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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로비에 침몰한 동해

◆ 동해 강탈 사건
100여 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동해는 열강들의 무력 각축장이었다. 일본은 수천 년 간 언어.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한반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1853년 미국 페리제독 (M.C.Perry)의 개항요구(黑船의 충격)로 영국. 러시아.네덜란드.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서양문물의 거대함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힘(武)과 욕심(欲)으로 무장한 혈기왕성한 3류 사무라이들은 1868년 메이지 쿠데타를 통하여 정권을 찬탈하자 대외 침략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리하여 일본은 서양의 '푸들(개)'을 자처하여 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했으나 반대로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와는 철저히 단절을 시도하게 된다. 일제는 청일전쟁을 일으켜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힘의 우위를 확인하고 조선에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을사늑약 등으로 외교.군사권을 강탈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1891년부터 장장 오천 오백 마일의 대륙횡단 시베리아 철도를 착공 중이었다. 러시아는 이 시베리아 철도를 완공하여 부동항 확보와 대 아시아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때마침 청일전쟁에서 이어지는 시모노세키조약 등 일련의 사태에 러시아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하여 프랑스.독일을 끌어들여 삼국간섭을 시도하였다. 이는 19세기 말 동해를 둘러싼 한반도에서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청.프랑스.독일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미국.영국 등 8개국이 벌인 미니 세계 대전장이었다.

일제는 러시아의 무력 팽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양국의 긴장은 결국 1904년 ‘동해대해전’으로 불리는 러일전쟁으로 폭발했다. 일제는 이 전쟁을 위하여 독도를 무단 점령하여 망루와 해군부대를 설치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들의 힘만 믿고 대부분 죄수들로 구성된 짜르함대(또는 발틱함대)를 에스토니아 항구를 떠난 지 무려 9개월 만에 대한해협에 도착하는 무모한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러시아는 ‘동해대해전’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다. 청나라,러시아와 전쟁에서 이긴 일제는 국제무대에서 그 영향력은 커져 갔으며 1905년 미국과의 가쓰라테프트 밀약 등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국제 무대에서 묵인 받음으로써 ‘동해’의 운명은 한반도와 같이 하였다.

이리하여 1905년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하여 우리의 영토를 무단 강탈하였듯이 동해바다가 '한국해'에서 '일본해'로 강탈 표기되었다. 그 이전 일본은 태평양쪽 바다를 일본해라고 부르다가 19세기 이후 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굳어지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기 시작했고, 영어로 된 세계지도를 제작하여 전세계에 배포했다고 한다
.

IHO(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국제수로기구(IHO)는 해양명칭 표준화 등을 관장하는 국제기구로서 모나코에 본부를 두고 있다. 남북한 등 72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기구는 각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해도(海圖)를 통일하고 수로(水路) 사업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미국.영국.프랑스 등 18개국의 전문가들이 1919년 영국 런던에 모여 제1차 국제수로회의를 열어 바다지명의 표준화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1921년 24개국 회원으로 정식 발족한 국제수로기구는 회원국과 관련된 바다 이름을 제출하도록 했고 이를 모아 1929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초판을 발간했다. IHO에서 발간하는 이 책은 세계 바다의 명칭 결정과 지도 제작에 주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지만 각 나라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 나라가 필요에 따라 제각각 표시를 하면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부분 그 명칭을 따르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IHO는 1929년 '해양의 명칭 및 경계' 초판에 ‘동해’가 아닌 ‘일본해(Japan Sea)’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됐고, 제2판(1937년)과 제3판(1953년) 그리고 2003년 4차 개정판을 발간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문제는 초판 발행 당시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강점으로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가운데 2000여 년 간 사용해 오던 ‘동해’ 이름이 일본의 주장에 따라 ‘일본해’가 그대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가 힘이 없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동해’가 국제사회에서 ‘일본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고착화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굴러온 돌에게 박힌 돌을 빼내 주었음을 통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은 광복 후 1953년 IHO에 가입 신청을 하고 정식으로 가입한 것은 1957년, 처음으로 대표를 파견한 것은 1962년이었다. 1957년 국제수로기구에 가입했지만 ‘해양과 바다의 경계’개정판이 오랫동안 발간되지 않아서 동해 명칭 표기를 수정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더구나 국제수로기구와 함께 지명을 표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유엔에 회원국으로 참여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 활동도 펼 수 없었다. 1990년대에는 외교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발족한 ‘동해연구회’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과 학계 차원에서 관련 자료와 논거를 전세계에 알리는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후 국제수로기구 총회, 유엔 지명전문가회의, 동북아시아 수로위원회 등을 통해 ‘동해’개정 주장을 계속하여 왔다.

