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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倂合에 관한 書類ㆍ着電.發電

明治 43년(1910) 8月~10月

8월 8일 오후 4시발
고다마 히데오(兒玉秀雄) 통감비서관 앞             시바타(柴田)
영국 정부로부터 병합 후 영 본국 홍콩 및 일본 내지에서 등록이 끝난 영국상표를 재조선 특허국에 등록할 때 상표 등에 관한 일미(日米)조약 제 5조와 같은 특전을 부여하여 달라는 뜻으로 비밀교섭이 있었음. 그러나 병합 후 조선에 특별한 특허국을 두지 않고 모두 토쿄 특허국에서만 등록을 하게 되면 이 같은 무제는 자연 없어지겠으나 만약 상표 등에 관한 사무를 총독부 관제 시행 때까지 귀부에 속하는 것으로 하면 그 기간동안에는 타외국인도 미국인과 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뜻으로 회답해야 되느냐는 논의가 있어서 아직 강구 중이나 먼저 귀부의 의견을 알고 싶으니 급히 회신 바람.

--- 중  략----
8월 11일 오후 3시
고다마 비서관앞                      시바타
외국영해수산조합법에 의한 수산조합으로 한국 영해를 목적으로 한 것은 병합으로 법률의 적용을 잃고 따라서 그 존립을 잃게 될 것임. 이에 대하여 「조선해수산조합에 관하여는 종전의 예에 의한다」라는 뜻을 규정한 긴급 칙령을 발하고자 하는 의론이 있음. 귀부 의견 어떠한지. 급히 답신 바람.

8월 14일 오전 8시발
데라우치 통감앞                       시바타
총리 가루이자와로 이동 중 뜻밖의 대수해로 인해 교통이 두절됨. 현재 귀경 방도를 강구 중임. 전보는 곧 전송했음. 추후 아무튼 회답이 있을 것임. 다른 일 제쳐놓고 먼저 내신함.

8월 14일 정오발
고다마 비서관앞                        시바타
귀전 보았음. 7일의 사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 또 외무성을 거친 전신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 위는 오늘안에 내착하고 따로 귀부와 교섭을 못하면 오늘 또는 내일 중 정리해야 할 것임. 그러나 상주한 뒤 추밀원에 자순(諮詢-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물음)이 내려져(현재 도쿄는 교통이 두절돼 외출한 의장 고문관의 귀경도 대단히 어려움) 다시 상주의 소속을 하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상당한 시일을 요함. 금주 중 발표는 상당히 어려울 것임. 특히 궁내성안은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어 매우 곤란하여 해결과 발표를 서로 상반(相伴)치 않아 그 시일에는 신중한 고려를 요함. 통감으로부터 수상에게 보낸 전신은 뒤에 답전이 있겠으나 위는 당장 소생(小生) 한 사람의 의견으로 사무상 관찰한 바를 말씀드림. 위를 통감에게도 말씀드리기 바람. ○ 이번 수해는 심각해 도쿄부 주변 및 인근 현의 상태는 필지(筆紙)로써 다할 수 없음. 참고하기를.

8월 14일 오후 3시발
고다마 비서관앞                            시바타
법령 전보는 도착하지 않음. 또 조사 결과는 아무튼 귀지와 교섭을 요하는 일이 있을 것으로 예상함. 따라서 추밀원의 조사회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함. 생각지 못한 수해로 사무진행에 커다란 방해가 생겼고 귀지에서 파견관이 없는 게 가장 불편함. 어젯밤부터 내릴 비로 또 여러 곳에 피해가 더 발생하고 총리대신과의 통신은 특히 극도로 곤란한 지경임. 참고하기를.

8월 15일 오전8시발
고다마 비서관앞                               시바타
지난날부터 예의 위원만으로 여러 안을 정리 중이나 어제 아침부터는 법제국을 합동시켜 심의에 착수함(궁내성안을 제외함.) 어젯밤 1시 귀부 전신 법령안을 착수하여, 회합자와 같이 한번 열람함. 회합자 일동은 되도록 의론교섭을 피하는 방침을 취했으나 앞서 각의 때도 별안간 성안(成案)이었음. 또 상주 후 추밀원에서의 의론도 되도록 적게 하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교섭을 하라. 이쪽은 위와 같은 방침이므로 귀부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의론을 고집치 말 것이며 대체로 동의 바람.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이 의론만 오고 갈뿐 시기를 잃을 우려가 있음. 또 이쪽의 의견도 일치하지 못함. 일개안의 의론이 모아질 때마다 타전하라. 오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답신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기 바람. 내일은 될 수 있는 한 상주코자 함. 가능한 한 진력하고 관련자에게도 되도록 말해두기를 바람. 천재 때문에 쌍방 계획에 얼마간 착오가 있었으나 이 또한 할 수 없는 일. 위를 미리 말씀하여 둠. 통감에게도 잘 부탁함.

8월 15일 오후 2시발
통감앞                                      총리대신
시국의 해결에 대하여 착수할 뜻이란 귀전 알겠음. 위는 조약체결과 그 공포(실행)사이에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므로 위를 양해한 다음에는 언제 착수해도 지장 없음. ○ 제법령은 다시 심사 중임. 서기관장으로 하여금 귀부와 혐의시킴. ○ 궁내성에 관한 것은 동성에서 광범위한 조사를 한 바 타전시킴. 의견이 있으면 말씀하시길. 파견한 속관은 아직 도착하지 않음. ○ 이동 중 뜻하지 않은 수해를 만나 유감을 금치 못함. 내일은 꼭 출발, 귀경 예정임.

8월 15일 오후 3시발
고다마 비서관앞                            시바타
(통감에게) 나가오 촉탁 방금 도착. 총리앞 봉서 2통, 소관앞 봉서 1통, 와타나베 궁내대신앞 봉서 1통 확실히 받음.

8월 15일 오후 3시 반발
가쓰라 총리대신 앞                     고무라 외무대신
이번 수해는 그 구역이 1부(府) 15현(縣)에 걸쳤고 각 지방에서의 보고는 아직 취합되지 않았으나 피해 정도는 적지 않을 것 같고, 지금 각 지방관은 마음을 집중해 열심히 이재민 구조에 힘쓰며, 특히 도쿄부내에서는 육해군도 이에 조력하고 각 지방에서도 대체로 이와 비슷함. 도쿄시는 한때 피해구역이 심히 컸으나 어제부터 점차 물이 빠지고 있음. 한국문제는 데라우치 통감으로부터 이번 주안에 해결될 것이라는 뜻의 전보가 있으므로 해결한 후 안으로는 추밀원에 보고하고, 밖으로는 조약을 내고(內告)하고 선언(宣言)하기 위하여 다소 시일을 요하므로 조약 조인과 공포 시행사이에는 약 1주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뜻으로 타전했음. 본건에 관하여 영국정부와의 교섭은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  수해 상황 및 한국문제의 경광에 대해서는 오늘 참내(參內)하여 자세하게 상주한 바 양해를 바람, 또한 이때 총리대신 각하의 귀경이 늦어지는 사정도 말씀해 두었음. 하라타 내무대신은 철도 불통으로 요코하마까지 육로로 가고 어제 동지에서 해로(海路)로 귀경코자 하였으나 심한 태풍 때문에 결국 요코하마에 되돌아갔으나 오늘 무사히 귀경했음.

8월 15일 오후 5시발
고다마 비서관 앞                                   시바타
전보로 말한 법령안 외 동시에 아래와 같은 여러 건의 공포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믿음. 만약 의견이 있으면 말씀하시길.
(1) 채무에 관한 재정상 필요처분(긴급칙령): ○ 종래 대장성 예금부(豫金部)에 대해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채무는 별도로 규정을 둘 때까지 일반회계 부담으로 한다.
(2) 국채발행에 관한 건(긴급칙령): ○ 조선에서 임시 은사(恩賜)에 충당키 위해 정부는3천만원 한도로 5부이자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
(3) 통항(通航)선박에 관한 건(칙령): ○ 내지 대만 및 화태와 조선 사이에 통항하는 선박은 개방된 항구로 출입할 것. 전항 선박의 개항 출입에 관한 수속은 외국무역선의 예에 따른다.
(4) 선박 물건 취체에 관한 건(긴급칙령): ○ 내지 대만 및 화태와 조선 사이를 출입하는 선박. 물건의 검역 및 취체에 관하여는 별도의 법령을 규정할 때까지 종전의 예에 따른다.
(5) 문관가봉령의 건(칙령): ○ 대만 만한(滿韓) 화태 재근문관가봉령(在勤文官加俸令) 중 아래와 같이 개정한다.
<대만 만한 하태 재근문관가봉령>은 <조선 대만 화태 및 만주 재근가봉령> 으로 고침.

