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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지구표면은 지표로부터 100km 내지 200km 정도의 위치에서 12개 정도로 구성된 단단한 암반층 판 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 판들은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판의 경계에 있는 지층들이 부딪히며서 지진이 발생한다. 실제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큰 피해를 낸 나라들은 판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4년 12월 26일 쓰나미(Tsunami)를 동반한 대지진으로 23만 2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인도네시아가 그렇다. 특히 일본은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 그리고 필리핀판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1995년 6천4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고베 대지진까지 세계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橫濱),가나가와(神奈川), 사이타마(埼玉)를 중심으로 한 관동(關東)지방을 강타하여 이 일대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상모만(相模彎) 해저를 진원지로 하는 진도 7.9의 지진이 발생했던 것이다. 땅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지는 등 도시 전체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지진의 여파로 해안에서는 엄청나게 큰 해일이 일어났다.


철도. 도로. 전기. 수도 등 기관시설은 물론이고, 학교. 관청. 병원.주택 등 멀쩡한 건물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피해가 더욱 확산된 것은 목조건물 일색이었던 이 지역에 마침 점심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피워놓은 불이 대화재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대도시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하늘을 태울 듯한 큰 불은 20여 시간이나 계속됐다고 한다. 동양 제일을 자랑하던 도쿄는 4분의 3이 잿더미가 됐다.

특히 동경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 200여 명이 생화장 당했다. 지진을 피하여 육군피복공장(지금의 도쿄(東京)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공원에 위치함)에 대피해 있던 주민 약 3만8천 명이 한꺼번에 타죽는 아비규환 생지옥이 발생하였다. 진재시방재조사회(震災市防災調査會) 보고서에 의하면 사상자가 약22만 명, 가옥 파손 46만 호에 달해 당시 피해금액이 약200억 엔(지금의 돈으로 수십조 원)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로써는 실로 세기의 대재앙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통신수단과 사회간접시설의 발달이 미흡했던 당시로써는 엄청난 사회혼란이 야기되어 심리적 공황 상태였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 일본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연계되고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후지산(富士山) 이 폭발했다”, “오가사하라 제도(小笠原諸島)가 바다 속에 잠겼다” 등의 근거 없는 흉흉한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공포와 혼란은 극에 달하였다. 시민들을 더욱 흥분 시킨 것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들이 시내 곳곳에 불을 질렀다”, “조선인들이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로 방화하려 하고 있다”는 등의 괴소문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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