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접속 회원가입
아이디 / 비밀번호찾기 

 일본어의 비밀

 메이지 유신의 실체

 역사조작 실태

 야스쿠니 신사

 독도

 동해

 명성황후 시해사건

 관동대학살

 코무덤

 위안부(성노예)

 우키시마호 대폭침

 창씨개명

 일한병합(일한병탄)

 가미가제(神風)의 실체

 역대 제왕(諸王) 현황

 

◎공 지 사 항◎

※ 나르샤학당

※ 한류열풍과 좀비사무라이의 천 년 비밀

[more]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목차 바로가기>> 

동해 나이 2000년

우리 주변의 산·강·바다는 원래 아무런 이름이 없었지만 그것과 더불어 생활해 온 사람들이 그들의 의식에 적합한 명칭을 붙이게 된다. 그러므로 그 명칭은 그 지역의 역사. 문화전통. 사람들의 생활 과정에 정해지는 문화 유산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외부의 사람이 자기의사에 따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명에는 오랜 역사와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본기 시조 동명왕 기사. 서기로는 B.C 37년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부터 ‘동해’라는 명사를 사용하여 왔다. 그런데 서양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해(Sea of Japan)’ 명칭이 일본에 유입되기 이전인 18세기 말까지 일본 사람들은 이 바다를 어떻게 불렀는지에 대하여는 분명하지 않다. 그때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고지도에는 바다에 이름이 붙어 있지 않거나 일반인들은 이 바다를 ‘북해(北海)’라 불렀다고 한다. 이렇듯 ‘일본해’ 명칭은 아시아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양인들이 붙인 ‘일본해’가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어 버린 것이다.

동해는 남북한.중국.일본.러시아 등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교합(交合)하는 바다다. 이렇듯 5개국이 교합된 이 바다에 이름을 붙여 혼을 불어넣은 과정을 ‘동해 지명에 관한 국제 학술 세미나’(동해연구회)를 통해 우선 살펴 보기로 한다.

일본측 자료(靑山宏夫--新瀉大學)
유라시아 大陸, 사할린, 日本 列島로 둘러싸인 해역이 언제부터 「日本海」라고 불려지고 그것이 어떻게 널리 퍼졌는가를 검토해보자. 사용한 주요 자료는 고지도(古地圖)이다. 이 경우 특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古地圖에 묘사된 세계와 현실의 세계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16세기 중기 이전에는 지금 문제되는 해역 즉, 유라시아 대륙, 사할린, 일본열도로 둘러싸인 해역이 지도상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기 지도에 유라시아 대륙 동방에 있는 것은 하나의 광대한 大洋이었다. 지금 문제되는 해역은 「太平洋」의 일부로써 그려져 있는 것에 불과하고 해역으로서 일본해는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日本海는 여전히 「發見」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지도에 기재된 해역의 호칭은 어디를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

한편, 이 해역에 임하는 여러 지역에서는 이 바다를 현실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대 일본에서는 그 바다는「越の海」라고 불려졌다(그러나 이 같은 호칭이 지시하는 범위는 지금 문제되고 있는 해역의 전체까지 마치고 있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16세기 중엽 이후의 지도를 검토하면 1602년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이 해역을「日本海」로 기재한 현존 最古 地圖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 이전 동양제작 지도에는 「日本海」는 커녕 바다 이름조차 써 있지 않다. 이것은 海名을 기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東洋의 특징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가령 16세기 경 中國의 아틀라스 『廣輿圖』所載의 東南華夷圖, 朝鮮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1402), 『海東諸國紀』(1471) 所載의 여러 地圖, 中世 日本의 佛敎系 世界圖나 行基圖 등 어느 것도 이 해역의 명칭을 기재하지 않고 있다.