제 1조 조선 대만 화태 및 만주에서 근무하는 문관에는 본령에 따라 정한 봉급이외에 더 지급한다. 단 조선인 및 대만섬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중  략----
8월 16일 오후4시발
데라우치 통감앞                                           시바타
궁내성의 발안(發案)에 걸린 여러 안은 일이 많아 문자 중 어려운 것도 적지 않고 전문으로서는 뜻을 소상히 알기 어려우므로 가능한 한 빨리 도착할 방법을 강구하여 본문 전부를 송부함. ○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을 전신으로 할 것임. ○ 여기에 다음 각 안의 대요만을 말씀드림.
(1) 태공 및 세사(世嗣)에 관한 조사안 ○ 현 황제는 태공으로 하고 세습으로 한다. 그 세자는 공으로 하고 태황제는 여전히 태공이라 칭하며 각 비는 각 태공비 또는 공비라 하고 모두 황족의 예로 대우하며 전하라 칭하게 한다.

      ▲가쓰라 다로 총리

(2) 공에 관한 조서안 ○ 이강(李堈)은 1대에 한해 공(公)으로 하고, 비는 공비라 하며 황족의 예로써 대우하고 전하라 칭할 것. ○ 본건 궁내성에서는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분명치 아니하므로 의화궁(義和宮)만을 가리킨 것이나 달리 이에 드는 자가 있으면 이강 이하를 이에 덧붙일 것.
(3) 조선귀족령상유안(朝鮮貴族令上鍮案) ○ 이가(李家)의 근친 및 그 방가(邦家)에 큰 공로가 있는 자는 조선 귀족으로 하여 총애하여 대우하고 세습의 작에 관한 전(典)을 정할 것.
(4) 이척태공 이형태공 이은공 이강공 사은표사안 ○ 4인은 모두 총우(寵遇)로 섬기고 장래 우리 황실에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화족의 황실에 대한 서맹서(誓盟書)에 해당하는 것임.
(5) 조선귀족서문안(朝鮮貴族薯文案) ○ 수작(授爵)의 은우(恩遇)를 감사하고 제국 국제법을 지키며 영원히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할 것.
(6) 조선귀족령안에는 갑.을 두 가지 안이 있으며 모두 20여 조로 돼있다. 갑안(甲案) 중 중요규정은 아래와 같다.
(가) 작(爵)은 태공의 현재 혈족으로서 황족의 예우를 받는 자와 가문 또는 공로가 있는 조선인에게 준다.
(나) 작은 공 후 백 자 남의 5등으로 한다.
(다) 유작자와 갖고 중 상속한 남자 및 그 처에 한해 귀족의 예우를 받는다.
(라) 상속인이 충순(忠順)을 결여한 행위가 있는 때에는 습작을 칙허(勅許)치 아니한다. 기타 내지화족령에 비하여 대체로 준엄하다.
○ 을안(乙案)은 대부분 화족령의 각 조를 그대로 둔 것으로서 특별한 규정으로서 앞서 게시한 (가) (다) 등이 있을 뿐이다.
(7) 조선 귀족의 서위(敍位)에 관한 황실령안 ○ 귀족의 서위에 관하여는 서위 조례를 준용할 것.
(8) 공족(公族)의 반위(班位)에 관한 칙정(勅定) 궁내성 도착안.
(가) 공족의 반위는 다음순서에 따른다.
(1) 이척태공 (2) 이형태공 (3)이은공 (4)이강공
(나) 우리 황족과 공족 사이에 두 태공은 황태자 황태자비 다음에 두 공은 종래 선하(宣下) 친왕 동비(同妃) 다음에 놓는다.
(다) 태공비 공비의 반위는 그 부(夫) 다음이다. ○ 전기(前記). (나)에 대하여 제2안으로서 두 태공은 선하(宣下 친왕 동비 다음에 두 공은 왕 동비의 다음에 놓는 안이 있다. ○(주의)태공 공 등을 공족이라 할 때에는 공(公)자를 쓴다.
(9) 태공 부(附) 직원의 관제: 황실령안에는 갑 을 두 가지 안이 있다. 갑안은 태공직에 일등관인 장관, 2등관인 차관 기타 5종인 고등관 및 4종의 판임관을 두며 을안은 별당가령(別當家令) 기타 3종의 주판임관(奏判任官)을 두는 것이다.
(10) 전게 여러 안에 따라 궁내성 관제, 궁내관 관등 봉급령, 궁내관 임용령, 궁내관 분한령(分限令), 궁내관 징계령 가운데 개정안이다. ○ 모두 공족, 조선귀족의 신설공족부직원직제에 따른 것이다. ○ 이상 갑 을 두 안이 있음은 궁내성에서 정부의 의견을 구하는 의미임. 수상 부재로 안을 정하여 의견을 들을 수 없음. 또 소관이 알지 못하는 일로서 수상과 직접 이야기가 끝난 것이 있는지도 모르나 수상 부재로 궁내성과 교섭을 벌일 수 없었음. 따라서 부랴부랴 그대로 타전함.

8월 16일 오후 9시발
고다마 비서관앞                                    시바타
총리는 무사히 고후에 도착함. 내일 귀경할 것임. 통감에 전하시오. ○내일은 오전에도 총리대신 관사에서 사무를 봄. 내일 소관앞으로의 전보는 오전ㆍ오후 모두 나가타초관사 앞으로 하길.
---중  략---
8월 17일 오후 4시 35분발
데라우치 통감앞                                     시바타
총리대신 지금 무사히 귀경함. 부탁한 봉서 확실히 전함.

8월 17일 오후8시 반발
데라우치 통감앞                            가쓰라 총리대신
한국의 국호에 관한 칙령을 바꾸는 건. 이는 지장이 없다고 보나 다시 생각한 뒤 내일 아침에 답전할 것.

8월 18일 오전 11시 반발
고다마 비서관                                      시바타
오늘부터 소관이 취급하는 전신에 번호를 붙이기로 하였음. 예컨대 (イ1) (イ2)와 같음. 양해를 바람.

8월 18일 오후 12시 반발
데라우치 통감앞                               가쓰라 총리대신
(イ2) 현황제를 창덕궁 이왕전하, 태황제를 덕수궁 태왕전하, 또 황태자를 왕세자전하로 하는 건. 한국 국호는 이를 고쳐서 이제부터 조선이라 칭하는 건 어느 것이나 이의 없음. 위 답함.

8시 18일 오후 3시 반발
데라우치 통감앞                             시바타
(イ3) 황실에 관한 건. 동의의 뜻 수상으로부터 답전이 있었으므로 어제의 귀전(30)에서 말한 요령(要領)은 궁내성을 통하여 동성(同省)에서 주지(主旨)에 바탕한 고안(考案)을 다할 것이나 본건은 각의에서도 극히 대강이 결정됨. 따라서 입안이 가장 곤란함. 이에 대해 내일 밤 도착할 궁내성안 전문을 통람(通覽)한 뒤 각 안에 대하여 가부(可否) 개폐(改廢) 의견을 수상에게 건의 후, 이에 의거해 궁내성에 교섭, 성안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게 신속하고 또한 실제에 적합한 것으로 믿음. 더욱이 서류가 내일 밤 도착하면 시기를 그르칠 가망도 있으므로 말을 전해 듣는 대로 필요한 부분만 전문을 타전하시오. ○ 황실이외의 황족 대우는 앞서 공( 公=キミ)이라 칭하도록 결정됐으나 변경은 없는지. 그 인명 및 이를 세습으로 할 것인지. 1대에 한할 것인지. 또 조선귀족이 될 수 있는 시기와 그 인명, 기타 이에 속하는 세부 항목 등은 어느 것이나 준비의 여지가 있어 상당한 시기에 각하로부터 수상에 내의(內議)가 있을 것으로 믿음. 위 주의시킨 대로 수상의 허가를 얻어 내신함.
---중  략---
8월 22일
고다마 비서관앞
(イ17) 추밀원에 자순한 법령안은 모두 내각 제출안대로 가결되다. 알고 있을 것. ○ 오늘부터 공포에 이르는 기간은 비밀리 유지하는 데 가장 어려울 때임. 이곳에서도 충분하게 주의할 것임. 귀부에서도 선처 바람.

8월 22일 오후발
데라우치 통감                                      시바타
(イ20) 칙사 파견 때 하사품이 있을 것이라는 엊그제 (イ9)에 말씀드린 바 다시 의논한 결과 이번에는 하사품이 없는 것으로 변경함. 양해 바람.

데라우치 통감                                      시바타
(イ21) 병합 때 발포를 요하는 것의 사본은 오늘밤 전부 귀지에 도착할 예정이며 이를 번역시키시오. 또 궁내성안은 협의를 끝낸 수정안으로서 지금 전신 집필 중 대사(大赦) 기타 오늘 말씀하신 것은 그 일부분이 착전하게 될 것임. 확정 후 말씀 드리겠음.

8월 22일
고다마 비서관                                  시바타
(イ24) 귀부 의견에 의거해 궁내성안을 수정한 전문은 다음과 같음. 단 괄호안은 모두 문자에 대한 주의임.
(1) 조서 10 이하 본문
(2) 조서 20 이하 본문 ○ 이상 ○ 위는 귀부 수정 의견과 취지는 동일함. 이제 와서는 이 이상 수정의 여지가 없음. 확정 안임을 알아두기 바라며 이 뜻을 통감에게 내신하도록. 확인하기 위하여 알았으면 답전 바람.