◆ UNCSGN
   (
U.N. Conference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
유엔 지명 표준화 회의(UNCSGN--U.N. Conference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 )란, 지명의 표준화.용어의 정의.표기 방법등에 대해 기술적 관점으로부터 논의를 실시하는 국제회의이며, 1967년 이후 5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 회의
한국은 1991년 남북한이 유엔 동시 가입한 후인 1992년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 회의에서 최초로 동해의 국제적 통용 명칭인 'Sea of Japan' 에 대하여 정부차원에서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동해명칭에 대하여 시정을 공식 요구했다. 동해가 일본에 의해 강탈 당 한지 60여 년 만에 일이다.

제7차 유엔지명표준화 회의
1998년 1월 19일 '제7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는 동해표기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양국이 동해 표기문제를 협의.해결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를 쟁점화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이 한국측의 협상 요구를 매번 거부하자 "특정국가에 속하지 않는 지역 명칭에 대해서는 분쟁당사국이 조속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협의할 것"을 촉구하는 ‘의장 토의 요약’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7차 회의에서는 남한측 대표단의 기조연설에 이어 북한도 일본해라는 표기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남북이 한 목소리로 일본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일본해'가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명칭이라고 전제하고, 'EAST SEA/SEA OF JAPAN'의 병기는 항해 안전상의 혼란과 지명표준화회의의 목적인 표준화에도 위배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정부는 한국측 입장을 지지했으며, '영-불 해협'의 병기사례를 들어 항해상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일본측 주장을 반박하였다.

제8회 유엔지명표준화 회의
2002년 8월 27일부터 9월 5일에 걸쳐 베를린에서 제8회 유엔 지명표준화회의가 개최되었다. 한국 및 북한 대표단은 과거 일본해에는 여러 가지 명칭이 사용되고 있던 것 등을 이유로, 과도적 조치로써 일본해와 동해(북한은 조선동해 East Sea of Korea)의 명칭을 병기하는 것을 요구했다. 이에 일본은 ‘이 회의는 개별의 지리적 명칭을 논의해야 할 장은 아니다’라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일본해 호칭에 관한 실제의 역사적 경위는 한국과 북한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일본해는 이미 국제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명칭이다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하여 베를린회의 의장이 “개별국가가 특정 명칭을 국제사회에 강요할 수 없다”며 ‘합의내용을 차기 회의에 보고토록’ 못 박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회의 기간중 변경된 신임 이사국들은 동해를 白紙로 남겨 두자며 투표 자체를 철회하여 일본해로 회귀시켜버렸다. 이는 유엔 지명표준화회의가 국제사회의 본분을 망각한 사태였다. 이는  일본이 간교하게도 유엔분담금이라는 무기로 유엔을 겁박한 결과였다.

한편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유엔 지명전문가회의(UNGEGN) 내 9개 실무위원회 중에서 그 동안 통과된 결의안의 이행 여부와 문제점을 평가해 개선 방향을 찾는 업무를 맡고 있는 ‘평가.이행 실무위원회’가 있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동양인 최초로 2002년부터 맡고 있는 서울대 이기석 교수는 2004년 4월 20일부터 29일까지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22차 회의장에서 최근 일본의 분위기를 다음과 전했다. “일본 정부가 세계 각국 주재 일본대사관을 통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려는 노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또 외국의 많은 민간 기업체들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 있지만, 미국 등이 국가 차원에서 만드는 지도는 일본의 외교력 때문인지 여전히 ‘일본해’로만 표기되어 있다”고 전하고 범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를 강조했다.

