 주변수역에서 한국어선들의 조업을 하지 못하도록 러시아에 조건을 걸었다. 그 결과 한국은 이 지역의 어장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한.러.일간 마찰은 단순한 어업분쟁이 아니다. 어업분쟁을 통해 이곳이 영토분쟁 지역임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면서 러시아에 영토반환 협상을 재촉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일부 학자는 영토와 관련된 일본의 관심은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4개 섬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 현재를 살펴보면 이러한 견해는 위험해 보인다.

한편 2004년 9월 2일 고이즈미 일본총리는 해양보안청 순시선 '에리모'호에 탑승하여 이 곳을 약 3시간 반 동안 돌아 보았다. 이는 영토집착과 신제국주의에 야욕에 불타는 일본인들 가슴에 불을 지폈다.

4. 독 도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는 미국이 필리핀 수빅만. 클라크기지에서 철수하고 러시아가 베트남의 캄란만에서 물러난 뒤 양 국가의 해양세력이 퇴조해가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의 대결장으로 변해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시점에 일본은 17세기 80여 년간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했고,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독도가 빠져있다는 이유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어 어린아이도 비웃을 일을 자초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대하여 1996년 2월12일 러시아 방송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영국의 ‘파이넨셜 타임즈’ 등은 일본의 영토확장과 민족주의 부활을 보여주는 징조라고 비난하고 한국측 입장을 지지했다.

1996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대장성 극비정보’의 내용 중에는 “일본의 해군력은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3위다. 독일•영국•프랑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마어마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케시마 문제를 두고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이 한국 해군이 어떻고 저떻고 얘기했다는데 바보 아닌가.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 한 척만 가면 아마 한국해군 7,8할은 전멸이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7,8할은 바다에서 몽땅 사라지게 된다" 라고 망발을 서슴없이 지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대국 일본은 중국.러시아 그리고 한반도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독도와 초어도를

▲불타는 러시아 함대

장악하려는 것은 장차 동아시아의 제해권을 한 손에 쥐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이 이 두 섬을 차지하게 되면 동해는 물론 동중국해를 포함한 서태평양 거의 대부분이 일본의 내해가 되는 꼴이 발생한다. 이러한 일본의 망상은 제2의 대동아공영권을 형성해보자는 음모의 발톱인 것이다.

1998년 11월 자위대는 육해공 합동으로 ‘독도를 가상 목표로 독도점령 비밀 상륙 작전’을 벌인 사실이 1년 뒤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것은 실제로 일본의 외교 10대 지침에 다케시마 탈환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뒤 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위로는 1977년 후쿠다다케오(福田赳夫)총리에서 시작된 일본땅 다케시마 주장은 그 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모리 요시로(森喜郞). 고이즈미 총리에 이르고, 아래로는 가메이 의원이 “이웃끼리 서로 자기 땅이라고 영원히 으르렁거릴 수 없다 언제가 끝을 봐야 한다”
하마구찌 카즈히사(前국회의원)은 “일본은 군사적 대응까지 준비되어 있다. 말 뿐인 광의가 아니다.”
코시니 마코토(군사비평가)는 “나가사키현에 자위대에서 처음으로 특수부대를 창설했으며, 이 부대의 작전 목표가 도서방어, 섬의 방어다. 즉 분쟁지역 섬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카무라 아키라 (소화연구소 소장)는 “독도가 한국고유의 영토가 되기에는 본토에서 너무 멀다. 그래서 일본 영토라는 것이다. 한국이 끈질기게 다케시마를 선전하는 것은 국가로서 매우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로서 확실히 말씀 드리면 꼴불견이라 생각한다. 고유영토라는 것은 지리적으로 매우 근접해 있지 않으면 고유영토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등 그 강도의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문제를 외교청서 97년 판에서는 '독도에 관한 일한양국의 차이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유엔해양법조약 비준에 따른 조치는 독도문제에 관한 각각의 입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양 수뇌간에 확인'이라고 표시했다. 99년 판에서 각론 한국편 후미에 삽입하여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아에 본론에 거론했다. 2005년에는 독도 탈취를 위한 그들의 마각을 드디어 드러냈다.

2005년은 한일 양국이 국교수립 40주년을 맞아 ‘우정의 해’로 선포되어 수백 가지의 교류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해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영토를 자기 땅이라고 선전 포고에 가까운 적대행위를 하여 한일 ‘우정의 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일본으로서는 ‘우정의 해’가 아니라 100년 전 1905년 일제가 독도를 강탈했던 일을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2005년 2월 23일 주한 일본대사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라는 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일본 땅”이라고 외쳤다. 이에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그는 3월 13일 쥐새끼와 같이 일본으로 도망쳐 13일 동안 주한일본대사 자리를 비웠다. 그는 반일 시위와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는 등 ‘대일 쓰나미’가 불어 일본경제에 불리해지자 슬그머니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온 그는 본인이 내 뱉은 말은 취소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경제 및 민간 차원의 교류는 중단해서는 안 된다”며 만면에 웃음을 띠며 경제인들과 악수를 하였다. 다카노는 속과 겉이 다른 양의 탈을 쓴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본인들의 단면을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본제품은 팔아서 돈은 훌쳐가겠다는 것이다.