짐은 천양(天壤)의 무궁함과 큰 기틀을 넓히고, 국가의 비상한 예수(禮數)를 갖추고자 전 한국황제를 책봉하여 왕(李王이 아님)으로 하고 창덕궁이라 칭하며 뒤를 이어 융석(隆錫)을 세습시켜서 그 종사를 받들게 하고 황태자와 장래의 세사를 왕세자로 하며 태황제를 태왕으로 하여 덕수궁이라 칭케 한다. 각각 배필을 왕비 태왕비 또는 왕세자비라 하고 아울러 황족의 예로써 하고, 특히 전하라는 경칭을 사용하여 세가(世家)가 솔순(率循)의 도를 따르라(이하 궁내성과 같음).
짐은 생각건대 이강(李堈)과 이재면(李載冕)은 이왕의 의친(懿親)으로 아침 문후를 하게끔 하고 근역(槿域)을 첨망(瞻望)하는 것인데, 수우(殊遇)의 가석(加錫)을 더하게 하고, 그 의칭(儀稱)을 풍부케 하라. 이에 특히 공(公)으로 하고 그 배필을 공비로 하여 아울러 황족의 예로써 대우하고 전하의 경칭을 쓰게 하며, 자손들에게도 이런 영(榮) 석(錫)(쇠금 변에 바꿀 역)을 세습케 하여 영구히 총광(寵光)을 누리게 하라.
8월 22일 오후9시
고다마 비서관                              시바타
(イ26) 오늘 말씀하신 조서칙령안 등은 금명 중 발송할 모양이나 이제 와서는 발표 때까지 시간에 맞출 수 없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전보로 통감 이름으로 발안서(發案書)를 이곳에서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믿음. 의견 어떠한지.
---중  략---
8월 23일 오전 8시
데라우치 통감 친전                          가쓰라
(イ27) 조약 조인의 보고를 접하고 국가를 위해 경축해 마지않음. 이에 각원 일동을 대표하여 각하의 진췌(盡悴)하신 것에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함.

8월 23일 오전 11시발
데라우치 통감                               시바타
(イ30) 가쓰라 총리 고무라 외무 두 대신께서 ○ 조약공포기일을 29일로 함에 이의 없음.

8월 23일 오후 4시
데라우치 통감                                 가쓰라
(イ36) 병합 시 왕세자의 종래 위치에 변경이 생긴 것을 이왕 또는 왕족의 직원에게 곧 전보로써 전하도록 할 것으로 믿으나 의견은 어떠한지.

8월 23일 오후 5시발
고다마 비서관                                 시바타
(イ38) 조서 중 이왕을 왕으로 고침에 대하여 소관도 귀전(61)과 같이 생각하나 여하튼 문장상으로는 주장하기 어려움. 그래서 귀전에 의거해 궁내성과 협의했음. 현재 위는 주지(主旨)를 보충할 고시안(告示案)에서도 내놓을 것을 강구 중임. 조서쪽은 확정된 것으로 양해하고 통감에 내신해 두기 바람.

8월 24일 오후 3시
고다마 비서관                                 시바타
(イ40) 오늘의 각 신문은 주로 경성(京城) 전보를 게재하고 시국의 경과를 보도함. 약간은 사실인 점도 있음. 그제 어제의 호치, 야마토, 미야코 등의 기사는 신문 사회에서는 완전히 날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음. 지지 신보는 오늘 한국합병기념호란 것을 발행했으나 과거 역사를 게재하는 데 그쳤음. 기타 명사의 말이라 하여 여러가지 얘기를 실었으나 주목할 만한 가치는 없음. 경성에서 나왔다고 제목을 붙인 것 중에는 조작한 것도 있어 보임. 또 미야코 신문의 재료도 아직 내지 취재원인지 귀지 취재원인지 취조 중에 속하나 어쨌든 귀지에서 보내는 전보에도 주의하라. 또 오늘 내무대신께서 각 신문사를 대상으로 한 설득도 좀 좋은 결과를 거두었으므로 지난날 통감께서 수상에게 말한 것도 중요해 발표까지는 내용 기타에 대해 필봉을 삼가토록 합의했다고 들음. 위를 참고로.

8월 24일 오후 3시
고다마 비서관                                시바타
(イ41) 지난 17일 이재면을 흥왕에 봉했다는 귀전의 끝의 문장 ○ <왕(王)이란 친왕(親王)이다> ○라 함에 대하여 하문이 있었음. 귀지의 왕, 친왕, 군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또 그 종류는 일본의 어디에 해당하는지 봉답(奉答)이 급함. 곧 회신할 것.
 
8월 25일 오전 11시발
고다마 비서관                              시바타
(イ46) 오늘 각 신문은 경성전보(京城電報), 경성내신(京城來信), 경성귀객담(京城歸客談) 등의 제목으로 귀지에서 전날부터 내려오던 대관(大官)들의 왕복 기타의 동태를 기재하거나 이른바 대가 명사들의 한국담을 조회하고 또는 구미(歐米) 전보에 의한 외국신문지의 시국에 대한 논평을 기재하는 데 그치고, 사건 내용 등에 대해서는 주의할 만한 기사는 없음. 단지 발표가 29일, 30일경일 것이라는 간단한 기사가 있을 뿐 논설을 게재한 신문도 있으나 별로 불온하다고 할 많나 것은 없음. ○ 비밀 누설 방지에 대해서는 귀지에서 이른바 내지 정객이 한국측 유력자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충분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믿음. 이는 물론 소원하게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나 소관 하나의 걱정으로 말해둠. ○ 이상 참고키로.

8월 25일 오후 0시
데라우치 통감                            가쓰라
(イ47) 조선건은 이미 서명이 끝났다고는 하나 다시 한번 귀견으로 미리 문자 수정을 할 것을 상신하고, 진지하게 궁내대신과도 협의해 조서안 중(책봉하여 왕으로 함) 밑에 <창덕궁(昌德宮)으로 칭(稱)하고>를 < 창덕궁(昌德宮) 이왕(李王○이라 ○칭(稱)함>으로 고치고 또 <덕수궁(德壽宮)이라 칭(稱)함>을 < 덕수궁(德壽宮) 이태왕(李太王)이라 칭(稱)함>으로 고침. 위로써 귀지의 의견도 관철되고 동의한 것으로 믿으나 내일 아침에 다시 상주를 하기 때문에 확실히 하기 위해 받는 즉시 회전 바람.

8월 25일 오후0시 분발
데라우치 통감                            가쓰라
(イ48) 칙사파견 때 하사품 건을 다시 생각하여 그때 무엇인가 일본풍의 물건을 내려줄 것을 궁상(宮相)과 협의한 결과 <왕 태왕 왕세자>의 3인에 마키모노(권물(卷物)-단자(緞子)와 같은 직물(織物),편자)를 약간 내리고자 준비 중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받는 즉시 회답 기다림. ○ 내일 오전 10시 반 한황태자가 입궐하므로 그때는 평상시보다 정중하게 대하고, 하사품도 있을 것임. 위 양해토록 말해 둠.

8월 26일 오후 4시 20분발
데라우치 통감                            가쓰라
(イ53) 조약조서 기타 제법령은 오는 29일 오전 11시에 관보로 공포하기로 결정함. 이에 다른 의견이 없는가. ○ 왕 책립의 조서도 위와 동시에 공포할 예정이며 그때는 곧 궁내대신과 소관 연명(連名)으로 그 뜻을 타전하겠으나 지난날 타합(打合)한 위 조서발표를 왕 기타에 전달하는 일은 위 전보가 도착 전이라 하여도 당지 관보 공포시간과 적당히 가늠해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함. ○ 법령 기타 관보 등재 등 순서는 추후 서기관장으로 하여금 보고케 할 것임.

8월 26일 오후 5시발
데라우치 통감                        가쓰라
(イ54) 이번 궁내성 관제 개정(이는 조선에 관해 제기한 것이 아님)에 대해서 그 가운데 작위료(爵位寮)를 설치하고, 그 직제의 (1) 황족에 관한 사항 (2) 왕족 및 공족에 관한 사항 (5) 조선귀족에 관한 사항 규정을 설정하는 데 협의했음. 이는 단지 왕족 기타에 관한 사무를 궁내성에서 분과를 정했을 뿐, 다른 12개 처에 같은 문자가 있으나 어느 것이나 감독 등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설정한 취지는 아님. 귀족 그 밖의 사정은 추후 협의를 필요로 하나 본안은 단지 대체 규정에 그치고 따로 지장이 없도록 인정되므로 시일이 절박하여 바로 동의해 두었음. 위 양해를 얻고자 말씀드림.

8월 26일 오후 9시 40분
데라우치 통감                       가쓰라
(イ58) 귀전 (77)호 승낙함. 귀전의 취지는 본관도 원래 같은 의견이었음. 그러나 본건에 대해서 뭔가 이미 소통이 안된 점이 있는 것이 아닌지. 귀전 중 황족의 감독 운운이라 함은 조선 거주 황족에 대해 상당한 직권을 가짐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임. 시바타가 보낸 전보를 사열(査閱)한 바 왕족의 지배는 우리 궁내성에 이관한다는 의미는 결국 대강의 원칙을 말한 것에 불과하며 왕족 공족이 우리 황실의 지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조선 거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궁내성 관할에 속한다는 뜻에 지나지 아니함. 이는 따로 논의가 없을 것으로 믿음. 오늘 별도 전보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장래 조선거주 왕ㆍ공족에 대한 직접 감독의 직권을 통감에 위임함은 물론 가능한 한 이들 방법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더 문제가 된 황실령안과 같은 것은 단지 직원 잔무 규정에 그치고 장래 문제에 대해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도 생각함으로써 시일이 절박한 때 동의가 된 것으로 믿고 싶음.