동해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
미국 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미국 오리건 대학의 알렉산더 머피 교수는 2005년 10월 6일 일본 국가명을 딴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머피 교수는 워싱턴 시내 코스모스 클럽에서 동해연구회(회장 이기석 서울대 교수) 주최로 열린 제11회 동해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에서 사전 배포한 논문을 통해 한-일간의 동해-일본해 표기 분쟁은 지명 표기 논란이 일고 있는 전 세계 27곳 가운데 가장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는 3대 지역에 속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가 지적한 3곳은 동해외에 이란과 인근 아랍 국가들간의 ’페르시아만(Persian Gulf)대 아라비아만(Arabian Gulf)’, 중국과 베트남간의 ’남중국해(South China)대 비엔동(Bien Dong)’ 표기 분쟁이다.

머피 교수는 국제수로기구(IHO)가 지난 1929년 세계 해도 초판을 발행할 당시 식민지 상태의 한국이 스스로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한 채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이후 국제 사회에서 여전히 ’일본해’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점을 상기시킨 뒤 “그러나 일본이 1990년대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지역적 지배 우위가 후퇴한 가운데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점점 더 중요한 일원이 되면서 동해 표기가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같은 사례로 세계적인 뉴스 서비스 검색기구인 렉시스-넥시스를 검색해 보면 ’동해’(East Sea)나 ’한국 동해’ (East Sea of Korea)라는 표기가 등장하는 점을 지적했다. 머피 교수는 이어 “국제적으로 공유돼 있는 바다에 대해 특정 국가의 명칭을 사용할 경우 항상 논쟁의 소지가 있다”면서 “특히 국가간 국력차가 존재할 경우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 지명위원회에서 활동중인 러시아국립대학의 블라디미르 티크노프 교수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 복수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국제 사례를 들면서 “각국의 사용 역사를 존중해 동해 명칭을 병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 리용 대학의 필리페 펠리티어 교수는 동해가 이미 프랑스 지리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이라고 말했으며,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의 헨리 스벤지 교수와 베이징 대학의 쳉롱 교수는 이들 나라의 역사적 문헌에 나타난 동해 표기 사례를 고증했다.

◆ 국제 분쟁 사례
현재 세계지도에서 2개 이상의 나라로 둘러싸인 바다의 명칭이 특정국의 명칭으로 표기되는 사례는 ‘일본해’ 밖에 없다. IHO는 1921년 출범 이후 바다명칭을 둘러싼 나라 간의 분쟁이 계속되자, 1974년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 하에 있는 바다 명칭이 한 이름으로 통용되지 않을 경우 조정된 새 이름이 나올 때까지 관련 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모두 표기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국제적으로 지명을 표준화하려는 노력을 총괄하고 있는 유엔 지명표준화회의는 1977년 제3차 총회에서 “복수의 주권 국가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하나의 명칭으로 통용되지 않을 때 새 명칭이 합의될 때까지 복수 명칭으로 표기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바 있다.