다카노의 정신 나간 외침이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마네현은 3월 16일 찬반토론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채 단 몇 초 만에 36명의 의원 중 33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100년 전 독도를 강탈했던 2월 22일을 다시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시마네현에 인접한 돗토리(鳥取)현을 비롯한 9개 현 의회도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일본 정부가 결연한 자세로 한국 정부와 교섭에 나서 신속히 다케시마를 되찾아오라"고 촉구하는 의견서를 채택했다. 조례안이 통과되자 의원들은 감격했고, 일장기를 단 군복 차림의 우익단체들은 ‘반자이(만세)’ ‘한국은 물러가라’ ‘다케시마를 지켜라’라고 외치며 마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 장병들처럼 확성기 소리가 시가지를 뒤흔들어 놓았었다.

저 멀리 바다건너 주미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 공보공사 아가와 나오유키(阿川尙之) 라는 자는 워싱턴 포스트紙 기고문을 통해 "(동해의) 바다 이름은 일본해가 맞고 독도도 일본의 한 부분인 만큼 다케시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자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일본 관방장관은 3월 24일 집권 자민당 내에서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데 대해 "원래 그런 이야기는 있었으며 일본은 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전 외상은 "'다케시마'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적이고 엄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일본은 지금이야말로 제소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정한론(征韓論)'을 펼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꼽는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사진) 일본 문부과학상이라는 자는 ’학습지도요령’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해야 한다고 망언을 하면서 일본교과서에 ‘한국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로 표현하게 하여 한국을 범죄국으로 표현하게 했다. 일본 정부는 “지방의회가 하는 일에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조례안 통과를 방조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2004년 독도 강탈을 위해 독도에 대한 예산 증액을 강력 요청하여 대규모 재정지원이나 학자들의 심포지움을 강화하여왔다는 점에서 볼 때 방조가 아니라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이루어진 고도로 계산된 작태인 것이다.

또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RF-4C 정찰기(사진)들이 독도 상공을, 해상보안청 소속 경비정들이 독도 해역을 순회하는 등 전 일본열도가 독도 강탈을 위한 작전에 돌입했던 것이다. 이렇듯 일본의 독도 탈취를 위한 치밀하고도 칼날과 같이 날카로움은 전 일본적인 시나리오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작태에 대하여 세계 언론들은 일본을 맹비난했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지는 “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은 군국주의 제국의 ‘위대함’을 잃어버린 일을 애석해한다”는 기사를 통해 일본의 작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디 벨트는 난징(南京) 대학살이나 731부대의 인체실험, 위안부 등 일본의 전범 사례를 열거하면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들은 전쟁 범죄를 언급하지 않고 엉터리로 역사를 묘사한다”고 비판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통신은 3월 27일 신문만보(新聞晩報)의 보도를 전재한 '독도는 누구 땅인가'라는 기사에서 "일본이 패전 후 해양 면적을 지속적으로 확대했고, 댜오위다오(釣魚島)와 독도 등을 무단으로 일본 지도에 편입시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통신은 또 일본이 1667년 당시 문서를 통해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점을 인정했고, 1896년 일본 외무성의 '조선국교시말내심서(朝鮮國交始末內深書)'에 독도가 조선 영토라고 명확히 표시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로 볼 때 독도는 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로 기록됐고, 일본은 1905년부터 자국 영토로 간주했다. 일본이 메이지(明治) 쿠데타 이후 조선에 대해 울릉도와 독도의 개방을 요구하다 1905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명명하며 일방적으로 자기 영토로 간주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일본 규슈(九州)지역 시민단체인 '임진왜란 반대 일본인 실행위원회' 위원장인 가와모토 요시아키(川本良明.62)씨는 조선조때 전라좌수영이 있던 전남 여수시 진남관에서 임진왜란 반성 집회를 가진 뒤 "일본의 다케시마 주장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들의 모임인 경북 재영주(在榮州) 일본부인회 회원들은 영주 시장실에서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 분명하다'는 성명서를 통해 “일본의 몰지각한 일부 인사의 처사 때문에 죄송스러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하며, 저희는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 분명함을 발표한다"며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대한민국 땅 독도를 침탈하려는 만행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부인회는 이어 "일본 학교에서 배울 때 역사 교과서 내용이 사실인 줄 알았으나 대한민국에 와서 보니 많은 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독도는 분명히 대한민국 땅임을 만천하에 알린다"고 했다. 부인회는 "아름다운 독도, 대한민국 독도를 우리 함께 잘 가꾸고 지켜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 줄 유산이 되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고고한 문화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도덕 국가이자 금수강산인 대한민국에 시집 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남편.자식과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사실상 한국에 속한 섬”이라고 했으며 미국 AP통신,영국의 더 타임즈, 러시아의 리아 노보스티 통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아랍 알자지라 방송 등은 ‘독도’라 표기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더욱 더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시마네(島根)현 스미타 노부요시(澄田信義) 지사다. 경북도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이 가결되자 이를 철회할 것을 주장하며 시마네현과의 자매결연을 중단하였다. 그러자 스미타 지사는 "영토문제는 국가간 외교문제이고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국제교류와는 다른 것이다"며 교류 재개를 바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속과 겉이 다른 일본인들의 인간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대목이다.

게이오대학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일본학자들은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날’ 제정을 어업 관계자들의 불만을 대변한 것이라고 꼼수를 두고 있다. 어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남의 나라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해도 된다는 말인가. 만약 우리 어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일본땅을 우리의 영토로 편입해도 무방하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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