8월 29일 오전11시발
데라우치 통감앞                             가쓰라
(イ76) 왕족 및 공족에 관한 조서가 방금 공포됐음. 위 전달 방법은 적당히 선처하라.

가쓰라 총리대신
와타나베 궁내대신

8월 29일 오후 2시발
데라우치 통감앞                               가쓰라
(イ78) 조선에 관한 조칙 조약 기타는 지체없이 발표함. 지난 시간에 참내하여 배알함. 폐하께서도 만족한 모습에 경의를 표함. ○ 끝으로 동료 일동과 함께 각하가 건강하고 더욱 더 진췌하기를 빈다.

8월 31일 오후발
데라우치 통감앞                                시바타
(イ81) 귀전(99)호 양지함. 왕 책립의 건은 이미 관보에 조서를 공포해 형식을 끝마친 것으로 책립 의식은 다시 필요치 않음. 기타는 단지 사정을 짐작한 일종의 방법에 불과함. 시바타가 보낸 전보(イ9호 참조) (조서 사본을 전하고 아울러 소식이 있었기 때문) 칙사를 출발시킴은 이례(異例)임. 그 이상의 의식을 준비한다 함은 어떠한 것을 필요로 한다는 의견인지 귀관께서 민(閔) 궁상으로 하여금 조서공포를 전하게 함은 단지 그 사실을 알려드리는 데 그치고, 칙사가 정식으로 조서사본을 전함은 전혀 중복이 안 된다고 생각함. 또 위 칙사가 출발해 귀지에 도착하면 칙명을 전할 방법 등에 대해서는 모두 귀관과 협의 결정할 것이며, 그 중요한 일은, 다시 이쪽에 훈령을 바랄 것을 궁내대신께서 훈령해 두었음. 이번 칙사가 <왕(王) 책입사(冊立使)가 아닌 것> 에 유념하고 세세한 항목에 대하여는 칙사께 청취바람. ○ 사은에 대하여는 귀전 (40)호로써 시바타에게 말한 바와 같이 그 방법에 대해서는 성안이 있겠으나 본관의 생각으로는 (칙사에 대해서는 단지 먼저 천황폐하께 청할 뿐이므로) 이왕이 바로 상경해 참내함이 정식이라 하겠으나 이를 곧 실행치 않을 것으로 생각함으로써 귀관께서 적당하다고 고려하는 방법에 따라 귀관을 거쳐서 우선 사은의 뜻을 표명하든가, 또는 재경 왕세자로서 대리 참내케 하여 먼저 사은의 뜻을 표명해 두고, 다른 날 적당한 방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함. ○ 위는 궁내대신과도 협의한 것임.

9월 30일 오전 9시발
데라우치 통감앞                            가쓰라
(イ100) 귀전 품신 406명 및 25명에 대한 상여와 기우치 외 6명에 대한 상여는 29일자로써 시행의 건 인가함. ○ 인명 금액은 모두 추후에 보고하라.

10월 1일 오후 12시 반발
데라우치 조선총독앞                             가쓰라 총리대신
귀관은 오늘 조선총독에 겸임됨. ○ 야마가타 이사부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임명되다. ○ 상주한 칙주임(勅奏任) 기타 모두 임명됨. ○ 위 이를 알림.

10월 7일 오전 9시 반발
데라우치 총독앞                                  가쓰라
(イ105) 관제 기타 지체 없이 실행하는 취지에 진력함을 자세히 알겠음. 조선 부인 관광건(觀光件)은 각하가 귀경하신 후 만사 협의한 다음 하고 싶음.

10월 9일 오후 5시 반발
데라우치 총독앞                                  가쓰라
귀전 126호 조선 귀족 도일(渡日) 건은 거듭 조회한 취지 양지함. 대우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방법을 강구하겠기에 차제에 적당히 결정하도록.

10월 8일 오후 9시 반발
데라우치 통감앞                                    가쓰라
어제 수작한 조선인의 서위의 건, 내칙(內則)에 따르면 각 작(爵) 모두 처음 차례는 종5위로 정했으나, 일본인의 경우에는 대개 종5위 이상의 작위가 있는 자로 내칙에 의함은 드묾. 지난 번 고마쓰 후작은 특별히 내칙의 예외로서 재가를 앙청해 정5위에 품계를 준 것임. 이번의 수작자도 내칙대로 모두 종5위로서 지장이 없다고 하면 그것으로 좋겠으나 연령의 노약과 종래 지위, 경력에서 계급을 두어도 좋다고 생각함. 즉 1안을 입안했다고 하여 궁내성으로부터 내부 협의가 있었음. 그 안은 후작에게는 처음 품계 종4위(30세 미만에게는 정5위), 백작에게는 정5위, 자ㆍ남작(子ㆍ男爵)에게는 종5위(70세 이상에게는 정5위)를 내려주도록 재가를 앙청코자 함. 소관이 생각건대 차제에 이와 같은 계급을 두는 것도 온당치 않을까도 생각함. 절대로 내칙대로 할 것인가. 별안(別案)에 의할 것이면 궁내성안과 같이 할 것인가 각하의 의견을 알고 싶음.

韓國倂合에 관한 書類ㆍ着電

明治 43년(1910) 8月~10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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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오후 4시 45분 경성발 14일 오전 1시 5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통감
전부터 내명(內命)을 받은 시국 해결은 내주부터 착수코자 함. 특별한 지장 없이 진행함에 이 주말에는 모두 완료시킬 의견임. 위에 대하여 제국정부가 취할 조치 및 조약공포 때 과도처분으로 제정할 법령 등은 적당히 수배를 부탁함. 다만 위 법령 중 이쪽에서 기안하거나 수정을 가한 서류는 모두 촉관(囑官)을 시켜 휴대 상경시킨 바 기차불통 때문에 연착했으나 이제는 이미 입경했을 터임. 위 준비사정이 어떤지 받는 즉시로 타전바람.

8월 14일 오전 입수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비서관
나가오 아직 도착하지 않아 한국병합 시 필요한 법령 전부를 외무성을 거쳐 전보함.

   
 
8월 14일 오후 10시 45분 경성발 15일 오전 1시 15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비서관
오늘 오후발 전보 4통 보았음. 법령에 관한 전보는 간신히 도달됨. 나가오도 오늘 아침 6시 하치오지에서 출발, 도쿄로 간다는 사정인 바 오늘 중 도착할 것으로 생각함. 교통기관 불통 때문에 심려를 끼쳐 면목없음. 아무쪼록 잘 부탁함. 수산조합 및 특허국 직원건 내일 아침에 회전하겠음.
---중 략---

8월 15일 오후 12시 35분 경성발 동 7시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데라우치 통감
내지 수해는 예상 밖으로 중대한 모양. 수상과 동료 제군에게 문안드림. 잘 부탁함. 수상께서 귀경하였는가. 귀경날짜를 회전 바람. 이전에 말해둔 전보건은 금주 중에는 순조롭게 진척시키기 곤란하다고 생각되므로 이쪽에서도 재량껏 추진하겠음. 되도록 빨리 준비를 바람. 또 귀전 중 궁내성측에 관한 건에 이의 있다고 운운한 것은 근본이 이미 지난 번 내각에서 결정한 것으로, 처분안과 함께 수상께서 내주(內奏)를 이룬 것이었음. 따라서 지엽적인 수속 등을 회의에 부쳐 결정함은 당연할 것이나 대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함. 이 수작(授爵)의 대강에 이의가 있다고 하면 한국 정부와의 담판은 그 일을 결정할 때까지 이를 연기할 수밖에 없을 것임. 외무대신과도 협의 뒤에 속히 회답 바람.

8월 16일 오전 9시 45분 경성발 오후 3시 55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통감
대원군의 사자 완흥군(完興君) 이재면(李載冕-태황제의 형으로 현황제의 숙부)을 친왕으로 승격(陞格)시키고자 하는 희망이 있음. 본건은 전부터 각하께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동의하여 둠. 승낙을 바람.

8월 16일 오후 12시 20분 경성발 5시 20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2)의 2항의 주차(駐箚) 앞에 한국(韓國) 또는 조선(朝鮮)이란 문자를 가하지 않는 건 이의 없음. ○ 외국영사재판에 계속(繫屬)중인 사건 처리는 각국 영사에 통첩을 발송해 이를 조치할 것. 청국인 거주제한은 부령(府令)으로써 이를 공포하는 데 동의 바람. ○ 특허국 폐지 변리사령은 발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므로 귀관 의견대로 조처 바람.