한편, 『坤輿萬國全圖』 이전의 西洋製 지도상의 바다의 명칭을 보면 「蠻支海」,「친海」내지「시나海」같이 동양세계를 상징하는 지명에 기초한 海名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물 제849호로 서울대학교박물관 에 보관중인 조선 숙종 34년(1708) 필사된 곤여만국전도의 일부

이 시기에는 「日本海」나「朝鮮海」같은 한층 한정적인 호칭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더구나 蠻支라는 것은 마르코 폴로의 『東方見聞錄』에도 나오는 것처럼 본래 중국 중남부에 대한 호칭이었는데 16세기 후반의 서양에서 동양에 관한 지리적 지식이 혼란스러워진 결과 중국보다도 북쪽에 있다고 상상 되었던 땅이었다.
現存 最古 地圖는 1602년 『坤輿萬國全圖』이전에는 동양.서양 어느 쪽에도 「日本海」라는 호칭을 기재하지 않고 있다.『坤輿萬國全圖』는 예수회 선교사 바리냐노와 함께 일본에 체재(1590-1592년)하면서 일본도를 제작한 이나시오 모레이라를 만났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利瑪竇)가 1602년에 중국에서 작성된 세계지도에 서양제 지도를 漢譯한 것이다.

동양에서 성립된 「日本海」라는 호칭은 상당히 일찍부터 서양에 전해졌다. 그 초기 情報 出處로써는
첫째는 전술한 『坤輿萬國全圖』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북경에서 간행 후 곧 로마 등에 보내졌다.
둘째는 『시나大王國誌』이다. 이것도 17세기 중엽까지 이탈리아 등에서 다수 重刊되었다.
셋째는 예수회 제작 종사자 고디노(Godinho)에 의한 日本圖이다. 이것은 아시아에서 제작된 것인데 리스본이나 로마에도 전해졌다. 이것에는 「MAR DE YAPON (日本海)」로 기재되어 있고 한자의 『坤輿萬國全圖』보다도 서양에는 수용되기 쉬웠을 것이다.
넷째는 1620~34년에 쓰여진 예수會士 후안 로드리게스의『日本敎會史』이다. 「북마르 쟈폰니코(MAR JAPONICO)」로 기재된 이 책도 물론 서양에도 전해졌다.
그 후 서양에 있어서「日本海」라는 호칭이 성립한 데는 크리스트교 선교사, 특히 예수會士가 깊게 관여했다. 이렇게 해서 「日本海」라는 호칭이 점차 보급되고, 18세기말에는 정착하게 되었다. 현재 이 호칭이「國際的」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 또한 幕府末期부터 明治 日本까지 이 호칭이 정착해 온 것은 이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면 일본에서는 어떠했는가? 「日本海」로 기재된『坤輿萬國全圖』는 일본에도 전해지고, 그 사본과 이것과 병행하여 刊行本이 널리 유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日本海」라는 호칭은 정착되지 않았다. 그 호칭의 최초 사용은 『坤輿萬國全圖』의 사본등을 조금 알아보면 1802년 蘭學(네덜란드)者 山村才助에 의한 『訂正增譯采覽異言』의 付圖이다. 이 후 점차 蘭學系 地圖를 중심으로 「日本圖」라는 호칭이 사용되게 되었다.

이 같은 蘭學系 地圖의 움직임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것들이 原圖로 된 당시의 서양제 지도가 이미 「日本海」라는 호칭을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다름이 아니다. 일본에 있어서 「日本海」는 호칭은 말하자면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한편 幕府 天文方 高橋景保가 1810년에 작성한 『新訂萬國全圖』이후 「日本海」라는 호칭을 태평양 연안에 사용하고 日本海側에는 「朝鮮海」로 기재한 것도 나타나 있다(그러나 이들 지도에는 [朝鮮海]의 기재 위치는 한반도 연안이라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외에도 별칭을 기재한 것도 있고, 반드시 「日本海」라는 호칭에 고정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新訂萬國全圖』를 改訂한 幕府 天文方 山路諧孝의 『重訂萬國全圖』(1855)에는 「朝鮮海」로부터 「日本海」로 변경되고 있다. 그 결과 幕府 등에 의한 官製 地圖에 있어서 그 해역을 「日本海」로 하는 호칭이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경향에 박차를 가한 것은 明治일본의 西洋 追隨主義일 것이다. 明治에 들어오면 그 초기에 있어서까지도 官製 地圖나 地誌, 地理敎科書, 民間 新聞 등에는「日本海」라는 호칭으로 고정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에 있어서 「日本海」라는 호칭의 정착 시기는 서양에서는 18세기말경, 일본에서는 幕府末期부터 明治 초기이다.


