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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알아야 독도를 지킨다

은폐된 광기의 나라
1977년 일본은 러시아에 대응하는 경제수역을 선포할 때 만해도 한국.중국과의 마찰이 예상되는 지역은 대상 수역에서 제외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국제적인 여론을 의식하고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독도문제' 에 대한 공세적인 발언을 자제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은 총리와 정부 관계자가 나팔수가 되어 우리의 땅 독도를 일본 땅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 강도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섰다. 그리고 우매한 민중들은 각종 정치활동.세미나에 행동대원으로 끌어들여 ‘다케시마 탈환작전’, ‘다케시마를 사수하라’, ‘한국은 다케시마에서 나가라’, ‘우리의 다케시마를 지켜라’, ‘한국의 침략, '일본 정부의 나약한 태도를 규명한다’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정부가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은 경제성장으로 지갑의 두께가 두터워지자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는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 지금 당장은 독도를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틈나는 대로 문제를 제기해 놓음으로써 외교적인 기록을 남겨두자는 장기적이고 칼날과 같은 철저한 일본적 속셈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도가 한.일간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꾸준히 확산시키어 일본이 UN안전보장 이사국에 진출하여 국제 정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날이 오면 그 때에 본격적인 땅뺏기 싸움을 하겠다는 계산이다.


그것은 바로 IMF의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차관을 빌미로 독도를 공동수역으로 설정한 신한일어업협정이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 일본은 이 협정 후 외교청서에서 대놓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미.일(美.日)안보조약에 의거 한반도의 안보 유사시 실력행사를 통해서 독도를 탈환한다거나 한국에 경제 지원이나 차관을 줄 때마다 한국 정부에 독도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 국회의원과 같은 경우는 “(독도 문제는)정치인은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다”라고 섬뜩하게 한국에 경고하고 있다. 또 굴욕적인 신한일어업협정 타결 후 2000년 9월 일본 모리 前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일본으로 초청해 놓고는 "다케시마(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나 

▲1882년 일본 기무라 제작 동판 조선국전도, 죽도(竹島, 울릉도)와 송도(松島,독도)를 조선과 동일한 색채로 표시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일본)의 고유영토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하여 IMF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등뒤에서 비수를 꽃았다.

그리고 서지학자 이종학씨가 밝힌 다음과 같은 일본의 장기적이고 철저함은 우리가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자국민에게 독도 광구권을 허가하고 광구세를 징수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광구세를 내던 당사자가 ‘한국측의 불법 점거로 사실상 채굴이 안되니 세금을 내는 것이 억울하다’며 1959년 국가와 시마네현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1961년 11월 도쿄 지방재판소는 이유가 없다며 소를 기각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사실을 판례로 남겼습니다. 이는 독도 영유의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민관 합작으로 벌인 술수로 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이 사건은 1953년 영국과 프랑스가 ‘망끼에 및 에크레오’의 도서 및 암초에 대한 영토 분쟁을 일으킨 사례를 일본이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제 법학자들을 영국과 프랑스로 보내 자문을 받아 답습한 것이다. ‘망끼에 및 에크레오’ 사건은 영국.프랑스 간의 영유권 분쟁으로 양국은 이 섬에 대해 11세기부터 원시적 권원을 취득하여 그 후 계속적으로 이를 유지하여 왔으며 결코 이를 상실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여1951년 12월 5일에 국제사법법원에 소송이 제기 되었다. 그 결과 1953년 11월 17일 이 섬에 대한 과세권을 인정 받은 영국이 승리하였다.