8월 17일 오후 3시 경성발 4시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통감
지난날 통감부 촉탁이 휴대해 올린 칙령안에 <구한국(舊韓國)의 경토(境土)는 이를 조선(朝鮮)으로 칭한다>라고 돼 있으나 위는 한인측의 의향도 참작할 사정이 있어 아울러 위 안(案)을 다음과 같은 자구로 고쳐서 조약공포와 동시에 공포하여 달라<한국(韓國)의 국호(國號)는 이를 고쳐 이제부터 조선(朝鮮)이라 칭한다>. 위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으로 믿으나 먼저 회전 있기를.

8월 17일 오후 4시 35분 경성발 10시 2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통감
조칙(詔勅)으로써 15일자로 완흥군 이재면을 흥왕(興王)에, 부인 이씨는 왕비에 봉하였음. ○ 왕이란 친왕(親王)을 말함.

---중 략---

8월 19일 오전 11시 55분 경성발 오후 2시 30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데라우치 통감
귀전의 3호 살펴 알겠음. 황실에 관한 건은 궁내성안을 본 뒤 의견을 갖춰 수상에 건의코자 함. ○ 황실 이외 황족의 대우 및 조선 귀족에 관한 건도 또한 성안 뒤 가능한 한 빨리 수상에게 내의(內義)하도록 조처할 것임. ○ 다만 왕의 선하(宣下)에 대해서는 특히 칙사를 보내든지, 또는 총독에 위임하든지 모두 상당한 의식을 갖출 것으로 생각함. 귀족 수작 건은 다소 늦어도 지장이 없겠으나 왕의 선하는 병합과 거의 동시에 처리하는 게 득책이므로 이들 순서에 관해서는 빨리 수상과 궁내성이 의견을 결정한 후 급히 회전하도록 조처하기 바람.

8월 20일 오후 4시 39분발 8시 50분 착국 11시 입수
가쓰라 총리대신 앞 데라우치 통감
임시 은사금 하사에 관한 수속은 대강 아래 순서에 따라 이를 취급코자 함. 미리 양해하여 두기 바람.
(1) 조선 귀족 인선은 성안 뒤 각하를 거쳐서 재가를 앙청해야 함은 물론이나 임시 은사금 하사방법에 대해서는 3천만원(圓)의 범위 안에서 이를 하사 받을 인선 및 금액의 심사, 하나의 수속에 관한 일체의 사항은 본관만이 취급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실제로 편리하다고 믿으므로 이들을 통틀어 본관에 위임하고 결행 뒤 보고할 것에 승인 있기를 바람.
(2) 은사금 하사는 가능한 한 빨리 이를 시행함이 득책이라고 판단하므로 먼저 본관 이름으로 사령을 발하고 공채 가증서(假證書)가 되는 대로 이를 교부하여 주고, 후일 본증서와 교환코자 함.
(3) 한국 황실의 세비는 올해 12월분까지는 이미 지출됐으므로 내년 1월분부터 지출해도 지장이 없을 것임. 그러므로 금년도 예산은 총독부 특별회계에 이왕가 세비(歲費)로서 계상(計上)함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함.
(4) 일개인에 대한 하사금 및 각 종파와 기타 자선사업의 대표자에 하사할 분은 기명공채로 하고, 지방 수산(水産)자금 및 기명식을 사용키 어려운 것은 무기명식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임.
(5) 가공채증서(假公債證書)의 제작은 이를 대장성에 의뢰할 것이고, 그 종류와 매수(枚數)는 조사 후 급히 통보하게 될 것임.
(6) 공채가격 유지와 공채 폭락의 폐해를 방지키 위해 한국은행으로 하여 금 액면대로 매상(買上)할 일을 취급시킴과 동시에 공채증서의 매매 저당 등에 관해서는 엄중한 취체 규정을 마련하게 될 것임.
(7) 지방 수산자금의 보관 및 이자 사용방법에 대해서도 필요한 규정을 마련할 것임.

8월 20일 오후 4시 39분발 6시 5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통감
한국 폐하는 도쿄 기타의 대홍수 상황을 들으시고 우리 천황 폐하에게 문안을 드리고자 학부대신 이용직(李溶稙)을 특파하신다는 존의(尊意)를 본관에 전해 오다. 동관은 내일 밤으로 출발, 체재 대충(不明) 주간쯤 예정이므로 상당한 대우를 해주기 바람.

8월 20일 오후 8시 40분발 21일 오전 0시 48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데라우치 통감
우송에 관련된 궁내성 제출안 제1호 조서 기일(其一)중 <태공(太公)으로 하고>를 <이왕(李王)으로 하고 창덕궁(昌德宮)으로 칭(稱)하게>로 고치고 <장래(將來)의 세자(世子)를 공(公)으로 함>을 <기세자(其世子)를 왕세자(王世子)로 하고>로 고치고 <태황제(太皇帝)>이하 <병(竝)>까지를 <태황제(太皇帝)는 여전히 태왕(太王)으로 하고 덕수궁(德壽宮)으로 칭(稱)하고 각기(各其)의 여필(儷匹)을 왕비(王妃), 태왕비(太王妃) 또는 왕세자비(王世子妃)로 하고>로 고치고 <신민(臣民)으로 하여금>을 삭제할 것.
조서 기이(其二) 이강(李堈) 다음에 급이재면(及李載冕)을 추가하고 <태공(太公)>을 <이왕(李王)으로 고치고 <병(竝)> 이하를 아래와 같이 고칠 것. 이에 특히 공의 영작(榮爵)을 주고 기타의 배비(配妃=配匹)를 공비(公妃)로 하고 황족의 예로써 대우하고 전하의 명칭을 사용할 것을 허락하며 이 영작을 세습함으로써 자손으로 하여금 길이 총광(寵光)을 형유케 함. 이척(李拓) 태공 이하의 사은표(謝恩表)는 원안과 같은 형식을 쓰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사은의 뜻을 나타내게 하고 싶기에 모두 철회토록 궁내성과 협의하기 바람. 또한 태공직관제안(太公職官制按-5호) 공족부직원관제안(公族附職員官制按-6호)은 오늘 갑자기 확정하지 못함. 시국해결 후 현재의 한국 궁내부 및 창녕부(昌寧府) 직원에게는 잔무취급을 명령할 예정이나, 위 관제안(官制案)을 뒤의 협의에 양보해 주기 바람. 다만 귀족령은 시국해결과 동시에 발포할 필요가 있다가 인정함에 위에 대한 이쪽의 수정의견은 내일 중 전보하겠음.

8월 21일 오후 0시 40분발 3시 57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비서관
황족의 반위(班位)에 관한 규정은 아래와 같이 전문을 개정하여 달라.
○ 왕족 및 왕족의 예우를 받는 자의 반위에 관한 규정.
제1조 왕족 및 그 예우를 받는 자의 반위는 아래의 순서에 따른다.
제1 이왕(李王)
제2 태왕(太王)
제3 왕세자(王世子)
제4 이강공(李堈公)
제5 이재면공(李載冕公)
제2조 황족과 왕족 및 그 예우를 받을 자와의 사이에 이왕 및 태왕은 황태자, 황자비의 다음에, 왕세자 이강공 및 이재면공은 종래의 선하(宣下) 친왕 동비 다음에 열(列)한다.
제3조 왕비 태왕비 왕세자비 및 공비의 반위는 각기 부(夫)의 다음에.

8월 21일 오후 0시 40분발 8시 35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비서관
조선 귀족령은 갑안(甲案)을 가(可)로 하고 그 중에서 아래와 같이 수정하여 달라. ○ 제2조 중 태공(太公)을 이왕(李王)으로 ○ 7조를 「유작자(有爵者)의 가족으로서 아래에 언급한 자는 귀족과 동일한 예우를 받으며 (1) 증조부, 조부, 부 (2) 작을 계승받을 수 있는 상속인과 그 적장남자(嫡長男子) (3) 앞의 2호에 언급한 자의 배우자」○ 9조를 「유작자는 가범(家範)을 정할 수 있다. 가범은 궁내대신의 인허를 얻어야 한다. 이를 폐지 변경할 때도 역시 같다. 유작자가 20년 미만일 때 또는 앞 조의 경우에 해당할 때는 가범을 정하고 또는 이를 폐지 변경할 수 없다」
○ 제10조를 삭제
○ 제12조를 <습작은 상속개시 때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로
○ 제12조 제2호 중 <체형>을 <금옥(禁獄) 이상의 형>으로
○ 제16조 제1항 중 <체형>을 <금옥 이상의 형>으로
제2항 중 <족칭(族稱)>을 <귀족의 족칭>으로 고치고
○ 제23조로 하여 아래 일조를 추가함.
본령에 규정한 궁내대신의 직무는 조선에 주거하는 귀족에 대해서는 조선총독이 이를 시행한다. 전항의 경우 제8조의 심사위원은 조선총독부 고등관 중에서 이를 명한다.