일본 외무성 인터넷 ‘일본해’ 주장 현황
 
일본은 한국의 동해학회가 발간한 “세계 지도 상의 동해(East Sea in World Mapsm 2002)”의 내용을 비판하고, 2003년 IHO가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4차 개정판 발간에 있어 ‘일본해’를 고수하기 위하여 2002년 10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영국의 대영도서관 및 캠브리지 대학 소장 고지도에 대한 조사 작업을 하여 2003년 9월 일본 외무성 인터넷에 올려졌다.

이 자료에서는 ‘한국해(조선해)’가 서양 지도 상에 압도적으로 사용된 18세기 지도에 대해서는 전에 작성된 팜플렛 “Sea of Japan”을 참조하라고만 하고 전혀 언급이 없다. 이는 18세기 서양 고지도들의 2/3 이상이 “Sea of Corea / Mer de Coree”가 사용된 사실은 외면하고, 19세기 초엽의 서양 지도들에 일본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인터넷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조사하지 않고 그들이 유리한 곳만 선택 보도하였다.

다음은 일본외무성 인터넷에 개재된 내용이다.
1. 대영 도서관이 소장하는 지도에 관한 조사 결과
(1) 대영 도서관이 소장하는 1801년부터 1861년에 걸쳐 발행된 고지도 중 일본해 주변을 포함하는 것이 37매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이것은, 대영 도서관이 소장하는 동시기에 발행된 고지도는 0매이다고 하는 한국측의 조사 결과를 완전하게 뒤집는 것이었다.
(2) 이 37매 가운데, 32매에 대해 발행국의 언어로 「일본해」(Sea of Japan, Mer du Japon등 )이라고 기재되어 5매에 대해 「조선해」(Gulf of Corea , Mer de Coree등 )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리스트 별첨 1). 덧붙여 「토카이」(East Sea)이라고 기재된 지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3) 이 37매의 발행국은, 영국 15매, 프랑스 10매, 독일 7매, 이탈리아 2매,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일본 각 1매였다

2. 켐브리지 대학이 소장하는 지도에 관한 조사 결과
(1) 켐브리지 대학이 소장하는 1801년부터 1861년에 걸쳐 발행된 고지도 중 일본해 주변을 포함하는 것이 21매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이것도, 켐브리지 대학이 소장하는 동시기에 발행된 고지도는 6매만으로 하는 한국측의 조사 결과와 크게 어긋나는 것이 되었다.
(2) 이 21매 가운데, 18매에 대해 발행국의 언어로 「일본해」라고 기재되어 3매에 대해 「조선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리스트 별첨 2).덧붙여 「토카이」(East Sea)이라고 기재된 지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3) 이 21매의 발행국은, 영국 10매, 프랑스 4매, 독일 3매, 이탈리아 2매, 네델란드 1매, 일본 1매였다.
(4) 조사 결과는 지도의 발행 년대별로 가리키면, 표 1대로이다.이것에 의해, 19 세기 초두로 부터 중순에 발행된 유럽 각국의 지도에 있어, 「조선해」의 명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일부 예외를 제외해, 19 세기의 최초의 10년간이며, 그 후는 「일본해」의 호칭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또, 한국측 조사와 일본측 조사의 상위를 도시하면 표 2대로이다.

