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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는 살인 학습장이다

우리 선조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자들이 신이 되다
야스쿠니신사가 어떤 곳이던가? 이 곳에 군신으로 승격되어 합사(合社)된 자들은 대부분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갖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다. 구 한말 의병봉기 때 의병 진압병으로 출전한 일본군은 고성에서 의병 숨은 곳을 대지 않는다고 무고한 양민을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끓는 솥에 삶아 죽이고 그 뼈를 건져 던진 일본 병사가 이곳에 있다. 원주에서 의병을 숨긴다고 양민을 잡아 강제로 물을 먹여 배를 불려 놓고 그 배 위에 널판지를 깔고 올라서 물 뿜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했다던 일본 병사도 이곳에 있다. 산 채로 하반신을 땅에 묻어 놓고 말발굽에 밟혀 죽도록 했다던 병사도 있다. 3.1운동 때 제암리를 비롯한 화성 지역 16개 마을 주민들을 전멸시킨 놈들도 이 곳에 있다.

▲ 양민을 작두 위에 올려 놓고 처형하는 일본헌병 ▲양민의 목을 베어 귀를 잡아 들고 포즈를 취한 일본군

독립군이 숨어 있는 곳을 대지 않는다고 마을 주민 목을 베어 마을 어귀에 걸어놓은 자도 이곳에 있다. 독립군을 잡아다 작두로 목을 자른 자들도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을 잡아다 사람의 피를 소와 말의 피와 교환해보는 대체 수혈 실험한 자, 독립군을 갖은 고문을 하고 난 뒤 나란히 세워 놓고 총을 쏴보는 관통력 실험, 특수복을 입히고 화염방사기를 발사해보는 내열실험, 공기를 정맥에 주입시키는 주사실험, 알몸으로 영하의 날씨에 얼마나 견디는가 하는 저온실험, 기압이 얼마나 떨어지면 숨지는가 하는 저기압실험 등 모진 생체실험을 자행한 만주 731부대원들도 이곳에 있다. 난징 60만 명 대학살 때 누가 더 많은 사람의 목을 베는가 시합을 벌였던 자들도 있다. 수십만에 이르는 앳된 한국의 어린 여자들을 성노예(위안부)로 끌고 가 돌려가며 야욕을 채운 성적 야수들도 이곳에 있다.

그러나 이곳 야스쿠니신사 입구에는 설립 취지를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어 그들의 비열한 작태를 자라나는 2세들에게 숨기고 있다. " ...중략... 그들은 그들의 가족,마을,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용감히 싸웠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의 기초를 다진 용감한 용사들을 드높이고, 그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중략..."

 

속과 겉이 다른 일본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는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일본의 아시아침략 전쟁은 패망으로 종식되었다. 패전국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최고사령부 맥아더장군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국민을 전쟁터로 내 모는 도구이자, 전쟁의 화신을 부르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야스쿠니신사의 위험성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맥아더장군은 야스쿠니신사를 불태워 없애려는 계획을 세웠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이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비열할 정도로 약한 3류 사무라이 국민성을 이용하였다. 즉 일본을 미국의 충견으로 만들기 위하여 일본왕궁을 폭격하지 않았고, 히로히토에 대하여 전쟁 책임을 묻지도 않았던 것과 같이 야스쿠니신사를 소각하는 대신 정교(政敎)분리 정책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즉 일본 정부에 단순한 종교시설과 순수한 전몰자 추도시설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도록 완화된 조치를 취했다.

이에 일본정부는 종교시설로 선택하였다. 연합국사령부는 일본정부가 야스쿠니신사를 종교시설로 선택함에 따라 일반신사로 격하시켰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의 특수한 기능인 전몰자 추도시설 기능을 완전히 박탈하지는 못하였다. 어쨌든 일본정부는 45년 11월 20일 각의(閣議)에서 신사의 국가관리 폐지를 결정함으로써 연합군최고사령부(GHQ)는 야스쿠니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신도를 해체했다. 12월 15일 ‘신도 지령’으로 야스쿠니신사는 국영신사의 특권적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국가와의 연결고리가 단절되고 일개 종교법인으로 전락했다. 신도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신도교육이 폐지되고, 공공시설에서 신단(神壇)이 사라졌다.

