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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망언 사례

일한병합조약은 뒤에서 상세히 밝히겠지만 메이지일왕을 비롯한 일본내각에서 치밀하게 사전 계획된 각본에 의거 이루어졌다. 또 총칼로 황제와 대신들을 협박하여 처음부터 끝가지 강압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 조약은 국제법상으로 분명히 그리고 완전히 무효다. 그러나 역사치매에 걸린 일본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자료를 공식자료처럼 내세워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당당하게 발표하고 있다. 또 ‘한국인들이 원해서 이루어졌다’라는 망언을 어제도 오늘도 그치지 않고 있다. ‘거짓말도 백 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히틀러식 수법을 역사를 모르는 일본 국민들에게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 사례를 살펴보면

1.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 : “조선인의 총의(總意)로 일본을 선택했으며, 우리는 결코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한반도가 분열해서 의견 취합이 안되니까, 그들의 총의로 러시아를 선택할지, 중국을 고를지, 일본으로 할지를 생각하다가 근대화가 크게 진전되고 같은 얼굴색을 한 일본인의 도움을 얻으려고 세계 여러 나라가 합의한 가운데 합병이 이뤄졌다. 조선의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토론하고 표결을 거치지 않았느냐? 당시 국제기구 가운데 그 어디서도 일본을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일한병합을 100% 정당화할 생각은 없으나, 시비를 가린다면 (조선인) 선조의 책임이다. 청나라의 실질적인 속령(屬領)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일본에 운명을 일임했다고 보는 게 정확한 역사이며, 일본의 한국지배는 식민지주의라고 해도 좀 더 선진화된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다.”

 

이시하라의 이러한 망언은 소설가 출신 정치인답게 픽션의 조작된 역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을 비롯한 불법 외국인들이 도쿄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으며 유사시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거나, 중국인의 흉악범죄는 민족적 DNA에 의한 것이며 중국을 쪼개야 한다는 등의 히틀러식 극언을 서슴없이 외쳐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시하라의 정신나간 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80% 넘나드는 지지도를 보내어 최장수 도쿄도지사가 되었으며, 고이즈미에 이은 일본총리 후보 1순위에 이르는 ‘이시하라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인들의 평균적인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며, 이시하라를 통하여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무서운 일본인들의 역사치매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2. 2003.11월 일본의 역사교과서 조작 파문을 주도했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前 대표 : “20세기 초엽까지 한반도는 법의 공정성도 없고 부(富)의 합리적 배분도 없는 지금의 김정일 체제와 같은 극빈 열악한 비인간적인 상태였다. 한국인은 이대로 일본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 보다 합병을 해서 세계1등 국민으로서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100만명이 넘는 일진회가 합방을 요청해 정치적 운동을 전개했고, 그것은 거대한 운동이었다. 얼마나 한국인이 합방을 환영했는지는, 일본제국군인이 되겠다는 한국인 지원병의 경쟁률이 1938년에 7.3 대 1,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30여 만명이 응모해 47.6대 1이었던 데서 드러난다. 물론 1910년 한일합방 시점에서 한국 내에는 합방에 반대하는 저항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합방이 조선인들의 총의(總意)라고는 말할 수 없을 지는 모르지만, 그 점을 빼고는 이시하라가 주장하는 모든 것이 맞는 말이다. 한국의 역사에 취약함이 있었던 것은 현재의 한국인의 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다. 한국인들이 자기의 취약점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죄이자 악”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니시오의 주장을 잠시 살펴보자. 100만이라는 숫자는 1906년 11월 당시 최대의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가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보낸 ‘합방청원서’서한 속에 썼던 숫자다. 친일파들이 일제에 잘 보이기 위해 부풀려놓은 조작된 숫자이다. 당시 상황을 아무리 과장한다 하더라도 100만 명의 회원을 가진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한편 병합 직전 1910년 8월 4일 실시된 경무총감부 조사에 의하면 일진회 회원 수는 약 9만 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일진회 회장이었던 이용구(李容九)는 1907년 소네 부통감에게 보낸 서한 속에 ‘병합 논의를 아는 사람은 회원 중에도 극히 드물다’고 썼다. 즉 일한병합은 결코 한국인의 전체적인 뜻도 아니고, 한민족 다수가 찬성한 일도 아니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3. 94년 일본에 대해 자유주의사관을 주창한 도쿄대학 후지오카 노부가츠(藤岡信勝)교수 : “1910년 강제합병은 조선이 자기관리능력이 없었던 결과며, 조선인은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는 의지도 능력도 없었기에 당연한 귀결이다”라고 주장했다. 노부가치는 그 동안 일본이 아시아침략전쟁의 사과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 하고 일본은 자학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 자이다.

