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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정반대 일본


독일과 정반대 일본

따지고 보면 일본과 독일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근대화가 늦었고, 2차 세계대전 패전과 전후 경제부흥의 길도 같이 걸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독일과는 너무나도 딴판이다. 독일의 브란트(Billy Brandt)수상은 70년 바르샤바의 유태인 희생자 게토(Ghetto) 위령비에서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잘못을 참회했다. 콜 前총리는 89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슈뢰더 총리는 부헨발트 유대인 수용소에서 참회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시에는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유대인 처형 장소, 유대인 박해 장소, 유대인 저술 문서 소각 장소, 유대 교회당 방화 장소 등 과거 나치 시절 어두운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념관이 10곳이나 있다. 이 곳을 안내하는 시커먼 색깔의 안내판에는 '우리(독일인들)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경악의 장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당시 잔혹한 행위를 생생하게 재현하여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관.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히틀러 치하 독일군이 이웃나라들에게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피해 국민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를 전시물들이 낱낱이 증언하고, 전후 세대에게 산 교육장 역할을 해내고 있다.

독일정부는 이것으로도 모자라 2005년 5월에는 국회의사당, 총리 관저를 비롯한 주요 대사관저와 금융기관들이 위치한 베를린의 중심가 노른자위 땅 1만9000㎡(약 5760평)에 유대인 추모공원을 추가 건설하였다. 이에 대해 추모공원 재단은 "나치정권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독일 민족이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도록 하라는 의미에서 세운 공원"이라며 "공원을 중심가에 만든 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만행을 잊지 않는 것이 독일연방공화국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세계에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베를린 유대인 학살 추모협회의 슈테판 만네스 회장은 "과거사 극복을 위한 노력은 독일인의 자아 정립과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도쿄의 긴자 거리에 위안부.강제징용자.난징대학살.731부대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추모비라도 하나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호사스러운 것인가. 반성하지 못하는 오늘날 일본을 살펴보면 아마도 이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독일 방송국을 비롯한 영상매체들은 나치독일이 붕괴돼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몰락', 히틀러가 자살로 최후를 마친 내용을 그린 '지도자 벙커', 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와 그의 가족에 대해 그린 '마지막 전투', 그 외 나치독일의 패배와 관련된 수 많은 영화를 만들어 수시로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방영하고 있다. 


또한 독일정부는 교과서연구를 위해 브라운쉬바익(Braunschweig)에 게오르그 에켈트연구소(GEI)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과서 도서관을 갖추고 "유대인과 다른 민족에 대한 나치의 범죄는 얼마나 컸는가? 우리는 나치의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내용을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또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고등학교 1학년용 교과서‘우리가 만드는 역사(Wir machen Geschichte)’에는 나치독일의


전쟁범죄를 낱낱이 고발하는 사진들을 싣고 있다.  예컨대 1941년 세르비아에서 사살된 나치 친위대원 2명에 대한 보복조치로 군인들이 36명의 민간인을 사살한 사진을 싣거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최소 550만여 명의 유태인들이 사망했으며, 이들 중 300만여 명은 가스실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독일은 연합군 점령으로 완벽한 패전을 경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05년에는 프랑스와 공동으로 교과서를 집필하여 그 결과물이 탄생했다.

