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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정부에 대한 비판

한국에서는 바로 앞의 정권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살아 있는 전직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죄질에 따라 예외 없이 감옥에 가두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어느 시대건 상관없이 모두 방영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메이지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 신의 나라, 살아 있는 신, 칙령, 역사 등을 조작하여 결국 망국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메이지 쿠데타 삼걸(三傑)이라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키도 타카요시(木戶孝允),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에 대한 재해석도 드라마에서 조차도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은 이 점을 오히려 미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 국민들의 건전한 비판이 형성되지 않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건전한 비판을 외면하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무자비한 살육과 강압에 의한 통치를 했던 사무라이 문화에 적응했던 것이요, 메이지 쿠데타를 일으킨 비열한 3류 사무라이들이 일본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 심어준 열병에 의한 것이다. 또 일본열도에 독자적인 유구한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메이지 쿠데타는 밑으로부터의 시민혁명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강압에 의한 지시 하달이었다. 따라서 밑으로부터의 변혁을 통해서 쟁취될 수 있는 시민적 법치민주국가의 이념과 합리주의의 과학적 검증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결국 민권을 제압하고 국권 중심의 부국강병의 관료통치와 국수주의적 군사국가로 발전해 나간 전쟁국가체제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모순으로 가득 찬 쿠데타였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비판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또 과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심리 속에는 일본국가는 항상 바르며 비판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존재’라는 인식이 메이지 시절 조작된 역사관과 황국사관에 의거 완벽하게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메이지가 오늘의 풍요로움을 전해준 근대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믿고 싶어한다. 지금도 전쟁의 결정이 국민을 위해 옳았는지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논하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비판이 시작되면 근대화 시작이었던 메이지 쿠데타와 일왕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것이고, 일본 근본 자체가 비판의 도마에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근현대사를 파헤쳐 나가는 일을 되도록 피해왔고 외면해 왔다. 오히려 건전한 비판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아시아 침략전쟁 막바지에 벌어졌던 오키나와 주민 대량 학살을 비판했다가 피소 당했고, 前 나가사키 시장 모토지마 히토시(本島等)는 ‘원폭은 일본이 받아야 할 천벌이었다’라고 전쟁을 비판했다가  테러의 대상이었다.

비열한 3류 사무라이들이 만든 메이지 시절 정부 정책에 비판을 가한 세력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극히 일부였다. 그 중 일본 최초의 사회주의 운동가로 알려진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는 ‘일년 반’이라는 평론을 통해 메이지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민권은 최상의 이치이며, 자유평등은 대의이다. 그 어떠한 제국주의라 하더라도 이러한 도의는 결코 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도리를 중국에서는 이미 맹자와 유종원(柳宗元)이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는 구미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소인배, 마츠가타 마사요시(松方正義)는 멍청이, 사이고 다카모리는 겁쟁이…..원로들 가운데에서는 선비다운 사상가가 한 사람도 없다. 이토오 히로부미 이하 모든 원로들은 하루라도 빨리 저 세상으로 사라져 주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에서는 “제국주의란 소위 애국심을 가로로 하고, 군국주의를 세로로 해서 베틀 위에서 짜는 피륙과 같은 정책이 아니겠는가?”라고 혹평했다. 또 ‘애국심’이라는 것은 배타적인 것으로 ‘야수적 천성이자 망령이고, 미친 듯한 열정이고, 허풍을 떠는 자랑이고, 싸우기 좋아하는 근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제국주의란 군비 확장을 촉진해서 ‘무기와 양식, 그 외의 군수 물자를 제공하는 자본가를 일확천금을 거머쥐는 갑부로 만들어 주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행해지는 ‘대제국의 건설’이란 것을 결국 ‘강도 및 살인 행위’라고 그는 단정지었다.

일제가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그는  ‘나는 단언하건대 제국주의 정부는 소수의 욕망을 위해 다수의 행복을 강탈하는 자들이며, 야수적 감정을 위해 과학적 진보를 저해하는 자들이며,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압살하고 사회 정의와 도덕을 말살하고 세계문명을 파괴하는 도적의 무리이다.’라고 메이지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 시인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사진)는 전쟁터에 나간 동생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詩 [아우야 절대로 죽지 마라]에서 다음과 같이 제국주의자들과 일왕을 싸잡아 비난했다.

[아우야 절대로 죽지 마라] 제3절
아우야 절대로 죽지 말거라
그(일왕)는 나아가 싸우라 하고
정작 그(일왕)는 전쟁터에는 나오질 않는구나
피 묻은 유품만을 남기고
짐승처럼 죽으라 하는구나
죽는 것이 대장부의 명예라 하는구나
일왕의 마음이 깊다면
이를 어찌 생각하실는지.

○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는 “전쟁을 천하의 대죄라고 하는 이유는 전쟁은 반드시 천지 간에 귀중하고 영적인 인명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인민들에게 사적인 싸움을 금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세계 각국 역시 서로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해서 마치 한 나라인 것처럼 되어야만 한다”라고 메이지 정부를 비난했다. 그리고 1876년 ‘원숭이 군주(猿人君主)’라는 글을 통해 메이지 쿠데타를 일으킨 군주와 실세들이 언론통제를 통하여 일반국민들을 말 잘 듣는 원숭이로 만든다며 이들을 ‘원숭이 군주’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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