4. 중의원 10선의 자민당 원로의원 격인 에토 다카미(江藤隆美) 前 총무청장관 : 에토는 95년 10월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은 좋은 일도 했다"고 망발을 지껄이여 사임한 전력이 있는 자이다. 그는 2003. 7월 후쿠이(福井)시 당지부 강연회에서는 일한병합 당시는 국제연맹 발족전임에도 불구하고 “1910년 일한병합은 양국이 조인하고 국제연맹이 승인한 정당한 것인데 어떻게 식민지 지배가 되느냐, 난징대학살 희생자가 30만명이란 주장은 날조된 거짓말이다. 또 도쿄 신주쿠(新宿)의 가부키초(歌舞伎町)는 도둑.살인을 저지른 제3국인이 지배하는 무법지대이다. 중국.한국 등의 불법체류자가 떼지어 강도짓을 하고 있다. 과거의 역대 일본총리는 침략전쟁이었다고 머리를 숙이는 등 자기나라가 나쁜 것처럼 말해 왔다. 일본인은 지금까지 스스로를 모욕하는 것 같은 짓을 해 왔다. 식민지였던 나라는 과거 종주국에 사죄를 요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에토는 최근에 발행된 그의 저서 <진정한 악역이 일본을 구한다>를 통해 아예 일본의 침략사를 본격적으로 미화하고 나섰다. 그는 이 책에서 ‘훌륭한 나라를 어린이들에게 물려주자’라는 문구를 정치에 입문한 이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왔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자부심을 갖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해왔다고 강조한다. 말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는 이웃나라를 짓밟고 그에 대해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는 나라를 ‘훌륭한 나라’라고 주장하는 꼴은 정신병자들의 축제를 연상케 하고 있다.

또 그는 이 책에서 “브라질·홍콩 등은 옛 종주국(宗主國)을 예우하고 감사해 하는데 왜 일본만 계속 사죄해야 하는가. 조선에 대해 우민(愚民)정책을 취하지 않아 지금도 비난 받고 있는 것인가. 일한병합은 양국이 합의해 이뤄졌고 다른 국가들도 인정했던 일한병합이 왜 지금까지 문제가 되는지, 나의 우수하지 않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은 조선의 발전을 위해 학교, 다리, 항만, 철도 등을 만들었다. 일한병합 전 조선인들이 연료를 구하기 위해 마구 벌채해 민둥산이 된 것을 일본정부가 나무를 심는 등 관리했고, 농업기술 도입 등으로 농가 생활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일본 내각 각료보다 더 많은 돈을 이씨 왕가의 사람들에게 지원하고, 일본정부에 공을 세운 이완용 등 76명을 귀족으로 대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등 일본은 조선인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등의 망언을 늘어놓았다.

5. 일본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다는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 : 그는 “역사를 왜곡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라고 말하면서도 1970년 출간된 그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는 러일전쟁을 “조선반도를 보호하고 일본을 방어한 자위전쟁이었다”라고 정신나간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시바의 이러한 주장은 명성황후를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잔인하게 학살했음에도 학살에 가담한 낭인들을 전 일본국민들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일한병합을 불법적.강압적으로 감행하여 고대역사서 분서.말과 글 사용금지.창씨개명.강제징용 징병.위안부 등 갖은 수탈을 자행한 일들을 조선반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시민을 강제로 납치하여 손발을 자르고 혀를 잘라 앵벌이를 시키고, 무인도에 감금하여 강제노역을 시킨다면 그것이 그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누가 믿는다 말인가. 이런 책을 일본 보통국민 1000만 명이 구독하여 베스트셀러가 되고, 일본 국민작가로 추앙하고 있다는 것은 일본 보통국민들의 역사수준과 의식수준을 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1953년 10월 한일수교 제3차 회담 때 일본측 대표인 구보타(久保田)의 “일본에 의한 36년 간의 한국통치는 한국에 유익한 것이었다”라는 망언을 시작으로 前법무장관 나가노 시게토(永野茂門), 前환경청장관 사쿠라이 신(櫻井新), 前부총리 겸 외무장관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 前총리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前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등 수많은 일본의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한병합은 정당했다. 태평양전쟁(아시아침략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구미열강으로부터 아시아제국(諸國)을 구하기 위한 방어전쟁이었다. 태평양전쟁(아시아침략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쟁이었고, 숭고한 전쟁이었다”라고 하는 망발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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