이듬해 공포된 일본 평화헌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일본 평화헌법 20조1항은 ‘종교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된다. 어떤 종교단체도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거나 정치상의 권력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또 3항에는 ‘국가 및 국가기관은 종교교육과 기타 어떤 종교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고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군사보호 및 핵우산 아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가장 먼저 특혜를 누려 경제 재건에 성공하자 마치 패전국에 대한 면제부를 얻은 것과 같은 비열한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1953년 일본국회는 '일본에는 전범이 없다'라고 정신나간 결의를 한다. 그 후 아시아 침략전쟁 패전 당시 A급 전범자들을 비롯한 전범들이 정계에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 중 A급 전범자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수상까지 역임하게 이른다. 1960년대 말부터는 보수우익들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야스쿠니신사를 꾸준히 재단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국가의 관리 아래 두자는 법안까지 제출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74년 참의원에서 폐기되기는 하였지만, 자민당은 국가가 야스쿠니신사를 관리하는 법안을 중의원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익들의 준동이 거세지자 급기야 1978년 10월에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를 일본정부가 앞장서서 비밀리에 합사한 사실이 79년 4월 언론에 보도에 의거 밝혀졌다. 아시아 각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에 대하여 일본 정치인들은 'A급 전범은 연합국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일 뿐, 일본 국내법상으로는 범죄자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등 정신병자와 같이 행동하고 있다. 일본정부 역시 후생성이 중심이 되어 민관합동기구가 결정한 일이라고 발뺌하였다. 이것은 한국.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가슴 깊이 페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14명의 A급 전범 중에는 우리가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악랄한 자가 있다. 바로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다. 고이소는 창씨개명을 실시했던 악명 높은 미나미 지로의 후임으로 조선총독에 부임했던 자이다. 그는 1942년 5월부터 1944년 7월까지 총독으로 있었으며 1944년 7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일본 수상 자리에 있었다. 그는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판정 받아 무기금고형을 선고 받았고 1950년 11월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고이소는 1942년 5월 일제가 한반도에서 인적 수탈을 위하여 징병제가 각의에서 결정될 때 한반도에서 징병제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적임자로 지목되었다. 고이소는 각의의 의도에 충견이 되기 위하여 한반도의 모든 것을 일제를 위해 바친다며 조선총독 재임 기간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했었다. “나는 재작년 취임 이후 오늘에 이르는 동안 조선 통치 시책에 관해서는 그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표를 하였는데 일관된 신념은 조선 민중 2500만 명을 하루빨리 진정한 황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 황국신민화를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중을 기조로 하여, 조선의 모든 것을 전력 증강을 위해 기여 공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이소는 아시아 침략전쟁에서 한반도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가장 많이 죽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또 꽃다운 어린 여성들을 성노예(위안부)로 끌고 가는데 전력을 다했던 자이다. 그야말로 아시아 침략전쟁을 위해서라면 한반도의 모든 것을 착취하려 했던 우리에게는 잊어서는 안 되는 소름 끼치는 착취의 원흉이 되는 자이다. 그리고 고이소는 일본이 패망으로 치닫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전쟁 완수를 고집한 자이다. 그리하여 그는 수상 재임 중에 자살특공대 가미가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을 이유도 모른채 죽음의 나락으로 내몰아던 자이다.



