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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열풍과 좀비사무라이의 천 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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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말

일본을 모르는 사람들은 일본을 말할 때 갖은 수식어를 동원한다. 일본은 물의와 갈등을 피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죄악시하는 국민성, 질서와 평화를 강조하는 일본 가정, 대결과 싸움자체를 부정하는 사회, 남과 다른 튀는 행동을 억제하고, 집단 속에 묻히려는 전체주의와 집단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총리를 비롯한 일본정부.일본국민들이 야스쿠니신사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작태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시아 각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에 대한 끊임없는 일본국민들의 애정 행각은 주변국들에게 불안과 파괴. 갈등을 야기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히 본심을 숨기는 비열한 3류 사무라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속과 겉이 달라 그 교묘함은 귀신도 속이는 수준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아시아침략전쟁을 비롯한 일제가 저질렀던 각종 침략전쟁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갖은 악행을 저질렀던 자들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니던가.야스쿠니 신사는 ‘벚꽃 동기생’의 노랫말에 있듯이 다시 꽃으로 피어나고 싶어했던 비판의식 없는 이들에게 있어 꽃의 고향일지 모르지만, 침략 전쟁을 당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분노와 원한의 진원지인 것이다. 이런 곳에 일본총리라는 자가 비참하게 학살당한 이들에게 보란듯이 당당하게 참배하고 우익들은 이런 총리를 엄호하기에 바쁘다. 비판 의식 없는 의원들은 떼거리로 총리를 뒤따르고, 언론 매체들은 이들을 옹호 내지 전쟁을 향한 광분을 선동하고 있다. 보통 시민들은 들쥐 떼와 같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일본에는 전범이 없다”라고 떠들며 정신병자들과 같이 그들이 필요한대로 행동하고 있다. 일본이 보여주는 야스쿠니에 대한 향수는 과거 참혹한 학살을 주업으로 했던 군국주의를 부활하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역사교과서 조작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이 가중되자 우익들은 2005년 4월 산케이신문이 주체한 한 강연에서 "우리 뒤에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있다"라고 강변했다. 이것은 힘 앞에 비굴하게 굴복하는 사무라이 나라 일본이 힘있는 미국에 대한 기생민족주의의 일천한 현주소를 보여 주었다. 일본의 이러한 작태에 대하여 2005년 4월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2차대전 후 체결된 미일동맹에 의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속죄 없이 공짜로 민주국가가 된 것에서 출발하며, 미일동맹은 일본에는 축복이자 저주이다”라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일본이 주변국을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신을 역사의 희생자이며, 충분히 사과하고 배상했다고 여기는 잘못된 역사인식과 책임감 부재를 날카롭게 비판한 뒤 섬나라의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말을 바꾸어 다시 한번 야스쿠니를 되돌아 보자. 야스쿠니 신사는 전몰자 추도를 위한 시설이 아니다. '추도(追悼)'란 평화를 수호하고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산화한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야스쿠니에 안치된 자들은 모두 신으로 승격되어 영광을 누리고 있다. 그 유족들은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때문에 전사를 슬퍼하지 않는다. 비통해 하지도 않는다. 침략을 근거로 하는 군국주의가 일본국민들을 병기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작한 국가신도는 '일왕이 주신 목숨을 일왕을 위하여 바쳤으니 이 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고 가르쳤다. 비판의식 없는 일본국민들은 다들 그렇게 믿었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며 결의했고 또 그렇게 죽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추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전사한 이들의 공적을 뚜렷이 기려 미화하는데 전력 투구하고 있다. 야스쿠니에 가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신사 전체가 침략주의의 허상과 일본군의 공적을 찬양하고 있다. 공적이란 다름아닌 침략전쟁과 식민지 개척, 처참한 학살, 비참한 자살로 대변되는 가미가제특공대 등등이다. 그래서 야스쿠니에는 군인과 군속의 위패만 둔다. 야스쿠니에서는 민간인 전몰자는 관심사 밖이다. 침략전쟁에 공적을 못 남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야스쿠니의 속성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마취도 하지 않고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일본군(731부대)