8월 21일 오후 3시 50분 경성발 8시 2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 데라우치 통감
도쿄에서 한 차례 조사한 뒤에 보내드린 임시 은사금 분배방법 중 정당해산자금 및 윤덕영(尹德榮) 부채정리에 관한 분(分)을 공채로써 교부함은 사정에 적합치 않은 것으로 인정하므로 정당에 대해서는 50만원 이내, 윤덕영에 대해서는 20만원 이내의 현금을 교부하여 이를 처분코자 함. 그러므로 앞서 지출한 앙청한 임시 기밀비 백만원 외에 다시 50만원 지출승낙을 바람. ○ 그 결과 정당분 20만원, 윤덕영분 50만원의 공채증서는 위를 처분키 위하여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됐음.

8월 22일 오후 0시 55분 경성발 5시 10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데라우치 통감
한국의 국호 개칭. 황실의 대우와 아울러 귀족령 대사 지세 경감에 관한 건에 같이 과도기에 직접 한국과 관계되는 조칙과 법령은 내지에서 공포됨과 동시에 당지에서도 공포할 필요가 있기에 확정된 것은 급히 전보하기를 바란다. 이는 모두 조선문으로 번역하는 수속이 필요하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진척하여 달라.

8월 22일 오후 4시 50분 경성발 10시 38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통감
내지 신문이 기사나 논설로 한국의 황실을 멸시하고 또는 한인을 경멸하는 듯한 투로 쓰기 때문에 한국 관민의 감정을 해치고 이롭지 않은 영향을 주 일이 종종 있어 이는 참으로 유감된 바로 본관은 착임 이래 더욱더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함을 통절하게 느꼈음. 만약 시국이 해결되고 일본이 크게 성공했다고 하면 이 때문에 되레 자존과 오만심을 조장하거나 더 나아가 신부양민(新付良民-새로 따르게 된 백성, 편자)을 모욕하는 일이 있으면 장래 시정에 많은 어려움이 우려됨. 이에 다시 시작하는 일신의 시기를 맞이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부양민은 즉 그 동포가 됐으므로 이들을 대하는 데 항상 동정을 갖고 서로 제휴해 다같이 국가의 복룡(福龍-不明)훈계방법을 강구함으로써 내지 신문 취체에 내무대신으로 하여금 상당한 조치를 취하게 한 까닭을 이해하고, 종래에 태도를 일변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며, 당지에 있는 본방 재류민에 대해서는 불명(不明)과 동시에 더 한층 일반 국론(國論) 지도에 대해서 각하께서도 힘써 줄 것을 건의함.

---중 략---

8월 23일 오후 10시 45분발 오후 0시 55분착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병합 때 발포에 필요한 서류 전부는 어젯밤에 도착, 안심하라. ○ 대사와 지세 경감에 관한 건은 귀측은 뜻대로 추진하여 달라.

8월 23일 오전 11시 10분발 오후 2시 55분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귀전(イ24)호 조서의 건 이의 없음. 그러나 단지 왕(王)이란 문자를 쓸 때에는 종래부터 써온 조선왕(朝鮮王)이란 칭호를 쓰고자 하는 희망을 제출할 우려가 있음. 우리측에서는 특히 이왕(李王)이란 문자를 씀으로써 미리 이를 막고자 하기 위함임. 보낸 안이 확정안이라면 구태여 주장하지 않겠으나 주의하기를, 명에 의함.

8월 23일 오후 6시 17분발 24일 오후 1시 38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본관은 한국 정부와 병합 문제에 관해 대강의 협의를 매듭지어 드디어 어제 22일 오후 4시를 기해 조약 조인의 절차에 이르러 어제 아침 10시 민(閔)궁상, 윤(尹) 시종원경을 관저로 불러들여 지금까지 정부와 교환한 의견의 대요를 설명하고 또한 이미 조약체결의 때가 된 뜻을 말하고, 그 순서로서 황제가 먼저 조칙을 각신에 내리고 전권위원을 임명할 필요가 있다 운운. 이는 본문제를 해결함에는 극히 평순(平順)하고 원만한 방법이라고 충고하여 이를 집주(執奏)할 것을 요구한 바 두 사람은 승낙하고 곧 참내(參內)해 위 뜻을 상주하겠다고 말하고 물러났음(위 절차는 대체로 사전 협의가 끝난 것이나 아직은 표면상 본관이 직접 권고할 필요가 있기에). 두 사람이 오전 11시 참내로 바로 알현해 본관이 충고한 요지를 상주한 결과 황제는 오후 1시에 국무대신을 비롯해 강왕(堈王) 이재면(李載冕-황족의 의친(懿親) 자격) 중추원의장 김윤식(金允植), 시종무관장 이병무(李秉武) 등을 불러 모두 어전에 모이라는 칙명이 있었음. 같은 시각에 이(李) 총리를 비롯해 각 대신(이 학상은 병으로 불참)과 앞의 각원 민 궁상, 윤 시종원경 등이 열석한 자리에서 한제(韓帝)는 별전 제63호의 조칙을 이각부(李ガク)에게 내리고 또 시국해결의 요지를 널리 선포해 알리셨다. 여기서 이 수상은 갖고 있던 조약안을 성람(聖覽)에 바치고 한 조목씩 차례대로 설명한 바 있었음. 황제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재가하셨다. 이로써 일동은 어전에서 나와 각 대신은 일단 내각에 모인 다음 이 총리와 조(趙) 농상은 같은 차편으로 본관 관저에 와서 이 총리가 먼저 말하기를 오늘 조명(詔命)에 의해 각 대신 기타와 같이 어전에서 회합한 바 폐하는 시국의 대세를 뒤돌아보고 일한합병은 실로 부득이한 일임을 인정하며, 짐은 이에 통감의 충언을 양해하고 합병문제를 해결키로 결정했음을 선포하고 이 위임장을 내려주셨다(조칙을 내어 보임). 이는 폐하가 스스로 서명하고 국새를 찍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본관은 이에 대해 이 문제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원만하게 해결됨은 귀 황제 폐하의 넓은 도량에서 동양평화를 영구히 유지하고 한국민의 장래에 행복을 증진 발전할 것을 기대하는 뜻일 것이라 믿음. 이는 장래에 일한 양국인을 결합시키기 위해 참으로 좋은 예이므로 축하해 마지않는다고 대답하고, 이에 조약서에 조인을 마치고 이를 교환하고 각기 2부를 수령했음. ○ 위로써 이 총리, 조 농상은 덕수궁으로 가서 태황제에게 시국해결의 전말을 설명하고 위안의 수단을 남겨두고자 하고 퇴궐했음. 오후 4시에 민 궁상, 윤 시종원경이 찾아와서 황제의 뜻을 전함.

짐은 오늘 아침에 두 사람(민 궁상, 윤 시종원경)에 대하여 통감께서 준 충언을 양해함. 짐은 벌써부터 풍문으로 전해온 시국문제란 것을 조만간 해결할 때가 올 것으로 예상해 왔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때가 왔다. 그러므로 짐은 정부대신에게 취지를 내리고,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코자 필요한 위임을 하였다. 생각건대 이 총리는 통감과 직접 일체의 요건을 종결했다고 믿는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짐은 이제부터 국무와는 상관된 바 없다, 다만 우리 일가를 정리하고 우리 종실의 제향(祭響)을 영구케 함에 있다. 이에 특별히 통감에게 고려를 구하고자 하는 일은 현재의 궁내부는 다소 변경을 면할 수 없을 것이나 지금 이를 현저히 대변경을 일으켜 많은 인원을 감축한다면 일반 국민의 감정에 비추거나 또는 체면을 유지하는 데 면목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일본 천황폐하는 일찍이 우리 제실에 깊은 교의(交誼)를 표명하고 우리 황실도 항상 그 은혜에 감사했다. 생각건대 앞으로도 짐에 대한 귀 제실의 호의는 감히 조금도 경중(輕重)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세비 같은 것도 종전대로 지급한다는 것을 보아도 귀 제실의 호의 있는 바를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고 운운.

이에 당관(當官)은 서두에서 이 총리가 말한 바와 대략 같은 인사를 하고 또 이왕가에 대해서는 일본 황족과 같은 예우를 하겠으며 그리고 일본에서 황족가의 가정은 스스로 규정이 있으나 이를 바로 이왕가에 준용하는 일은 어쩌면 없을 것이며 다소의 특례는 둘 것이라고 대답한 바 두 사람은 이를 양해하고 돌아갔음. 이에 본관은 일면 시국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것을 재차 상세하게 각하께 전품(電稟)함과 동시에, 겸하여 일면에서는 이상의 전말을 타전하여 감히 각하의 심정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자 함. 또한 한제(韓帝)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세의 요구에 응하여 우리 충언을 잘 받아들여 피아가 의기투합하여 시국해결에 힘쓴 이상 그 종실에 대해서는 마음 놓고 길이길이 이를 존속시키고 또한 이에 상당한 예우를 내리심은 실로 우리 지존의 지인지덕(至仁至德)한 넓은 도량을 일반에게 표시하는 바로서, 또 한국민을 그 은택에 감읍시키는 근본 까닭이라고 믿음. 따라서 사정이 허락하는 한 대우는 특별한 은전을 베풀어 줄 것을 바람. 따라서 이 기회에 조서 사본을 갖고 파견하게 될 칙사(시바타 卒電 イ9호와 같이)가 우리 제실의 하사품과 조서 사본을 전달하는 것은 종전 역사를 생각해도 감히 이례가 아니라고 여겨지는 고로 가능하면 이 같은 정중한 형식을 채택해 줄 것을 원함. 또 한태자(韓太子)에 대한 전래의 대우 같은 것도 이 기회에 현저한 변경이 없기를 바람. 만약 그렇지 아니하고 조금이라도 종전의 것과 다르게 보이면 이는 두드러지게 한국 백성의 감정을 자극하고 나아가 우리 지존의 신의를 가볍게 볼 우려가 있으므로 이 점 특히 주의 바람. ○ 이상은 어느 것이나 우리 제실과 이왕가와의 예우상의 의례에 지나지 않으나 필경 장래에 정략상 관계가 적지 않겠기에 특별히 전품함. 자세히 살펴보기 바람.
또 궁상에게도 내시(內示)를 원함.

