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접속 회원가입
아이디 / 비밀번호찾기 

 일본어의 비밀

 메이지 유신의 실체

 역사조작 실태

 야스쿠니 신사

 독도

 동해

 명성황후 시해사건

 관동대학살

 코무덤

 위안부(성노예)

 우키시마호 대폭침

 창씨개명

 일한병합(일한병탄)

 가미가제(神風)의 실체

 역대 제왕(諸王) 현황

 

◎공 지 사 항◎

※ 나르샤학당

※ 한류열풍과 좀비사무라이의 천 년 비밀

[more]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목차 바로가기>> 

결코 잊지 말자

시해주범 사죄 위해 불상 조성
일본인에 의해 '민비'로 격하되기까지 했던 명성황후가 후쿠오카의 한 사찰에 관음상으로 모셔져 있다. 후쿠오카 하카타역 인근의 고후쿠마치 소재 셋신(節信)원. 이 사찰 입구에 관음상을 세운 자는 1895년 10월 8일 새벽 건청궁에 난입한 48명의 낭인 일당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토우 카츠아키(藤勝顯)다.

토우는 후쿠오카의 우익 민족주의 단체 겐요샤(玄洋社)의 일원이었으며 범행에 가담하여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풀려난 인물이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당 중 연장자에 속했다. 토우는 사건 발생 13년 뒤인 1908년 '민비를 베었을 때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에 사용한 일본도를 가까운 쿠시다신사에 맡겼다. 그리고 그 뒤 명성황후를 기려 '자안(子安) 관음상'을 세워 이 절에 기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이를 안고 자비로운 미소를 띤 채 앉아 있는 자태의 관음상 곁에 세워진 비석에는 '1895년 민비 사건으로…(중략)… 희생되어 돌아가신 왕비의 혼을 기리기 위해 독지가의 도움으로 세웠다'고 적혀 있다.

당초 동상(銅像)이었던 관음상은 아시아침략 전쟁이 한창이던 40년대 초반 일본군에 군수물자로 징발당했고, 45년 후쿠오카 대공습으로 절마저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음상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공습 다음날 관음상이 있던 자리에서 버려진 여아가 발견되었고, 이 아이를 독지가가 보살피게 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양부모는 이 아이가 19세에 요절하자, 명복을 빌고자 셋신원에 불상을 기부하려다 원래 관음상이 있었다는 사연을 듣고 석상으로 재현해 봉헌했다는 것이다.

一瞬電光刺老狐
또한 토우는 범행에 쓰인 칼을 “두번 다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된다”라며 절에서 그리 멀리 않은 쿠시다(櫛田)신사에 맡겼다고 한다. 이 절 금고 속에 보존되어 있는 칼은 길이가 120㎝정도이다.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 : 단숨에 전광과 같이 늙은 여우를 베었다’라는 섬뜩한 글이 적혀 있어 당시 명성황후 시해범들이 작전명을 '여우 사냥'이라고 붙였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 결코 잊지 말자
수천 년 세계역사를 통틀어 살인의 화신과 온 몸으로 맞선 여인이 있었던가? 명성황후는 분명 세계 열강들의 위협 속에서 기울어져 가는 조선을 이끈 탁월한 정치가요,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 현명한 정치가이자, 친일파와는 격이 다른 외교적 안목을 지닌 결단성 있는 정치가였다. 이런 구국의 선교자 명성황후의 국상을 맞아 고종황제는 이렇게 비통해 했다고 한다. “궁전의 사변은 너무나 불측스러운 것이어서 만고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원수를 갚지 못하고 거상기간이 지났다. 그래서 나의 슬픔은 끝이 없다.”

그랬다. 일본이라는 비열한 나라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전쟁도 아닌 평화 시에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을 습격하고 소위 일제의 지성인이라는 정신 나간 자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서슴없이 강간하고, 참혹하게 시해한 유해를 불태워버리는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다. 이는 명성황후를 성적희롱과 치욕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이끄는 3류 사무라이들이 수천 년 간 한반도로부터 이어지는 열등감에서 벗어 날려고 몸부림치는 정신적 황폐화가 불러온 사태였다. 일제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그 범인들을 일본에서 구국적 영웅으로 대접하고 정신 나간 일왕은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등 그야말로 깡패집단, 야수집단 그 자체였다.


<민비 암살>의 저자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는 “한국에서는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건을 가해자측인 일본에서는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사실에 적지않게 놀랐다. 한일친선, 상호 이해 등의 단어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너무도 오래된 옛날의 사건이지만 한국의 국민감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서 나는 이것을‘오늘의 문제’로 생각하게 됐다”라고 강조했듯이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들에게 냄새 나는 역사는 철저히 숨기고 조작하고 있다.

▲명성황후 장례식

우리는 이런 집단과 가까이하고 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잔인한 2중 인격자들이 지식인이라는 탈을 쓰고 근대 일본의 기초에 꽈리를 틀어 일본 국민들의 정서적 기초가 역사치매와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 보통 시민들의 평균적인 사고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 10대 청소년들은 재미 삼아. 경험 삼아 살인을 저지르고, 초등학교 여학생이 같은 학생을 칼로 살해하며, 약한 사람을 집중해서 폭행하는 비겁하기 그지없는 야만 행위인 ‘이지매(왕따)’라는 단어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내는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에서는 무모한 전투를 벌려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정한론의 주창자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자의 자살을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정신 나간 주장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성을 반영하듯 히틀러를 추종하는 망언제조기 이시하라 신타로나 이웃이 무엇이라 하던 우리는 우리 식으로 나간다는 막가파 고이즈미와 같이 정신 나간 자들이 횡횡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국민들은 이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일본은 지금도 반성은커녕 역사조작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일본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요, 미래형으로 진행 중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붉은 피가 흐르지 않는 차갑고 친화성이 없는 아시모(ASIMO)나 큐리오(QRIO:일본 소니사 제작 로봇)와 같이 언제든지 세계역사를 참혹하게 피로 물들게 하는 시한폭탄으로 만들고 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망령됨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은 우리가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망령됨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국력을 키워야 한다.

호소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한국인들은 일본이 역사조작이나 독도문제를 일으키면 일시에 흥분하지만 상황이 개선되면 우호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일본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본에 결코 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일본이 변하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변하여 일본제품 하나하나를 산다는 것은 욕심 많은 일본원숭이의 배를 부르게 할 뿐이다. 이는 배 부른 일본원숭이들이 또다시 난동을 일으켜 사랑스러운 딸.아들들의 살점 하나하나를 도려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