그 이유는
1. 영국은 이 섬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해협 내 여러 섬을 관할하고 있는 저지(Jersey)섬 법원이 1826년부터 1921년까지 수 차례에 걸쳐 형사재판권을 행사하였다는 사실,
2. 1820년경에는 저지섬의 주민이 이 섬에 건립한 가옥에 대해 과세를 물었다는 사실,
3. 1875년의 영국 국고 지불 명령서에서 지정한 해협 내 여러 섬들 중 이 섬이 포함되었다는 사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한국은 국제 재판 경험이 전무한 반면 일본은 네 차례나 있다. 이미 1872년 페루 선박을 기소해 국제중재재판에서 승소했다. ICJ의 전신인 국제상설재판소(PCIJ.1922~45년)와 ITLOS도 경험했다." 이 말은 일본이 독도 문제에 대하여 국제재판에 회부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즉 일본은 독도를 강탈하기 위하여 명분과 자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통역이 되지 않듯이 일본의 독도 탈취 의도와 영토확장 야욕은 글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지한파들은 ‘독도는 한국 땅이다. 그러나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라며 일본인들의 특유한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일본국민성을 논할 때 속(혼네-本音)과 겉(다테마에- 建前)을 완벽하게 숨기는 ‘무서운’ 일본인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일본은 오로지 미국에만 의존하고 한국.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악우’로 비하하는 것이 일본국민들의 평균적인 생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일본국민들의 평균적인 생각을 모르고 아시아국가들은 일본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한 손의 벚꽃을 보고 한 손의 사시미칼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일본은 그들이 필요하다면 임진왜란.명성황후 시해.관동대학살. 위안부. 731부대사건. 우키시마 대폭침과 같은 극악무도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은폐된 광기의 나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어차피 일본은 독일처럼 스스로 과거를 청산할 수는 없는 나라다. 일본은 100년 전 러•일 전쟁 와중에 도둑질하려던 남의 영토를 잊지 못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지만 독일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50주년 되는 날을 영원히 잊어선 안 된다며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날’로 공식 지정했다. 그리고 일본에는 바르샤바 유태인 위령탑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한 브란트 총리나, “역사에 눈감는 자는 미래를 볼 수 없다”고 외치던 바이츠체커 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가 없다.

또 언어와 문자를 비롯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한반도로부터 문물을 전래 받은 일본은 전통적인 역사가 없다. 이러한 일본은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3류 사무라이들의 힘만 길렀지 평화를 사랑하는 철학이 없다. 따라서 국내문제나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비대할 경우 그들은 그 힘을 반드시 시험하여 왔다. 임진왜란, 일한병합, 아시아 침략전쟁이 그러했다.

일본은 패망 후 미국의 ‘푸들(개)’을 자처하자 전승국 미국으로부터 전후 배상에 대한 면제부를 받았다. 패전으로 피폐해진 일본경제는 뜻하지 않는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하여 경제재건의 기초를 다졌다. 또 1965년 발생한 베트남전쟁은 미국과 베트남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지만 일본경제에는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비대해진 지갑을 무기로 총칼을 사들여 군사대국화했다. 이러한 일본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또다시 독도.쿠릴열도남단 도서.초어대를 시발로 신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일본은 손자병법을 통달한 사무라이의 나라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상대의 것을 내 것으로 빼앗기 위해서는 일정한 공식을 갖고 움직이는 나라다. 모든 일이 치밀하게 계산되고 완벽한 시나리오에 의해 움직여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은 과거 총칼로 우리를 유린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적으로 우리의 목을 비틀고 있다. 97년 태국 발 IMF외환위기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올 때 미셜 캉드쉬 IMF총재는 한국에 구제금융 제안했다.

이에 대해 당시 강경식 부총리는 강력 반대하고 일본으로부터 차관으로 금융위기를 해소하려 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일본이 이웃에 있기 때문에 위급상황에서 도와줄 것이라는 장미빛 환상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차관 제공은 고사하고 한국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 만기연장 철회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가장 먼저 인출하여 IMF체제를 앞당겼다.

당시 중국은 태국이 IMF위기에 빠졌을 때 10억 달러의 지원금을 내놓는 등 아시아의 위기를 해소하고자 노력했지만 일본은 위기에 빠진 한국을 등뒤에서 비수를 꽂는 비열한 3류 사무라이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본이 IMF의 수령에 빠진 한국의 약점을 이용하여 다시 차관 제공 미끼로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어 독도 일대를 공동수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덤으로 일본문화 개방까지 촉구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일본이 밑을 보지 못하는 거만.거대한 스모선수가 되기까지는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조를 했다는 것을 자성해야 한다. 일본은 매년 1천억 달러 내외의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2003년에는 889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2004년 우리나라의 대일(對日)무역수지 적자는 무려 250억 달러, 원화로는 약26조 원이다. 이는 2004년 우리나라 총흑자 297억 달러 중 84.2% 이른다. 그리고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대일본 누적 적자가 총 2천4백억 달러로 2005년 우리나라 일년 예산 약195조 원에 비하면 무려 1.35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는 우리가 피땀 흘려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에 종자씨를 더하여 일본에 갖다 받친 꼴이다. 정부는 일본에 대하여 수십 년간 대일 무역 불균형을 시정 요청하였으나 일본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 일본인에게 기다림과 씨름 한다면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2000년 기다림은 침략과 거짓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 국력이 독도 침탈 야욕을 분쇄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과거는 필요 없다. 중동전쟁이나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국지전을 살펴보면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거 지배되어 왔다. 일본이 과거 반성은 고사하고 군대도 아닌 자위대를 일본 국내법을 어겨가면서 이라크에 파병하는 등 거만한 작태를 보였다. 이것은 푸들(개) 주인인 미국의 지시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지갑의 두께 즉 일본의 국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갈려는 의도도 바로 국력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증거위주가 아니라 국력에 의하여 좌우되는 곳이다. 한국도 유엔에 분담금을 납부하고 있으나 일본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아 일본의 입김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이겨봐야 본전이며 일본은 져도 본전인 것이다.