3. 결론
이번 일본측 조사를 밟은 결론은, 이하대로이다
(1) 이번 조사에서는 검증하지 않았지만,18 세기말 이전의 유럽의 지도에서는, 일본해 해역의 명칭으로서 「일본해」, 「조선해」, 「동양(오리엔트) 해」등 여러가지 명칭이 사용되고 있던 모양이다.이것은 일본측 학자가 일본내에 소재하는 유럽 지역에서 발행된 고지도에 대해서 다년간 연구로부터도 분명하다(외무성 작성의 팜플렛 (Sea of Japan) 참조).
(2) 이번 일본측 조사에 의해, 18 세기말 이후의 유럽에서 작성된 지도에 있어서는, 「일본해」라고 하는 명칭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대영 도서관 소장 고지도에서는 86.5%에 해당되는 32매가, 켐브리지 대학 소장 고지도에서는 같이 85.7%에 해당되는 18매가 「일본해)라고 기재하고 있었다).
(3) 따라서, 대영 도서관 및 켐브리지 대학의 소장하는 유럽에서 발행된 고지도에 대한 조사에 대해서는, ‘「일본해」라고 하는 명칭은, 우리 나라가 쇄국하에 있어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18 세기말에서 19 세기 처음에 걸쳐 유럽에 있어 정착한 것이다’라고 하는 일본측의 주장이 확인되었다. 또,「일본해」의 명칭이 지배적으로 된 것은 20 세기 전반의 일본의 제국주의, 식민지 주의의 결과이다」, 「19 세기의 중기부터 말기까지는 「토카이」와 「일본해」의 쌍방의 명칭이 세계 지도 중(안)에서 보통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라고 하는 한국측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4) 다만, 18 세기 이전의 고지도에 사용되고 있는 「동양(오리엔트) 해」라고 하는 명칭은, 「서양의 바다」에 대한 「동양의 바다」라고 하는 의미이며, 이것을 「토카이」라고 동의로 하는 한국측의 주장은 합리적이 아니다.


중국측 자료(吳 松弟--중국 상해 복단 대학 역사지리 연구소)

고대 중국인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 주위의 바다를 통칭하여 사해(四海)라 하였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지리적 방위 명칭을 상이한 위치에 있는 바다에 적용하여 동해. 서해. 남해. 북해라 불렀다.