일본정부는 단 한 건의 전범도 재판하지 않았지만, 독일정부는 9만 명이 넘는 나치 관계자를 재판에 회부했고 7000건에 가까운 유죄판결을 내렸다. 79년 독일국회는 “나치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고 선언하고 과거청산에 앞장서고 있다. 독일 루트비스부르그시와 16개 주에는 전범 추적기관이 설치되어 있어 지금도 과거를 청산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Schroeder) 독일총리는 "폭력적인 극우주의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은 정부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일말의 법적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다면 연방헌법재판소에 대해 극우파 정당의 활동 금지를 촉구할 것"이라 천명했다. 그리고 독일은 90년 동서독 통일 후 58만 5천 명이던 병력을 현재 30만 명 선으로 꾸준히 감축했다. 이렇듯 독일은 과거를 철저히 파헤쳐 과거 나치로부터 단절하고 오늘의 독일로 거듭 태어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정원의 잡초를 제거하듯이 우익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면서까지 막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을 향해 총리가 바낄 때마다 한국에 사과만 해야 되느냐, 우리는 독일보다 더 많이 사과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일본은 패전을 선언한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로 미화하고 이날이 되면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우익들의 성지순례로 변하고 있다. 정부 관료들은 총집결장 역할을 담당한다. 언론매체들은 전범들을 미화하기에 급급하고, 과거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그런 일을 했을 리가 없으며 증거를 가져오라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 전쟁 가해자로 당했던 원폭피해는 피해자로 둔갑시켜 놓았다. 성노예(위안부)는 조작되었다고 망동을 부리고 있다. 우리의 피와 땀을 쥐어 짠 3백여 기업체와 단체들은 역사조작에 앞장선 후쇼사를 지원하기 위하여 떼거리로 후원단체로 등장하였다.. 전범들을 영웅으로 조작한 영화관에는 구름 관중이 몰렸다. 역사를 조작하고 이웃을 비하하는 책을 사기 위하여 들쥐떼와 같이 몰려들고 있다. 잘못된 역사를 비판하는 세력들에게는 테러로 맞서고 있다.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전쟁에 대한 사과 및 배상 결의에 대해 개 눈깔 감추듯 비웃고 있다. 또 독일과는 달리 꾸준히 군사대국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노인들은 "정부는 유사법제를 만들고, 전쟁을 전제로 한 미사일방위구상을 구축하는 등 군비확충을 하려 한다. 침략전쟁을 깊이 반성하고 사랑하는 자녀와 손자들을 위해 평화를 지켜나가자"고 결의했다. 하지만 이는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로 들릴 뿐 야스쿠니의 참배객 숫자는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는 미국의 방조에 따른 망언 제조기로 알려진 이시하라 신타로.고이즈미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도화선이 되었다.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 기고가 월리엄 파프는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미국의 대중국 강경책은 일본의 국가주의만 키우는 셈이다”라고 논평하고 ‘고이즈미 등장 이후 평화헌법의 수정을 제안하는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가주의적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Pax Cinica로 무한 질주하는 중국을 견제

▲일장기에 쓴 여자정신대원들의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

하여 영원한 Pax Americana를 즐기기 위해서는 일본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정치경제적 현실에서 일본의 헌법개정과 군사대국화를 방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100년 전 동아시아의 정세를 연상케 하고 있다.

한편 2001년 8월 중국의 공산주의청년단 베이징지부 기관지인 ‘베이징 청년보’는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량윈샹 교수의 글을 인용하여 과거의 침략 역사를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이를 거부하는 일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신문은 여기에서 일본은 역사적·지리적으로 과거 반성의 능력이 없으며, 일본 민족은 이성적 사고와 반성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결론지었다.(조선일보 2001.8.17)

● 반성하는 독일 : 독일 민족은 이성적 민족이며 철학사상에 깊이가 있다. 사변적이며 반성을 잘한다. 그들은 유구한 역사문화를 지녔기 때문에 역사의 어느 한 부분을 부정할 능력이 있다. 일본인들과 달리, 정부는 바뀔 수 있으며 한 시기의 정부를 부정한다고 국가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역사·문화·경제의 동질성이 강한 유럽에 위치해 있어 주변국과 융화하는 데도 비교적 용이하다. 독일은 전쟁에서 패한 뒤 미국과 소련 등 연합국의 분리 통치를 받으면서 파시스트 국가기구가 철저히 해체됐다. 1949년 동·서독으로 분리된 뒤에도 과거 파시스트 정권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범들을 철저히 추적하고 자국 국민에게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었다. 과거 청산에는 정치인들이 앞장섰다. 아데나워 초대 총리는 “신독일과 독일 국민은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물질적으로 배상할 의무가 있으며, 모두가 승복할 만큼 나치범죄와 철저히 갈라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브란트 총리는 “역사(과거)를 잃는 사람은 영혼이 병든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 반성 결핍증에 걸린 일본 : 일본 민족은 이성적 사고와 반성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또 자신의 독자적인 찬란한 역사문화가 결핍돼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유일하게 화려했던 역사를 부정할 자신이 없다. 일본인들은 국가와 정부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국가는 영원 불변한 것이다. 나아가 고대 이래로 단일한 일왕 계통이 이어져 내려왔다고 믿기 때문에 역사 부정을 국가 전체의 부정으로 인식한다. 일본은 역사경제 등 다방면에 다양한 특성을 지닌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위치해 있어 인접국들과 융화되는 정도도 낮다. 일본이 반성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후 처리와 관련돼 있다. 당시 일본을 단독 점령한 미국은 일본 정부를 인정하는 간접통치 방식을 택했다. 여기다 냉전 상황이 전개되자 일본의 과거 범죄에 대한 청산 작업을 중지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철저히 자신을 부정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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