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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구석기 70만년 역사 조작

역사조작은 살인을 부른다
2000년 5월 일본 아이치(愛知)현에서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한 사립학교 고교생이 60대 할머니를 둔기로 때려 쓰러뜨린 뒤 흉기로 40여 곳을 무자비하게 찔러 살인을 자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로서 문제 집안도 아니었다. 그는 학교 성적이 아주 우수한 성격 밝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살해의 동기였다. 그는 살해의 동기를 ‘경험 삼아 살인을 해보고 싶었다’고 진술하여 주위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한 것이다. 또 2000년 5월 총무청은 도쿄, 효고, 돗토리현의 공립 중.고등학교 남녀학생 20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남자고등학생 33%인 3명 가운데 1명 이상이 ‘부모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경험했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배움의 전당인 학교에서 학생들이 힘없는 약자를 집단 폭행하고, 두 번 살해하는 '왕따(이지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곳이 일본이다.

이러한 살인의 악을 어디서 오는가? 바로 역사조작에서 오는 것이다. 역사조작은 일본 국민들의 고향이 어딘지 모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뿌리도 모르며 부모형제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역사치매에 걸린 자들이 어느 날 경제성장으로 돈과 칼을 거머쥐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태인 것이다.

전후 독일은 정원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듯이 우익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끊임없이 반성과 교육을 통하여 과거와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끊임없이 과거 지향적으로 흐르고 있다.
자민당의 총리후보 경선에 나선 중진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역사조작 교과서 옹호발언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망언제조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 도쿄 도지사는 “일한병합은 조선인이 선택했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 독자적인 문화에 대한 주변국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문제에 대해서는 "평화목적으로 파견된 자위대가 공격을 받는다면 당당하게 반격해서 상대를 섬멸하면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다. 또 세계가 다 아는 난징대학살에 대하여 60만 명 살해 근거를 대라고 큰소리 치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는 "각국이 자국 역사에 여러 견해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주장이나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이나 중국의 비판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이웃이고 뭐고 우리만 살면 된다’는 식의 삼류 정치인들이 이끄는 도덕파탄의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이러한 작태로 인하여 일본 청소년들은 잔인한 살인극을 경험 삼아 저지르고 있다. 또 일본 TBC-TV의 ‘고고가 헨다! 니폰, 니폰진’이라는 잔인한 프로를 낳았다. 이 프로는 어떤 한 국가 또는 어떤 대상을 테마로 설정하고 거기에 대하여 그저 무조건 두르려 패고 보는 난타전만이 있을 뿐이다. 일본의 어떤 점이 나쁜데 그것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대안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이 프로를 만드는 사람이 제정신인지 아니면 변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신의 손’
2003년 5월 세계는 또 다시 경악했다. 2003년 5월 일본 고고학회는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전 도호쿠(東北) 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이 발굴에 관여했던 총 162개 전·중기 구석기 유적 4천여 점 발굴 유물이 모두 날조됐다고 발표했다. 즉 일본 인류역사가 70만 년이라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모두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열도의 인류역사 70만년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일본 고고학계와 일본역사는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그는 유물 발굴 때마다 '석기가 나오는 꿈을 꾼 후, 그곳을 파보았더니 진짜로 석기가 나왔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그가 발굴에 관여한 유적지 마다 구석기유적임을 증명하는 석기들을 연이어 발굴해 내는 '기적'을 연출하여 고고학계의 '신의 손'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2000년 11월 그의 조작 행각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유적지에다 석기를 미리 묻어놓고 허위로 발굴했다고 발표하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됀 것이다. 

후지무라는 1981년 미야기(宮城)현의 자자라기(座散亂木) 일대에서 4만년 전 구석기 유물을 처음 발견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선사시대 유물을 계속 찾아내면서 일본에서 최초 인류가 70만 년 전 출현했다는 그의 학설이 역사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그가 발굴한 자자라기유적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가 발굴에 관여했던 유적은 홋카이도(北海道) 소신후도자카(總進不動坂) 유적에서부터 간토(關東)지방에 이르기까지 무려 180여 곳에 달했다.