8월 23일 오후 6시 2분발 동 8시 50분착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왕전(往電) 제62호에 관한 조칙의 번역문은 다음과 같음.
○ 짐은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일한 양국의 친선 관계를 돌아보고 서로 합쳐서 일가가 되는 것이 서로 만세의 행복을 도모하는 소이로 생각돼 이에 한국의 통치를 모두 짐이 가장 신뢰하는 대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필요한 조장(條章)을 규정하여 장래 우리 황실의 안녕과 백성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하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으로 하여금 대일본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회동하여 상의ㆍ협정케한다. 제신(諸臣) 또한 짐의 뜻의 확단한 바를 받들어서 봉행하라.

8월 24일 오전 10시 10분발 오후 0시 4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왕 책립의 조서 중 본관이 특히 이왕(李王)이란 문자를 써둔 것은 이를 단지 왕이란 문자로 고친 것이었음. 본건에 대하여 시바타 서기관장까지 주의해 둔 대로 단지 왕이란 칭호를 쓸 때에는 종래대로 조선왕(朝鮮王)이라 칭하고 싶은 희망이 있을 것을 염려한 고로 본관은 이것 때문에 이왕(李王)이란 문자를 골라 미리 이를 막기 위함이었음. 조서는 확정된 듯하나 아직 발표 전이며 오늘이라도 이를 고치는 것은 굳이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되므로 차제에 한차례 각하의 고려를 번거롭겠지만 구하고자 함.

---중 략---

8월 25일 오전 0시 15분발 7시 착국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귀전 イ41 이재면공 봉책(封冊)의 건은 당국(當國)의 관례로 친왕(親王)은 칭호를 하왕(何王)이라 칭한다. 즉 황태자를 영왕(英王), 의친왕을 의왕(義王)이라 함과 같이 이재면을 봉하여 흥왕(興王)이라 칭함임. 또 이재면의 이름을 희(憙)로 고침은 그 계통이 전대로 항렬로 전대의 제실과 같이 이름은 화자(火字)를 붙이는 예인 고로 이제 희로 고치게 된 것임. ○ 친왕(親王)이란 왕에 대한 신하로부터의 경칭임. 왕은 황족의 계통상 가장 가까운 자로서 그 다음은 군(君)이라 칭함. 군은 경칭을 전하(殿下)라 하지 않고 보통 저하(邸下)라 부름. ○ 우리 황실(皇室)의 예와는 다름.

8월 25일 오후 0시 35분발 2시 1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한국 황태자 전하에게는 조약공포일 궁내부에서 그 취지를 통지하기로 미리 의논해 둠. 또 궁내성에 대해서는 전하의 대우상 종래와 하등 변동이 없을 것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전해 두었음.

8월 26일 오후 1시 50분발 5시 5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왕족과 공족의 감독에 관한 황실령 발포 건에 대해 시바타 서기관장으로부터 의견이 있는 바 이번 한국 왕족과 공족에 대해 일종의 특별제도를 두고 세비 역시 국고에서 직접 지출하려는 것은 오로지 제국 황실과 이를 구별할 필요를 인정함과 다름 없음. 그런데 궁내성(宮內省)의 의견에 따르면 단지 왕ㆍ공족을 나눠 지급하는 것은 이를 궁내성 관할에 예속시키는 것으로 바로 이해함과 같으나 원래부터 정치적 화란(禍亂)의 원천인 구한국 황실에 대한 감독권을 직접 그곳의 통치자인 총독의 권한 안에 두지 않고 장래 완전하고 충실한 통치를 하겠다는 것으로 실로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음. 종래의 일이라고 해도 한국황실의 일은 통감의 관리 아래 두는 것도 이 이유 때문임. 정치상의 이유를 도외시하고 결코 득책이 아니라고 믿으므로 이 점에 관해 특별히 각하의 고렬를 앙청함. ○ 본관의 생각으로는 궁내부는 이 기회에 폐지하게 되므로 그 직원 전부에게 잔무 취급을 명하고 종전대로 총독 감독 아래 두고 필요한 때 적당한 규정을 신설해도 될 것이라고 믿음.

---중 략---

8월 27일 오전 11시 29분발 오후 1시 5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84) 귀전 イ58호 왕족 및 공족 감독에 관한 건의 취지에 대해 동의한다는 뜻 잘 알았음. 본건은 중대한 관계가 있는 안건으로서 지금 경솔하게 이에 대한 규정을 두면 도리어 훗날 화근을 일으킬 우려가 있고, 또 전보로써는 의사소통이 부족한 점도 있겠기에 본관 또는 부통감이 상경 때 몸소 의견을 말씀하겠고 차제에 황실령 발포 의식이 걸맞은지를 바람. 또 앞서 전보에서 말한 대로 예령(例令) 황실령의 발포가 보이지 않으나 실제 취급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음.

8월 28일 오후 2시 15분발 4시 5분착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귀전 イ35호 도쿄 황태자에게는 공포 당일 궁내부에서 그 뜻을 통고할 것임을 앞서 전보와 같음. ○ 황제와 황족의 대해서는 당일 공포 시간을 기하여 궁내대신을 관저에 초청하여 왕 책립과 공에 관한 조서 사본을 교부하고 궁내대신으로 하여금 각각 통고시키는 외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예정임. 귀전 イ48호는 잘 알았음. ○ 귀전 イ65호는 부산에서 헌병을 호위케 하라. ○ 귀전 イ63호 대장성령은 다소 연구가 필요하므로 다시 답전할 때까지 발표를 보류해 달라.

8월 28일 오후 3시 22분발 6시 30분착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아래와 같이 육군대신으로부터 동 차관 앞으로 전훈(電訓)이 있었으므로 양해 바라며 재가가 있을 때에는 총리대신에게 그 뜻을 적당히 말해주기 바람. 총독부 설치 때 구한국 군인 군대는 그대로 존치하기로 결정했으나 칙령 중 군대에 관한 규정이 빠짐으로써 구한국 근위대 보병 1대대 기병 1중대는 그대로 두고, 합병한 날부터 군사령관 예하에 소속시키도록 재가를 추진하여 달라. 이에 필요한 비용은 구친위부 예산을 전용할 예정, 위 재가가 끝나는 즉시 내각에 보고토록. 오늘 날짜로 재가를 급히 앙청함. 수속을 하도록.

8월 29일 오후 4시발 8시 12분착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예정대로 한국정부는 오늘 오전 11시에 병합조약을 정식으로 발표했음. 본관은 같은 시각에 민 궁상을 초청하여 왕과 이에 관한 조서 사본 2통을 교부하고 이와 같이 전하에게 통고할 것을 명령하고 또한 칙사 차견(差遣)의 뜻을 예고해 둠. ○ 발표 후 지금까지의 일반상황은 극히 평온함. ○ 위 상주를 바람.

8월 29일 오후 4시발 7시 47분착
시바타 서기관장앞 고다마
오전 11시 발표. 세상은 매우 평온. 제법령은 빠짐없이 발표됨. 배려에 감사. 또 계속하여 행정 정리상 제안건에 대해 더 한층 높은 배려를 바람.

---중 략---

8월 30일 오후 3시 35분발 10시 3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이왕가 감독에 대하여 누누이 의견을 진술하여 고려를 번거롭게 함은 신정(新政)의 시초에 우리 황실과 이왕가와의 관계를 밝히고 황실의 존엄을 훌륭하게 함과 더불어 이왕가로 하여금 정치상의 관계를 단절하고 오래오래 우리 황실의 은혜를 입히고자 함. 이는 실로 황실과의 관계상뿐 아니라 조선통치상 최대 요건이기 때문임. 따라서 왕 책립에 대한 의식과 칙사 차견 등은 미리 의견을 품의한 다음 하사품의 유무에 대하여 희망을 말하고 다시 이왕가의 감독 방법에 대한 고려를 앙청하게 된 것임. 시바타 서기관장으로부터의 회전에 의하여 본관은 다소 의식을 갖춘 칙사가 파견될 것으로 믿고, 그 점에 관하여 준비해둔 바 어제 궁내차관으로부터의 전보에 의하면 단지 천황의 분부를 전하기 위한 칙사라고 하나 만약 이나바 식부관은 단지 조서 사본을 전하는데 그친다고 하면 본관은 이미 어제 말한 대로 민 궁상을 초청하여 조서 사본을 교부하고 각 전하에 통고할 것을 명령한 바와 흡사한 소속을 되풀이하게 됨. 그러므로 이왕가에 대한 조서 전달 방식에 본관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그밖에 이왕으로 하여금 어떠한 방법으로써 우조(優詔0은혜가 두터운 칙령, 편자)에 대해 답례의 뜻을 표해야 하는지 본건은 이왕에 대한 장래의 선례가 되므로 궁내대신과도 협의해 빨리 모종의 회답을 바람.