명나라(明) 후기 서방의 마테오리치 등이 중국에 온 후 서방의 지리지식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중국이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Matteo Ricci는 <곤여만국전도 (坤輿萬國全圖)>, 즉 당시의 세계지도를 편찬하였고, 艾儒略(Giulio Aleni)는 <직방외기(職方外記)>를 출판하였다. 이러한 지도와 저서 중에는 중국인들이 당시 사용하지 않던 인근 국가와 지역명칭으로 지칭된 해역 지명이 대량 나타났다.
그러면 중국 사적 중 제일 먼저 ‘동해’명사를 언급한 것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송(宋)나라의 범엽(范曄)이 저술한 책 ≪後漢書≫이며 동해을 언급한 저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後漢書≫ 卷85 ≪東夷列傳≫ 2812페이지 : "읍루(相婁)는 고대의 숙신(肅신)국이며 부여(夫余)의 동북 천여리되는 곳에 있는데 동쪽은 동해와 인접하여 있고 남쪽은 북옥저(北沃沮)와 접하여 있으며 북쪽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모른다."
● ≪三國志≫ 卷30 ≪魏書.烏丸鮮卑東夷傳≫ : 동옥저(東沃沮)는 "濱大海而居"하고, 읍루(相婁)는 "濱大海"하며 예(濊)는 "東窮大海"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대해(大海)가 곧 동해이다.
● ≪初學記≫ 卷 6 : "동해(東海)는 발해(渤海)라는 명칭이 있으며 또 통칭하여 창해(滄海)라고도 부른다. 대조영(大祚榮)은 발해(渤海)를 나라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皇淸職貢圖≫ 건륭(乾隆)16년 : 關東의 민족에 대한 기재에 의하면 "고야(庫野)는 東海島의 아단(雅丹), 달리감(達里堪)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고야(庫野)는 바로 러시아의 사할린섬이다. 건륭(乾隆)시기 지금의 사할린섬의 명칭은 동해도(東海島)였고, 후에 섬 위의 부족들에 의하여 개칭되었으며 "東海"는 그 시기 사람들이 불렀던 바다이름이었다.
● ≪三朝北盟會編≫ 卷3 : 여진(女眞) 각부(部)를 기재하였는데, 그 중 "극히 먼 변경지대에 있 으며 東海와 접근하여 있는 사람들은 東海女眞이라 부른다."
● ≪蓉城仙館印行≫ 卷1 : 함풍(咸豊) 4년(1854년)吉林장군 경순(景淳)이 중.러 국경을 조사한 내용 "처음에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동해 나목도로(東海那穆都로) 지방에서 영국과 군대를 합하여 배를 타고 활탄둔(闊呑屯), 박륵필둔(博勒必屯), 기길둔(奇吉屯) 및 비아객(費雅喀)등 사람들의 거주지로 들어 갔다..."
● ≪小方壺齊輿地叢 ≫ 초편 第一 : 요문동(姚文棟)이 광서(光緖) 丁丑년(1877년)에 편찬한 ≪東海邊防論≫말하기를 : "길림(吉林)이 동해(東海)를 제어하는데 혼돈강(混同江), 수분하(綏芬河), 도문강(圖們江)3개 출해구가 있으며,..... 현재 길림의 임해지역 및 3개 출해구가 모두 러시아에 속하게 되었다."
● 하추도(何秋濤)는 ≪朔方備乘≫(광서 7년, 1881년) 제 1권 : 女眞 각 部를 서술할때 "東海 여러부족은 모두 장이동에 있었다"고 말하고, 송화강(松花江)을 서술할때 "黑水와 합하여 혼돈강(混沌江)을 이루고 영고탑(寧古塔), 삼성(三姓)을 지나 東海에 유입된다" 중국문헌에서는 19세기말까지 ‘동해’라는 이름이 통칭되었으며 ‘일본해’라는 단어가 광서(光緖) 11년(1885년)이르러 조정걸(曺廷杰)의 ≪西伯利東偏紀要≫에 처음 등장한다.
● 조정걸(曺廷杰)이 ≪西伯利東偏紀要≫를 저술하면서
"추이하(推依河)는 사할린섬 서부의 알 맞는 지역에 있으며,...... 기선이 일본해로부터 혼돈강(混沌江)으로 들어감에 있어서 거쳐야 하는 길에 있다." 그러나 조정걸은 이 책 제109조에서 동북민족을 서술할때에는 또 "東海"라는 명사를 사용하였다.
이외 조정걸(曹廷杰)의 상급자 승림(勝林)은 같은 해에 ≪談中俄交界圖≫를 저술하면서 계속 ‘동해’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보면 이 때가 중국에서는 일본해를 사용하는 과도기적 때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중국서적 중‘동해’명칭에 관한 사용은 당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조 이전에는 오직 "해"(海),"대해(大海)" 이러한 일반적 명칭이 있었으며 전문적인 명칭이 없었다. 당조 시기 발해국(渤海國)의 건립 이후 전문적인 명칭이 있게 되었고 "발해"라 명명하였으며 후에 또 이를 국명(國名)으로 사용하였다. 발해(渤海)의 남부 해역인 현재의 동조선만 일대를 흔히 남해(南海)라 불렀으며, 타타르 해협일대를 포함하는 북부해역을 소해(少海)라 불렀다. 요, 금, 원, 명, 청 시기 "동해"의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원,명조 시기 때로 또 "경해"라 불렀고 명,청 시기에 또 때로 현재 조선 동북부 일대 해역을 "남해(南海)" 라 불렀다.