199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5회 동해 지명에 대한 국제학술 세미나’에서는 유엔 지명전문가회의 의장 피터 레이퍼(Peter E.Raper)가 “하나의 공통 지명에 합의하지 못한 경우에는 각 나라가 쓰는 지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유엔 결의안을 소개하면서, 지명을 정할 때는 무엇보다 ‘역사성과 대표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 North Sea
영국·프랑스·덴마크·네들란드.벨기에.노르웨이.독일로 둘러싸여 동해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오늘날 ‘북해(North Sea)’의 경우 ‘영국해(England Sea)’, ‘독일해(German Sea)’, ‘덴마크해(Denmark Sea)’ 등으로 제각각 불렸지만, 관련 국가들의 합의를 거쳐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1판에서 ‘북해’로 확정.
◎ Dover Strait or Pas de Calais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마찰을 빚었던 ‘도버해협(Dover Strait)’은 ‘도버해협· 칼레해협(Dover Strait or Pas de Calais)’으로 병기
◎ English Channel
‘영국해협(English Channel)’은 ‘영국해협 또는 라망쉬(English Channel or La Manche)’로 표기.
◎ Bay of Viscay or Gulf de Gascogne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바다인 ‘비스케이만(Bay of Viscay)’은 ‘비스케이만 또는 가스코뉴만 (Bay of Viscay or Gulf de Gascogne)’으로 표기.
◎ Arabia Gulf
Saudi Arabia 와 Iran사이 Str. Hormuz 안쪽의 바다이름은 과거 Persian Gulf였다. Persian는 과거 Iran의 나라 이름이다. Saudi Arabia, Kuwait 등 인접국가들은 자기들의 바다이름을 과거에 이 주변지역의 패권 국가였던 Persia 이름이 남아있는 것을 반대하여 Arabia Gulf로 변경 표기.

◆ 3류 사무라이 국제기구를 협박하다
한국정부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가 50년 만에 제4판을 발간하는 2003년을 앞두고 동해가 한국.북한.러시아.일본 등 4개국이 인접한 해역이므로 관련국 중 어느 일방의 국호에 따라 바다 명칭을 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취지로 IHO에 ‘동해’ 단독 표기가 아닌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倂記)를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했었다. 이는 한국이 국제수로기구 회원국 중 12번째로 분담금을 많이 내고 있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도 크게 향상됐으며, 그간의 노력 등으로 국제기구 회원국들이 ‘동해’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에 대한 신청이 정부의 외교적 대응으로써 적절했는지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동해’ 혹은 ‘조선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협상만 의식해서 미리 ‘동해.일본해’ 병기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저자세 외교로 비난 받을 만한 일이다. 협상 전략의 측면에서도 ‘동해’나‘한국해’의 단독 표기를 주장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유도함이 바람직했다고 본다.

한국정부와 ‘동해연구회’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단체는 2002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UN지명표준화 회의에서 IHO회원국을 대상으로 ‘일본해’ 단독표기에 대한 개칭 작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우리의 노력에 힘입어 IHO 이사회는 한때 이를 수용해 회원국의 투표로 결론을 내는 쪽으로 중지가 모아졌다. 그러나 일본은 그 동안 약 100년 간 거의 모든 세계지도에 통일되어 사용되다시피 한 ‘일본해’ 명칭이 그리 쉽게 바꿔지지 않을 것이라고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해 오다가 우리의 노력에 힘입어 개칭쪽으로 기울자 전국적인 관심사로 부각시켜 일본 전체의 협업체제(協業)로 돌입했다.

일본정부는 협상에 유리한 정보를 시의 적절하게 언론에 흘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남북한을 몰아세우는 여론을 극대화했다. 국민들은 또 이를 받아 불같이 남북한을 비난했다. 정치인들도 누군가가 종합 연출했다고 생각하긴 힘들 정도로 적당히 강온파(强穩派)로 나뉘어 밀어주고 당겨줬다. 그 중 일부는 ‘동해.일본해’ 보다는 제 3의 표현인 ‘청해(靑海), 녹해(Green Sea), 아시아내해, 극동해, 동아시아해라는 등의 표현이 어떠냐’며 일본이 일방적인 주장만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여유도 보여줬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국제여론이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되자 노골적으로 토론자체를 거부하고 IHO는 ‘정치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던 종래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일본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여론을 등에 업고 IHO가입국 들을 협박했다. 일본은 일본 특유의 이중성인 속(혼네-本音)과 겉(다테마에- 建前)을 완벽하게 숨기는 ‘무서운’ 일본국민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막강한 로비와 외교력으로 인해 IHO는 ‘일본해’ 단독 표기로 회귀되었다.

