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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은 확실한 강제였다

강제문서 일본인이 발견

2003년12월18일 마이니치(每日)신문 인터넷판은 교토대학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교수(한국근대사 전공)가 2003년 8월 대전정부기록보존소에서 일제시대 부산의 지방재판소장(일본인)이 관내 기관장들에게 창씨(創氏) 신청율이 저조하다면서 주민 전원의 창씨 신청을 독려한 사실이 담긴 행정문서를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일제가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자료가 일본인 의해 발견된 것이다.

미즈노 교수가 찾아낸 이 문서는 부산지방재판소장이 1940년 6월 12일자로 관내의 시·정·촌(市·町·村)장 앞으로 보낸 예규(例規)문서로 ‘씨설정독려(氏設定督勵) 관한 건’ 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이 문서에는 조선인들의 창씨 신청기간이 1940년 2월 11일에서 8월10일까지 이지만, 신청 접수 후 4개월이 지나도록 전체 가구의 10%만 신청하고, 일부 지역에는 3%이하의 지역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7월20일까지 모든 가구가 창씨 신청을 마치도록 독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미즈노 교수는 “당시 조선총독부는 ‘창씨개명은 강제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신청률이 저조하자 신청률을 높이기 위해 압력을 가했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등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창씨개명을 강요한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한국근대사를 연구하는 와세다대학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강사는 “이 문서는 창씨개명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총독이 강하게 희망하면 지방 책임자들이 성과를 올리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가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스스로가 ‘다소 지나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나친 것은) 말단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귀중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위선과 허구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창씨개명 실시에 즈음하여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氏 제도의 해설’이란 책자의 머리말에 "사법상의 내선일체 구현" 이란 제목의 담화를 발표한다. 미나미는 이 담화에서 "반도인의 진지하고 열렬한 요망에 의거하여 내선일체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반도에 일본의 氏 제도를 도입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내선일체(內鮮一體)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하여 내건 슬로건 중 하나다. 즉 ‘내지(內地)’ 일본 본토와 ‘선(鮮)’한반도는 하나라는 것인데 이는 감언이설이요, 전쟁에 인적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술수인 것이다.


또한 ‘반도인의 진지하고 열렬한 요망’이란 “한반도인들이 원하기 때문에 조선인을 위하여 시행하는 것이지 결코 강요나 의무가 아니다” 라는 논조이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에 해방이 찾아오는 그 날까지 '내선일체'는 단 하루도 현실화되지 않았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일제의 패망 이후 각종 배상금 청구를 할 때마다 비열한 3류 사무라이 나라 일본은 국적조항을 들먹이며 배상을 거부하고 있듯이 이 담화는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찬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 맺음 말
일본은 수천 년 간 결혼한 여성에게도 본인 고유의 성을 간직하는 가장 선진화된 제도를 한반도로부터 도입하여 사용했다. 그러나 메이지 쿠데타를 주도한 무식한 자들은 그들보다 강한 서구에 대하여 ‘푸들’을 자처하면서 서양의 각종 제도를 앞다퉈 도입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결혼한 여성들은 남성의 성을 강제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에서 출발한 이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메이지 쿠데타를 주도한 자들이 고대 일본열도가 한반도의 후국(侯國)이었음을 부정하고 한반도로부터 문화 전래된 사실을 단절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앞서 기술한 유키치의 ‘탈아입구론’에 심취하여 몸은 동양인이면서 생각과 생활방식은 서양인으로 행세하겠다는 것이다. 마이클잭슨이 아무리 얼굴을 뜯어 고쳐도 백인이 되지 안되듯이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끊임없이 서양이 되도록 실험하여 일본인들을 정신적 공항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메이지 쿠데타 이전은 무식하지만 우직한 면이 존재했다. 하지만 개항과 메이지 쿠데타는 철학이 없는 사무라이들에게 역사조작과 금으로 도금된 살육의 칼을 쥐어주어 진실을 실험하는 유혹에 빠진 꼴이 되고 만 것이다. 3류 사무라이들이 역사조작을 주도함으로써 역사치매에 걸린 일본인들은 그들의 뿌리와 고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었다.

일본 보통국민들이 경제성장으로 지갑 두께가 두터워지자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하여 그들의 조상과 이웃을 비하함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정신병자적 사고가 이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작태는 신문을 비롯한 매스컴들이 한국.중국 그리고 아시아를 비하하는 기사를 많이 부각시킬 수록 판매부수가 늘어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창씨개명은 한반도인들의 영혼을 영원히 말살시키기 위하여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획책했던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치매에 걸린 일본 지도자들이라는 자들은 앵무새처럼 망발을 지껄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인들을 보노라면 측은함이 앞선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이러한 작태는 과거형이 아니고, 현재형이요 앞으로 벌어질 미래형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진실을 가두고 역사조작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 역사치매에 걸린 일본이 본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일본몽키가 바나나를 돌려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한국이 일본에 갖다 바친 대일(對日)무역수지 적자는 2004년 245억 달러, 2005년 244억 달러, 2006년 253억 달러로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있다.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대일본 누적 적자는 무려 2천 9백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우리가 피땀 흘려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에 종자 씨를 더하여 일본에 갖다 받친 꼴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무분별한 일본에 대한 기대, 일본제품의 구매는 일본인들의 오만 방자함을 부채질할 뿐 이다. 또 일본으로부터 끊임없이 멸시를 당하고 우리의 가슴을 멍들게 할 뿐이다. 정신 나간 일본인들을 퇴출시키고, 일본인들의 막말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절대 일본에 지지 않는 힘을 키우는 길 밖에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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