한편 일본을 볼 때 19세기 이전에 출판된 대다수의 일본지도는 거의 모두가 일본해 해역에 “일본해”라는 지명을 표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부는 이 해역의 서부에 “조선해”라고 표기

▲N. Bellin, 1748 - MER DE COREE

하였다. 중국 문헌의 경우 명나라와 청나라의 대부분 시기는 이 해역을 계속 “동해”라고 지칭하였으며 대개 청나라 광서(光緖) 10년(1884)년 전후에야 “일본해”라는 이 전문 명칭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일본해 해역의 명칭은 중국의 해역 지칭 원칙에 따라 “동해”라 지칭하던 데로부터 서방의 해역 지칭 원칙에 따라 “고려해” 또는 “일본해”라 지칭하는 데로 변화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Matteo Ricci가 1602년에 출판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는 이미 현재의 일본해 해역을 “일본해”라 표기하였으나, 이 지명은 280년이 지난 후에야 중국에서 사용되었고 지금으로부터 120년 내외밖에 안 된다.

러시아측 자료(Alexei Postnikov교수--러시아 과학원 과학 기술역사 연구소)
러시아 해안에 면하는 12개 바다에 대한 명칭이 확고히 결정된 것은 1930년대 이르러서였다. 러시아 바다이름은 지리적 명칭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가 동쪽으로 확장하는 과정이 서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각 지명에는 원주민의 관습이나 이들의 생활환경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서쪽에서 이동한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바다 이름에는 동쪽(동양해, 동쪽해 등)이라는 이름이 주어지는 경향이 많았다. 흑해(Black Sea), 아조브 해(Azov Sea), Blue Sea등과 같은 바다 이름은 고대사회로부터 기원 되고 있다. 그 밖에 Baltic Sea, White Sea등은 러시아의 전통이 많이 반영된 지명이다.

17세기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실사지도에 따르면, 1670년대 Asia와 America사이의 바다를 Eastern Sea혹은 Ocean, 때로는 Sea Ocean이라고 명명하였으나 지도상에는 아직 한국이 표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7세기 후기에서 18세기 초기에는 한국에 대한 명칭이 3개의 지도
①The Drawing of all Siberian Towns and Lands,
②The Drawing of all lands in Siberia,town of Tobolsk and all different towns and adobes and steppe,
③A general map of the South-East Asia in the Oragraphic book of Siberia와 동시대의 2개의 외국지도에는 동해가 Mare di Corai, Mare de Career라고 명시되어 있다.

처음 유럽인이 읽을만한 아시아의 지도로는 중국황제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Jesuits)에 의해 17세기 후반에 만들어 진 것들이다. 이들 지도는 이후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 지도학자 J.B.B.de Anville의 편집지도와 같이 동부와 남부아시아 지도편집에 주요 자료가 되었다. 1733년과 1734년에 출간된 최초의 러시아제국의 지도도 de Anville 의 지도를 기반으로 아시아 동남부 지방을 그렸다.
한편 1725-47년 러시아 해안 조사탐험에 참여한 프랑스 J.N.Delisle를 통하여 새로운 자료가 유럽에 전달되었다. 동시대에 D'Anville와 러시아인 Kirilov의 지도상에는 한국의 명기가 달리 되어있다. 비록 Kirilov의 지도상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바다 명칭이 없으나 이후 18세기에서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를 기본으로 하여 그린 모든 러시아 지도에는 Koreiskoe more(Korean Sea) or Vostochnoe (Eastern Sea)라고 적고 있다.