⊙ 2002년 8월 15일: IHO의 “해양과 바다의 한계”(S-23) 개정안에 일본해 호칭의
삭제(백지화)에 당황한 일본은 IHO에 강력히 항의하는 등 적극 대응 태도로 급속히 전환
⊙ 2002년 8월 15일: 일본 해상보안청(Japan Coast Guard) 인터넷 홈페이지 (
www.kaiho.mlit.go.jp) 첫 제목에 “일본해 호칭 문제에 대하여 (日本海呼稱問題について)”라는 자료를 올려, 일본해의 역사적 당연성을 주장하고, IHO 및 외국 해군의 수로부에 대해 그 동안 전개한 활동 상황 게시
⊙ 2002년 8월 20일: 외무성 인터넷 홈페이지(
www.mofa.go.jp)에 “외교 정책 Q&A: 최근 토픽스 ‘竹島(독도) 영유권 문제’,‘일본해 호칭 문제’에 관한 사항을 게재했습니다”라는 난을 설치하고 수시로 외무성 및 외국 주재 일본대사관과 총영사관이 각국 언론을 상대로 한 동해 표기 저지 활동의 내역을 게시.
⊙ 2002년 8월 29일: 독일의 베를린에서 개최된 UN지명표준화 회의에서 한-일 양국 대표단이 동해 명칭 문제로 외교적인 대결. 한국 대표단은 동해연구회 (이기석, 김신, 서정철 저)가 발간한 책자 “세계 지도상의 동해 East Sea in World Maps”를, 일본 대표단은 외무성이 작성한 팜플렛 “일본해 Sea of Japan”을 각국의 참가자들에게 배포하여 홍보.
⊙ 2002년 9월 20일: IHO이사국 변경.신임 IHO 집행부는 투표 중이던 S-23안 철회. 동해 표기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고,11월까지 회원국의 의견을 수렴한 후 2003년 6월까지 최종 확정안 마련 예정
⊙ 2002년11월14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렸던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12차 회의 사무국은 '동해-일본해' 병기방침을 철회. 한국과 일본의 분쟁에서 중립 선언하고 기존 ‘일본해’로 표기
⊙ 2002년12월16일: 12월 16~17일 양일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한-일 수로회의는 동해 명칭 문제로 일본의 일방적 파기선언으로 무산.

IHO 신임 이사국들이 ‘해양과 바다의 한계’(S-23) 개정안 중 ‘일본해 삭제안’을 회원국들의 의견을 묻는 찬반투표 진행 중에 투표를 중단시켜 기존 ‘일본해’로 회귀시킨 것은 국제 관례를 무시한 불법행위요, 국제기구가 일본의 야비한 로비에 동해를 침몰시킨 것은 국제기구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였으며, 국제기구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분명 IHO는 1974년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 하에 있는 바다 명칭이 한 이름으로 통용되지 않을 경우 조정된 새 이름이 나올 때까지 관련 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모두 표기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1977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 총회 때에는 “복수의 주권 국가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하나의 명칭으로 통용되지 않을 때 새 명칭이 합의될 때까지 복수 명칭으로 표기한다”는 결의안을 감안할 때 최소한 동해와 일본해로 병기되었어야 했다.

이는 일본이 IHO 예산의 20% 가량을 분담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 신임 이사국들을 협박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세계지도에서 2개 이상의 나라로 둘러싸인 바다의 명칭이 특정국의 명칭으로 표기되는 사례는 ‘일본해’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요구에 안하무인격으로 거절하고 지갑의 두께로 국제기구를 협박하는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적 영토확장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만약 미국의 ‘금붕어 똥’을 자처한 일본이 미국과의 분쟁이 있었다면 일본의 처사가 오늘과 같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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