후지무라는 마이니찌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20대 후반이었던 74년께부터 유적 날조를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유적 날조를 계속하게 된 이유에 대해 “모두가 즐거워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발굴작업이 계속되면서 “20만년, 30만년 전의 석기가 나오면 좋겠다는 등 주위의 주문도 많아졌다”  “결국 내가 그것에 응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역사조작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일본국가는 물론 일본고고학계였다. 후지무라가 20년이 넘게 이러한 행각을 벌리는 과정에 분명 소수의견으로 의문을 제기했지만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영웅심에 불타는 개인의 사기극이 아니라 일본 고고학계 및 일본국가의 구조적인 병폐에서 비롯된 방조인 것이다.  일본국민들이 우수하다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된 역사조작이 강박감에 사로 잡혀 문제점을 덮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오다 시즈오 도쿄 교육문화 주임연구원과 일본 공립여자대학교의 다케오카 도시키 교수가 자자라기 유적에 대해 발표 당시부터
●출토 형태가 부자연스럽다
●동시대의생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석기 파편물이 주변에 전혀 없다
●석재가 주변과 전혀 다르다
는 의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했지만 무시당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오이타(大分)현 히지리다케(聖嶽) 동굴에서 구석기인 뼈를 발굴한 장본인인 일본 벳푸대학의 가가와 미쓰오(賀川光夫) 명예교수도 당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교과서에까지 그대로 실렸다고 회고하고 있다. 한편 가가와 교수는 구석기 유물 조작사건이 터져 자신이 발굴한 유물에까지 날조 의혹이 제기되자 자살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본인이 제기한 의문까지 무시되는 곳이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은 후지무라의 사태에 대하여 개인 소행으로 돌리는 등 책임 회피에 혈안이 되어 ‘조작된 과거’에 집착했었다. 지방자치단체 일부는 재발굴 비용 지원을 요구하는 고고학 협회측에 “학계가 알아서 하라”고 수수방관했고, 일본 정부 역시 외면했었다. 가장 많은 날조가 확인된 미야기현의 문화재보호과 같은 곳은 일본 언론에 대해 “아직 후지무라 신이치의 고백만이 있을 뿐”이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다.

이러한 조작 사건은 2001년 7월 도치기(枋木)현 구즈(葛生)町에서 또 밝혀졌다. 1950~51년에 화석연구자인 나오라 노부오(直良信夫)가 발견해 구석기시대 원인(原人) 인골로 여겨졌던 뼈가 15세기 전후의 인골로 밝혀졌다. 구즈정 채석장 등의 석회암에서 잇따라 발견된 이 뼈는 당초 30만 년 전의 뼈로 추정돼 발견 고고학자가 '구즈 원인(葛生原人)'으로 명명했을 정도로 일본인 기원과 관련해 귀중한 자료로 취급 받았다. 그리고 일부 고교 일본사 교과서는 발견지역을 구석기시대의 인골 출토지로 기술하여 왔다. 그러나 국립과학박물관과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연구팀이 소재가 확인된 8점을 재검토한 결과 4점은 곰과 원숭이 등 동물의 뼈로 추정됐고, 나머지 뼈를 대상으로 불소 함유량 분석과 방사성탄소에 의한 연대측정법 분석을 한 결과 3점은 구석기시대가 아닌 15세기의 인골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와 같은 일본역사 학계의 처사에 대해 다케오카 도시키씨는 "마치 인체의 공중부양을 믿는 옴 진리교 신도들 같았다", 고고학 연대 측정 권위자인 헨리 슈월츠 캐나다 McMaster Univ 명예교수는 "후지무라씨와 같은 아무추어가 오랜 기간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캐나다 McGill Univ의 이가와 후미코 교수는 "초보적인 발굴 현장 문화"라고 일본을 비꼬았다.


◆ 베이징원인(北京原人) 두개골은 일본에 있다
후지무라의 조작사건이 발생하기 이전 일본에서는 후지무라의 발굴 업적으로 60만 년 전 혹은 7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일본열도에 생존했음이 확실해졌다고 선전해 왔다. 한반도로부터의 도래인을 극력 부인하고 있던 일본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었다.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중학교 교과서 및 대부분의 고교 역사교과서는 일본사의 뿌리가 얼마나 유구한지를 설명하는 구절로 첫 장을 시작하고 있었다. 또 사이타마(埼玉)현 지치부(稚父)시는 수십만 년 전 ‘지치부원인(稚父原人)’이 살던 ‘원인의 마을’임을 선전하며 原人을 캐릭터로 사용한 술·과자 등을 제조.판매하는 등 대대적인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었다. 베이징·자바원인에 비견된다며 온갖 상상력과 낭만으로 가득 채워었다. 그러나 ‘일본 원인’은 일순간 허구로 가득 찬 조작이었음이 판명 났고, 역사 교과서는 첫 페이지부터 고쳐 쓰는 운명에 처했다.

2003.10.23일 영국 BBC 인터넷판은 1998년에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淸原郡 玉山面 小魯里—볍씨박물관)에서 발견된 볍씨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라고 소개했다. 소로리 볍씨는 충북대 이융조 교수팀이 찾아냈다. 그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중국 후난(湖南)성 볍씨보다 3000년 이상 오래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의 손 후지무자 신이치가 살아있었다면 또다시 몇 천년 앞선 볍씨를 일본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인류 진화를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가 베이징원인(北京原人)의 화석이다. 이 베이진원인의 화석은 1936년 베이징 남부 약 60㎞에 위치한 저우커우덴(周口店)동굴에서 50만년 전에 생존했던 원시인의 두개골 세 개를 중국 고인류학자 자란포(賈蘭坡)가 발굴했다. 이것이 중국 最古 인류인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의 두개골(頭蓋骨)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원인은 호모 에렉투스가 類人猿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어서 현대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설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하지만 그 원시인 화석들은 1937년 일본이 중국 침공 때 없어졌다. 참으로 중요한 인류 문화재를 상실한 것이다. 일본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한 것이다. 혹시 역사조작에 재미를 느낀 일본이 일본에서 재발견하기 위하여 숨겨 놓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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