이 시기에 이 같은 바다 지명이 지속된 이유는 17세기에 서쪽에서 이동한 러시아인이 동쪽 바다에 도달하면서 ‘동쪽해’라고 방향적인 측면 혹은 그 지역이나 주민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18세기 러시아 지도상에 한국해 혹은 동쪽해라는 이름은 모두 위와 같은 데서 연유한다고 본다. 1745년 이래 1791년까지 러시아에서 발간된 대표적인 5종 지도에는 Korea Sea, Sea of Korea, Mer de Coree, Meerbusen von Korea, Sea of Korea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대다수 지도에서 이러한 표기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한국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주어진 전통적인 관례에 따른 명명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1787년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조사한 프랑스 탐험가 La Perouse의 해도에는 문제의 바다 이름을 Mer du Japon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해를 탐험한 최초의 러시아인 Krusenohtern(1770-1846)은 바다 명칭에서La Perouse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그는 태평양 탐험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태평양 명칭에 대한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이후 그의 권위 있는 표기는 러시아 지도학에서 압도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러시아인의 전통적인 동아시아 바다 명칭표기보다 강하게 유지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도 같은 시기에 출간된 지도에 한국해와 한국해협에 대한 표기는 흥미로운 일이다. 1844년 발간된 러시아 최후의 공식지도에서도 그 표기가 동일하였다. 이후 러시아 해군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일본해라는 유럽식 표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3가지 즉,
① 러시아 17세기에 동부아시아에 대한 지역과 바다에 대한 정보의 수집 분석,
② 18세기 초기 러시아 과학원에서 이용한 중국과 한국 선교사 자료들이 러시아 지명에 미친 영향,
③ 그리고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러시아 팽창기에 중국인과의 외교적 접촉과 그들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 등이 수행될 때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한편 주러 한국 대사관 문화홍보원이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8∼19세기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지도와 도서 19종 가운데 10종이 '동해' 또는 '한국해'로 표기했고 '일본해'로 쓴 것은 3종, 나머지 6종은 아예 바다 이름을 적지 않거나 '한국해'와 '일본해'를 함께

▲1754년의 프랑스지도, '한국해(Mer de Coree)'로 표기했다
▲1740년의 영국지도, 동해를 '한국만(Gulf of Corea)'으로 적었다
쓰는 등 중립적 표기를 했다.

한국해나 동해로 표기한 지도는 '한-중-일 지도'(1737년) '아시아전도'(1793년) '한반도전도'(1818년) '지구평면도'(1793년) 등이며 '세계전도'(1812년)와 '동아시아해도'(19세기 후반) 등 지도 3종은 '한국만'(韓國灣)으로 표기했다. 일본해로 적은 지도는 '크루젠슈테른(Adam Johan von Krusensterm)의 일본전도' (1805년)와 '극동지방지도'(1904년) '크루젠슈테른 세계일주기'(19세기 초반) 등이다. 또한 18세기 러시아에서 제작된 지구의(地球儀)에는 동해가‘한국해’로 표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푸슈킨시(市) 박물관에 소장된 지구의에는‘한국해’(당시 러시아어 표기인‘카레이스크 모레’)로 표기돼 있다. 이 두 지구의에는‘1793년’이라는 제작연도가 적혀 있다.


한국측 자료(李 相 泰--國史編纂委員會 史料調査室長)
● 三國史記 고구려 본기 시조 동명왕 기사 : 북부여국의 재상 아란불이 왕께 아뢰기를 ‘어느 날 하늘에서 천자가 내려와 명하기를 이곳은 장차 나의 자손들이 나라를 세울 곳이니 너희는 이곳을 피하여 東海가의 가섭원이라는 곳으로 옮겨라. 그곳은 토지가 비옥하며 5곡이 자라기에 적합하며 왕도를 삼을 만한 곳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동해’가 우리나라 역사 문헌상에 처음 등장하는 명칭이며, 여기에서 천자가 말한 장차 나의 자손은 곧 고구려의 동명성왕을 지칭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의하면 북부여가 東海邊 가섭원으로 옮겨 동부여를 건국한 시기는 중국 한나라 연호인 神爵 3년에 일어난 일이며 서기로는 B.C 37년에 해당된다.