9월 1일 오후 5시 20분발 10시 35분 착국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오늘 오전 11시에 칙사는 창덕궁에 가서 이왕 전하의 출영을 받고 친히 조서 사본과 하사품 전달을 마쳤음. ○ 이왕 전하는 동 오후 2시 통감 관저에 와서 이번에 천황 폐하께서 특별히 우조를 주시고 또 칙사를 파견하여 조서 사본을 전달한 데 대해 사은의 뜻을 표하시고 그 뜻을 본관을 거쳐서 전주(傳奏)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므로 바로 집주할 방법을 궁내대신에게 타전했음.

---중 략---

9월 26일 오후 9시 40분발 27일 오전 2시 40분착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귀전 イ90호 잘 알겠음. 이준용(李竣溶)의 건은 이곳에서도 여러가지로 전의(詮義)한 결과 이(李) 기코우(キコウ)의 사자(嗣子)로서 수작자 중에서 제외하는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므로 위를 제거해 주기 바람. 그러나 동인은 지금까지 세비를 받고 있으므로 특별 사금만은 하사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함. 따라서 이는 본관에게 위임한 범위 안에서 적절히 추진하겠음. 양해 바람.

9월 27일 오후 4시 50분발 11시 35분착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통감부 판사 정인흥(鄭寅興), 동 검사 홍종억(洪鐘檍), 동 판사 이시영(李始榮), 동 홍우석(洪祐晳), 동 한동리(韓東履), 동 양효건(楊孝建), 동 이종우(李種雨), 법학교 교수겸 법학교 학원감 이와마 로부터 사표가 제출됐으므로 상주 방법을 추진해 주기 바람. ○ 발령은 이달 30일로 하여 달라. 사표는 우송함.

9월 28일 오전 11시 13분발 오후 4시 55분착
서기관장앞 고다마
특별 은사금 지급 방법은 일체 통감에게 위임해 주신다는 취지로 통감으로부터 총리대신에의 조회에 대해 지난 번 총리대신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두었으나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아라이 차관 상경 시 동 차관이 내각의 사정을 확인하도록 부탁했으나 그 후 아무런 회답을 못 받음. 그런데 이달 말일 일반 퇴관자에 은사금을 급여할 때 그 권형(權衡)상 구한국정부에 근무했던 한국인 관리 중 주임 판임에 대하여 동시에 은사금을 하사하는데 먼저 승인에 근거해 본부에서 모든 절차를 처리하는 것으로 양해 바람. 이에 명에 의함.

9월 29일 오전 11시 50분발 오후 3시착
내각총리대신앞 통감
본부 및 소속관서 (통신관서 및 영림창은 제외) 고등관으로서 신관제 시행 시근속사 406명에는 연말상여, 퇴관자 25명 (이중에 영림창 퇴직자 2명 포함) 에게는 특별 상여 합계 12만5천8백98원 이내 정액 예산 내에서 9월 29일자로 급여코자 함. 급히 인가를 청함.

10월 6일 오후 4시 20분발 9시 50분착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총독
관제 기타 진력해 줌에 따라 예기(豫期)와 같이 진척됨에 깊이 감사함. 실행상 현재 아무런 지장이 없음. 안심하기를. 작금 이틀에 걸쳐 도장관(道長官)을 소집하여 시정상 훈시를 했음. 이로써 우선 일단락 되었으므로 이 달 중순께 출발, 귀경할 생각임.
일전 고(故) 소네 자작 장의에 참석한 조중응(趙重應)은 이때 피아의 감정을 융화하기 위해 상당한 자격이 있는 조선 부인을 관광을 위해 일본에 파견하고 싶다는 의견을 각하께 말씀 드려 동의를 얻었으므로 돌아온 후 소관과 상담했으므로 소관도 이의 없이 좋은 일이라고 답해 두었음. 그러므로 만약 이들 부인을 파견할 때에는 궁중, 그 밖에서도 자연히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선처 바람. 위를 과연 각하께서 동의하신다면 소관 출발 전에 결정해 두고 싶음. 일단 의견이 어떠하신지 바람.

10월 8일 오후 6시 50분 경성발 9시 오전 1시 25분 착국
총리대신 데라우치
어제 수작식에서는 지방에 있거나 거주하는 20여명을 제외하고 경성에 재주하는 50여명은 전원 출장해 수작했음. 오늘 아침 이완용 조중응 두 사람이 전원을 대표해 인사차 소관을 찾아와 일동은 성은이 넓고 두터움에 감분(感奮)해 장차 충성을 다할 것을 표언했음. 더욱이 그때 담화에서 어제 동인은 수작자를 대표해 식후 즉시 이왕, 이태왕을 찾아가 수작의 공표를 진언하니 이왕, 이태왕을 찾아가 수작의 공표를 진언하니 이왕은 그들에게 천황 폐하의 지인(至仁)하신 은려(恩慮)로 나의 구신(舊臣)에게 이러한 영예를 누리게 함은 나로서 매우 기뻐하는 바이며 그대들은 장차 부디 성지를 받들어 폐하께 충성을 다할 것을 유시(兪示)하였음. 이태왕께서도 역시 같은 말을 하셨음. 위를 입궐하실 때 상주하여 주시기 바람. ○ 조선귀족 중(부인 포함) 내지 관광의 건 답전 양지함. 그런데 조중응은 각하의 의향을 알고 이미 확실한 일로 생각하며 돌아온 후 권유(勸諭)하여 준비하고 있음. 또한 이번 수작에서는 귀족 부인을 불러 그 중에는 전 대신 등으로 부부동반하여 도일하고 싶다는 희망자도 있으므로 이들에 다소 완고한 사상을 가진 자 약간을 더하여 남녀 약 55명 정도를 도일시켜 천장절(天長節) 같은 가절(佳節)을 맞이하여 관병식을 배관(拜觀)하고 그밖에 상당한 대우를 박데 하여 황위(皇威)의 융성(隆盛), 황은의 광대함을 몸소 체험케 함은 시의적절한 방안으로 특히 그시기는 무의미한 때보다는 천장절과 같은 가절에 만나게 함이 한층 효력이 있다고 믿어 이같이 기획한 것임. 따라서 만약 달리 크게 동의 못할 이유가 있으면 할 수 없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실행되기를 희망함. 따라서 그 실행을 위해서는 소관 출발 전에 결정되지 아니하면 늦어지므로 위 재고하시어 아무튼 의견을 받고자 함.

10월 9일 오후 1시 30분발 5시 30분 착국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수작 조선인의 서위에 관한 귀전 삼가 양지함. 이번 수작자는 모두 전한국의 종2품 이상 정1품으로 구황족도 이 안에 폼함돼 있음. 그런데 지금 이에 궁내성 별안과 같이 작계(爵階)에 따라 서임하면 오히려 종래 그들의 지위 품계를 고려할 때 다소 불충분하므로 사정에 맞지않는 느낌이 있음. 그리하여 그들은 이번 수작에서 매우 만족하면서도 서임의 일단에서 오히려 그들에게 불만을 품게 함은 득책이 아니라고 생각함. 따라서 위의 일 돈독하게 생각하셔서 이번 수작자에 한해서는 차제에 다시 특별한 평의에 부쳐 그들의 전공(前功)을 아울러 기록해 파격적인 총광(寵光)을 내리시는 폐하의 뜻에서 나오는 것이 매우 사정에 맞지 않는가라고 어리석게 생각함. 다시 한번 현명한 고려를 앙청함.

10월 14일 오후 2시 50분발 5시 57분착
가쓰라 총리대신앞 데라우치
조선에서의 사무도 일단락됨에 따라 16일 이곳을 출발, 상경하기로 함. 그 뜻 집주해 주시기 바람. ○ 또한 여정은 시모노세키 및 고즈 1박, 20일 11시 신바시 도착 예정이므로 확인을 위해 덧붙임.

한국병합에 관한 서류 - 착신 일람표

8월 요일 1

2

3 4 5 6 7 8 9 10  
건수                      
요일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건수 1 1 1 3 8 3 9 1 1 7  
요일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건수 6 9 10 3 6 6 6 6 5 1  
9월 요일 1 2 3 4 5 6 7 8 9 10  
건수 1 1 1           1    
요일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건수                 3 2  
요일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건수 1   1 1 1 1 2 3 4 3  
10월 요일 1 2 3 4 5 6 7 8 9 10  
건수 1         1   1 1    
요일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건수       1              

着電(총 128회)
桂 ← 寺內 31회 紫田 ← 5회 紫田← 寺內 6회 紫田←國府 1회
紫田 ← 兒玉 84회 紫田 ← 桂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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