2004년 5월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社 제작 지도에 ‘독도’를 ‘다케시마'와 함께 쓰기로 했다는 외신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2004년 7월 현재 미국 CIA를 비롯한 세계 약100여 곳의 포털사이트에서 ‘독도’와 ‘다케시마’로 병기(倂記)하고 있는 것으로 ‘반크’의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이 또한 일본의 국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가난한 한국보다 돈 많은 일본과 ‘쉘 위 댄스’를 즐기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MD(미사일방어계획)에 일본과 손을 잡은 것도 바로 이런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맥락과 연관지어 볼 때 일본이 미국의 ‘푸들(개)’를 자처하는 마당에 독도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미국은 분명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보니 2000년간 사용하던 ‘동해’가 ‘일본해’로 바뀌어 졌듯이 앞으로 우리가 국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다케시마 병기는 전세계로 급속히 번져 갈 것이고, 한국의 독도가 일본의 다케시마로 바꿔질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분명 우리보다 국력이 앞서 있다. 이러한 일본은 한국이 무슨 말을 해도 항상 먼저 日도발 → 韓반발 → 日무시 → 韓분노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흥분에 대해 얄미울 정도로 일본의 반응은 무시하면서 냉담하다. 실컷 우리의 골을 질러 놓고서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감정적이냐"며 나무라기까지 한다. 대꾸할 거리도 못 된다는 태도야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한국이 화를 내고 흥분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원래 흥분하면 싸움에 진다고 하지 않았나. 미친개가 짖으면 짖도록 나둬야 한다. 시끄럽다고 쫓으면 도망가면서 끝까지 짖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징기즈칸의 말발굽이 잠든 유럽을 깨웠듯이 일본의 독도 영토주장은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일본에 대해 무대응하는 것이 국제 공론화를 막는 최선책이다’, ‘독도를 실효적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영토다’ 등 조용한 외교를 주장하던 정부와 일본의 간악한 사태를 온 국민들이 일본을 똑 바로 바라볼 줄 아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친개에 물리지 않도록 유비무환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자. 일본이 참담한 패전국 신세에서 다시 경제대국으로 부활하기까지 그냥 된 게 아니다. 손자병법을 통달한 3류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은 힘센 자에게는 절대로 무모하게 덤비지 않는다. 나보다 힘이 세면 비굴할 정도로 무릎을 꿇고 힘을 축적할 때까지 배운다. 무릎 꿇고 배운 힘으로 상대를 무자비하게 꺾는 것이 국가고 기업이고 간에 일본이 취한 공통의 전략이다. 그렇게 무릎을 꿇는 것을 결코 치욕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 침략 야욕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금 필요한 것은 백 마디의 과격한 언사보다 그걸 뒷받침할 힘이다. 우리가 힘을 키웠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10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큰소리쳤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뿌리를 뽑겠다"했으며, 독도 셔츠, 독도 노래, 독도 관광 등 온통 독도 독도 독도 했지만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축적해야 한다. 그것이 일본과 대등한 관계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호를 다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소니보다 이익을 많이 냈다고 해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착각하지 마라. 한국은 아직 멀었다"라고 경고한 오마에 겐이치(大田硏一)의 뼈있는 말은 지금의 한국에 가장 절실한 충고다. 외교전쟁이 됐든 경제전쟁이 됐든 이기고 싶으면 말로 큰소리를 칠 게 아니라, 실력으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런 실력이 갖춰졌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국민감정으로 일본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우리는 겉으로는 독도를 지키자! 극일을 하자! 등등 외치고 있지만 안으로는 무분별하게 일본제품을 구매하여 우리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일본이 군사대국화 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며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보듯이 독도를 침탈하고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칼날을 세우는데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제품을 분별없이 구매한다면 3류 사무라이들의 배를 부르게 하여 또다시 우리 강토가 유린 당하고,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강제징용.성노예(위안부)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면서 부모를 원망하며 죽어가게 된다는 것을 뼈 속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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