일본은 ‘금붕어의 똥’이다
일본은 이러한 곳에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자들까지 합사를 하다니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일본이 이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경거망동하는 것은 바로 전후 처리를 미온적으로 처리한 미국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조작으로 역사치매에 걸린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한 일본국민성의 합작품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종전 당시 일본의 전후 처리에 있어 독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앞으로는 소련과의 이념적 갈등을 염려하고 뒤로는 1912년 도쿄 시민들로부터 선물 받은 3000그루의 벚꽃나무 향기에 취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의 원흉인 일왕 히로히토를 기소하지도 않았으며, A급 전범 중 7명 만 처형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자 모두 방면 처리하였던 것이다. 또 인간실험의 대명사 731부대원들은 그들이 연구한 성과를 미국에 넘기는 조건으로 한 명도 기소하지 않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는 ‘푸들(개)’을 자처하지만 한국.중국 등 제 아시아 국가들의 어떠한 소리도 묵살하는 안하무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미가제특공대 동상

100년 전 탈아입구론으로 재미를 본 일본은 지금은 오로지 미국에만 의존하는 '신 탈아입미론(脫亞入美論)'을 부르짖고 있다. 이는 간나오토(菅直人) 일본 민주당 前대표가 “일본은 ‘금붕어의 똥’처럼 미국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고 비판하자 "일본에 위기가 닥쳐도 유엔에는 지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며, 일본은 혼자서 평화와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만큼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일 안보조약을 통해 동맹을 맺고 있다"라고 답변한 고이즈미의 말에 함축되어 있다. 이 말은 오로지 미국과 사랑의 트위스트에만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2005년 서구 언론들은 고이즈미를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에 빗대 '부시의 아시아 푸들'이라고 했고, 중국의 신화매일전신은 '일본이 드디어 미국의 첩에서 애인으로 승격했다'고 비꼬았다. 또 일부 언론들은 '일본 정치의 마지막 사무라이'라고 맹비난했다.


경제발전에서 얻은 비약적인 과실은 미국의 군수품 수출과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맞물려 1980년대 일본은 GNP대비 1%에 연연하지 않는 군비 확장으로 세계2위 군비 지출하는 세계 3위의 군사강국으로 만들었다. ‘청년 장교’라며 역대 가장 우익적 인물로 꼽혔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前수상은 전후 정치 총결산을 내걸고 역대 내각이 터부시해 오던 방위비 GNP대비 1%를 유지하던 금기를 깨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역대수상으로서는 최초로 85년 일본이 패망한 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여 아시아 각국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대담성을 보이면서 국가신도 부활을 예고했다
.

 이는 일본정부가 경제대국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패전 전의 향수를 즐기기 위한 단계로 보인다. 그리고 1999년에는 일왕의 치세가 천년 만년 계속되길 기원한다는 가사로 된 일왕 찬가이자,

▲ 오오무라 마스지로 동상


 상명하복을 강요하고 침략전쟁의 상징인 기미가요(國歌)와 히노마루(國旗)를 패전 후 54년 만에 국가 상징으로 합법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켜 국민들을 과거 군국주의의 향수에 젖게 하는데 또 다시 야스쿠니신사를 이용하고 있다.


살인학습장으로 변한 야스쿠니신사

야스쿠니신사는 평화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하여 1만 마리 중 1마리 꼴로 나온다는 흰비둘기를 대량 방육하고 있다. 이 곳은 국립묘지를 만들지 않은 일본에서 우리의 국립묘지와도 같은 상징적인 장소이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입구부터 신사 전체가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양 껏 불러 일으키도록 거대한 전쟁 학습장으로 변질되어 있다.