● 광개토태왕비 : 고구려의 장수왕이 부왕(父王)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414년에 세운 광개토태왕비문 중 제3면 제8행에 수묘인(守墓人)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동해매 국연 3 간연 5 (東海買 國烟 3 看烟 5 )”라고 적혀 있다. 동해매의 매(買)는 물(水)을 가리키는 고구려어이다. 동해매는 동해물가라는 뜻이 된다. 앞 기사의 동해변이나 동해매는 비슷한 뜻이다. 동해라는 명칭은 5세기의 금석문에도 등장하는 용어였다.
‘동해’라는 명칭은 삼국유사에는 수 십 차례 언급되어 있다시피 약 2000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사용하여 왔고, 1613년 중국에서 제작된 지도에도 동해라 표기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일본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도 동해라는 명칭을 우리가 처음 사용한 지 700년이 지난 후에야 등장한다. 그것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인 ‘일본서기’나 ‘고사기’에는 나타나지 않고 중국의 신당서나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만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문무왕(文武王) 조에 보면 “왜국(倭國)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하였다. 또 신당서(新唐書)에는 함형원년(咸亨元年·서기 670년)에 사신을 파견하여 “왜라는 국명이 나쁘기 때문에 일본이란 국명으로 바꾼다”라는 기사가 있다.

‘일본해’라는 명칭은 이로부터 다시 1000년이 지난 1602년, 서양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 처음 나타난다. 우리가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해 온 지 약1600여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일본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해의 명칭은 삼국시대에는 호국 사상과 깊은 관련을 갖고 문무왕을 동해구에 장사 지내게 되며 동해 신사를 짓고 국가의 무사태평을 빌기도 하였다.

한편 동해라는 명칭은 삼한, 해동처럼 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견훤에게 보낸 답서에서 “동해의 끓어진 왕통을 이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경우와 고려 神宗이 원나라에 보낸 국서에서도 “제가 외람되이 미력한 몸으로 ……… 봉작을 이어 받아 동해의 기슭에 모범이 되었나이다.” 라고 쓴 경우처럼 동해가 곧 고려를 가리키는 별칭이었다.

서양 고지도에 나타난 동해

구분

미국
USC 대학

프랑스
국립도서

서울
역사박물관

개인소장

동해

16세기

1

1

17세기

1

8

3

12

18세기

101

58

23

8

190

19세기

32

1

5

2

40

20세기

21

8

5

34

무연대

21

21

소계

134

109

40

15

298

일본해

16세기

17세기

6

6

18세기

2

5

8

19세기

12

22

1

51

20세기

5

11

17

16

무연대

5

4

28

소계

12

18

42

37

109

합계

146

127

82

52

407

우리나라 고지도에서 '동해'가 가장 먼저 표기된 지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중종25년, 1530년)에 첨부된 《팔도총도》이며 서양 고지도에 동해 표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597년에 제작된 ”Asia“ 지도에서 ”The Easter or Corea Sea" 라는 표시이다. 이는 1603년 마테오리치가 만국곤여전도를 그리고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 보다 6년 전의 일이다. 일본은 “일본해”라는 명칭이 일본 자체 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먼저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처음 지도가 마테오리치의 지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일본해”라는 명칭보다는 “동해”라는 명칭을 먼저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해 표기는 16세기에는 1건도 없으며 동해 표기와 달리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이 증가하지만, 그 이전에는 특히 18세기에는 동해 표기가 일본해 표기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8세기까지만 해도 동해 표기 지도는 190종인데 비하여 일본해 표시 지도는 8종으로 동해 표기가 월등히 많았다. 19세기 들어서면서 일본해 표기 지도가 많아지는데 이는 라페르주의 지도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며, 20세기에는 일본해 지도가 훨씬 많아지는데 이는 일본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주권이 강탈당하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조사한 407종의 고지도 중에 동해로 표기된 지도는 298종이고, 일본해 표기 지도는 109종이었다. 전체 고지도중 73.2%의 고지도가 동해 표시 지도이고 일본해 표시 고지도는 26.8%에 불과하였다. 서양 고지도에도 일본해 보다는 동해 표시가 월등히 많았다.

이처럼 2000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당당히 사용해 오던 동해라는 명칭이 위협받게 된 것은 1910년 우리의 주권이 일제에 의하여 강탈당한 이후이며, 일제는 교묘히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어 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에서 처음으로 세계 바다의 이름을 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우리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겨 일본 대표만 참석하였기 때문에, 동해라는 명칭은 거론되지도 못하고 일본해로 명명된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