또 세계 어떤 나라든지 국립 추도시설은 무종교. 민간인들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는 살아있는 신으로 조작된 일왕을 숭배하는 국가신도의 총본산이다. 일왕은 지금도 매년 야스쿠니신사에 ‘신의 제물’ 즉 신찬(神饌)를 보내 일왕의 권위를 내비치고 있다. 아시아 침략전쟁 때에는 야스쿠니를 군이 직접 관리했다. 패전 후에는 일본정부가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했다. 1956년 일본정부는 480만 엔의 국고를 야스쿠니신사에 지원하여 합사 작업에 지원했다. 1978년 극악무도한 A급 전범들을 야스쿠니에 비밀리에 합사하여 세계를 경악하게 한 것도 일본 후생성이 앞장서서 만든 작품이다. 비열한 일본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2005년 7월 25일자 아에라(AERA) 誌가 ‘A급 전범 합사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폭로했다. 그리고 前 야스쿠니신사의 궁사(宮司) 마쓰다이라 나가요시(松平永芳)의 증언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고이즈미를 비롯한 일본정부 관료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그 의도 자체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일본의 의도를 의식하면서 야스쿠니 문제를 봐야 한다. 야스쿠니를 비판하려면 바로 이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A급 전범만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A급 전범은 야스쿠니의 정체를 보여주는 상징일 뿐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일본정부와 야스쿠니가 한국과 중국의 요구대로 A급 전범을 분사한다고 치자. 그 이후 총리를 비롯한 정부요인들이 침략주의 군국주의를 되살리는 야스쿠니를 참배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우리 스스로 야스쿠니의 침략적 국수주의를 사면해 주는 꼴이 된다. 총리의 참배를 정례화한 다음 일왕의 참배를 실현하는 게 일본 우익의 의중이고 보면 그 다음 수순인 '야스쿠니 신앙'의 거국적 포교활동을 막을 수 없는 사태가 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다음과 같은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 99년부터 야스쿠니에 안치된 자들의 공적을 조작하는 연구사업에 대한 재정지원 제도를 만들었다. 2000년부터는 야스쿠니 내에 청소년을 위한 역사 스터디 그룹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덕에 오만 방자해진 일본은 느슨해진 황국신민의식과 국가신도를 고취시켜 국민들을 다잡으려는 의도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이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황국신민의식을 재생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일본이 세계의 일원이기를 포기한 무책임하고 후안 무치한 작태이자 인류역사에 대한 모독 행위이다. 철학과 낭만이 흐르지 않고 역사의 깊이가 없는 이런 일본이 아시아의 경제대국으로 남는다는 것은 새가 없는 숲이요, 향기 없는 꽃이며, 우리에게는 저주다. 이러한 일본을 보노라면 실망과 분노를 넘어 역사치매에 걸린 은폐된 집단살인의 광기를 느낀다. 
 

요로 다케시(養老孟司)는 ‘바보의 벽(バカの壁)’에서 ‘현대인의 70%는 자기가 알고 싶어하지 않는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려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05년 3월 15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인근에서 열린 야드 바쉠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개관식에 40여 개 국 지도자들을 초청했으나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 인식의 혼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초청 대상에서 제외됐고, 2005년 일본총리가 중국 방문을 거절당했다. 이렇듯 일본인 스스로 바보의 벽(バカの壁)에 가로 막혀 벽 밖의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일본은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거부당할 것이다.

야드 바쉠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개관식(AP연합)


조작된 역사를 전파시키는 '새역사교과서 만드는 모임'의 후원기업들은 역사교과서 조작 파동으로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약삭빠르게 후원기업 명단을 빼달라고 애원을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때 아시아 축구연맹 사무총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북한에서 경기를 보이콧하기 위하여 플레어 FIFA총재를 일본으로 불러들여 끈질기게 북한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여 그들의 욕구를 채웠다. 이렇듯 경제동물 일본은 하이에나처럼 상대가 강하면 비열하게 돌아서지만 상대가 약하면 끝까지 집적거려 침탈하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역사조작과 역사치매에 걸린 일본이 스스로 변하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일본원숭이가 바나나를 돌려 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결국 일본을 변화시키려면 우리가 일본과 대등하든지 일본보다 나아야 한다. 일본을 반성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매년 대일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세계경제가 WTO, FTA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산품 사용을 강조할 수 없다. 일본에 절대 지지않기 위해서는 우리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실정을 인식하고 신토불이 즉, 국산품 사용에 앞장 서서 대일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여야 한다. 무분별한 일본제품 구매는 큐리오(QRIO)나 아시모(ASIMO 일본에서 만든 로봇)와 같이 피가 흐르지 않는 역사치매에 걸린 정신병자들에게 저주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며, 사시미칼을 쥐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유와 평화는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싸워 얻는 것이다. 남이 지켜주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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