야스쿠니신사 입구에는 15m는 족히 넘을 듯한 ‘일본 육군의 아버지’ 라 불리는 오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1824∼1869)의 거대한 동상과 마주친다. 일본 육군의 창시자라고 하는 그는 금방이라도 옆에 찬 칼을 빼내 들 듯한 자세이다. 그 오른쪽으로는 아시아침략전쟁 때 자살비행을 감행한 가미가제 돌격대원의 동상인 ‘특공용사의 동상'이 버티고 있다. 야마토(大和) 전함의 460mm 특대 포탄, 군마(軍馬)·군견(軍犬)의 위령탑 등 각종 병기들과 함께 근대 이후의 일본이 겪은 각종 전쟁의 모습들이 느닷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뒤쪽으로는 ‘군인칙유(軍人勳論-일왕이 내린 군인의 덕목)의 비석’이 있다. 경내의 안쪽에는 일왕실 문장이자 권위를 상징하는 ‘국화꽃 비단 깃발(錦旗 にしきのみはた)’을 전시하여 군국주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뒤뜰에는 참전 군인들이 기증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기증자의 이름과 소속 부대명을 소상히 기록해 나무에 부착해 놓았다.

본전에는 레이지보(靈璽簿)라 하는 각종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명부가 있다. 한쪽에는 "야스쿠니 신사는 대동아 전쟁에서 2,466천 명의 신들이 '전쟁범' 이라는 누명을 쓰고 목숨을 버린 신들을 모신 곳이다" 라는 정신 나간 글이 적혀 있다.

 

 한편 경내에는 신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쟁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유슈칸'(遊就館)이 있다. 야스쿠니신사의 부속 기관이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明治15년 창립)으로 알려진 유슈칸(遊就館)에는 진주만 공격의 성공을 알린 암호전보가 보인다. 포탄 속에 자살특공대원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발사되도록 고안했다는 참혹한 인간어뢰 '가이텐'(回天)도 전시돼 있다.구로끼 히로시 중위가 만들었다고 한다.

 러일전쟁 때 사망한 해군중좌의 사진이 ‘바다의 군신(軍神)’이란 제목과 함께 붙어 있다. 아시아침략전쟁 때 활약한 ‘제로센(0,零戰)’ 전투기도 자리잡고 있다. 이런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신사인지 전쟁박물관인지 도저히 구분이 되지않을 만큼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2층에는 '영령의 말'이라는 특별 전시가 있다. “몸은 산화해도 유구히 호국의 귀신이 되겠다…” 이는 한 편의 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맹목적 국가사랑으로 가득 찬 가미가제(神風)특공대원의 유서들이다. 이런 유서들이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군국주의의 광풍 속에서 ‘大和魂’이라는 미명 아래 죽음 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사연들이 관람자의 눈시울을 적시도록 미화되어 있다.  아시아침략전쟁 당시 사용하던 전차, 장갑차, 비행기, 잠수함 외 군 장비들이 배치되는 등 풍부한 자료, 완벽한 관람실 배치, 멀티미디어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조작된 역사만이 존재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아시아침략.약탈을 위한 작태를 ‘대동아전쟁’으로, 일본은 철저한 피해자로 둔갑시켜 놓았을 뿐이다.

또 이곳에 봉양하는 음식은 담배·깡통식량·맥주 같은 군인식이 제사상으로 꾸며지고 있다.  아악(雅樂) 대신 군악대의 주악(奏樂)이 연주된다. 매년 봄이 되면 일본 스모선수들은 벌거벗고 이곳에 모여 의식을 치른다. 신사주변의 가로등에는 1999년부터 일장기가 년중 휘날리고 있는 등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별종 신사’이다. 과연 이곳이 신사인지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왕을 위해 죽은 의로운 사람들이 모셔져 있으며, 이런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

그리고 세계에서 전쟁 후유증이 가장 적은 곳이 일본이라고 한다. 즉 전쟁 중 부상을 당한 병사들에게 할복 자살을 강요하거나, 즉결 처분을 하였기 때문에 부상 후유증을 호소하는 군인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의 머리 속에는 전쟁이 가져 다 준 아픔은 생각하지 못하고 전범들을 영웅처럼 느낄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 놓았다. 이로 인하여 오늘날 일본 청소년들은 재미 삼아.경험 삼아 살인을 저지르는 사태까지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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