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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되찾자

일본주장의 허구성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본해'라는 동해의 명칭을 원래 이름인 ‘동해’로 되돌리는 일은 우리로서는 '빼앗긴 이름 되찾기'라고 할 것이며, 국제적으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바른 역사 세우기'이며, 덧붙여 동북아시아의 올바른 국제관계를 구축하는 작업일 것이다. 우리의 ‘동해’ 주장에 일본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일원이기를 거부하는 이치에 맞지 않는 부당한 주장 일색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근거가 19세기 후반에 집중되어 있어 역사성을 들추면 들출수록 일본의 주장이 궁색해지자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IHO의 1974년 결의안이나 유엔지명표준화회의 1977년 제3차 총회의 결의안에서는 지명을 정할 때는 무엇보다 ‘역사성과 대표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 유엔 지명전문가회의 의장 피터 레이퍼(Peter E.Raper)를 소개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주장은 역사주의원칙과 국제관습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일본은 유엔에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IHO나 UNCSGN의 결의 사항 자체를 무시하고 회원국들을 겁박하는 처사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일본이 동해 명칭 개정 작업을 거부하는 이유를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의 ‘동해’ 표기에 대하여 본다면 ‘동해’란 명칭은 세계에는 많다. 그러니 한국이 주장하는 대로 ‘동해’로 정하면 혼란이 생긴다.
2) 세계지도에는 “Sea of Korea”는 찾아볼 수 있지만 “East Sea”는 없다.
3) 한국측은 20세기 말이 되어서 비로써 ‘East Sea’로 불법적으로 변경시키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해’는 반세기 전부터 일반화된 표기이다. 서양에서는 그렇게 되여 있다.
4) ‘일본해’는 오랜 역사를 가져 국제적으로 고정화된 단일 명칭이므로 변경할 수 없다.
5) 한국측의 주장을 인정하면 다른 나라들이 이와 같은 자기 중심적요구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IHO의 목적인 ‘수로도지(水路圖誌)의 최대한의 통일’에 어긋나게 된다. 그러니 항해 안전의 확보를 위하여서는 ‘일본해’표기의 지속성이 요구된다.
6) 한국측은 ‘동해’ 표기 문제만 주장하고 다른 주변 바다들인 ‘서해’, ‘남해’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은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동해’ 표기에 대하여 제기하지 않고 있다.
7) 일본은 만약 IHO지침서에서 ‘일본해’ 표기로부터 ‘동해’표기로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일본국내에서는 ‘일본해’를 ‘동해’로 부르지 않겠다.
8) 해양이름을 섬을 중심으로 호칭해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바다에는 ‘동중국해’, ‘남중국해’가 있다. 이 두 바다를 베트남.중국은 ‘동해’라 부르고 있다. Baltic Sea도 Estoniya語로는 ‘서해’이며 Sweden에서는 ‘동해’로 부르고 있다. 영국·프랑스·덴마크·독일 등으로 둘러싸여 동해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바다를 ‘북해(North Sea)’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으며, 바다에 면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자국의 주변바다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많다. 지금까지 지역적인 명칭을 사용하여 혼란이 생긴 바도 없다.

러시아는 IHO 사무국에서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4판 최종안을 회람시켰을 때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은 채 동해로 표기되든, 일본해로 표기되든 간여하지 않겠다는 중립적 입장을 보였다. 이는 러시아의 석유개발 및 가스관 설치에 따른 약 100억 달러 지원과 관련이 있어 러시아는 일본을 자극하지 않을려는 의도가 배경에 깔려있었다.

일본은 분명 IHO 및 UN의 일원으로써 IHO나 UNCSGN에서 결의된 내용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러한 결의를 지키지 않겠다고 생떼를 써고, 협의 조차 거절하는 것은 한국.중국 등 아시아를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라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가 말한 대로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악우(惡友)’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평균적인 생각이 아니든가.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가 주창한대로 탈아입구(脫亞入歐)하여 ‘금붕어의 똥’처럼 미국의 꽁무니만 따라다니겠다는 건가. 일본은 여기에 더 나아가 “한국이 동해는 주장하면서 왜 서해는 주장하지 않는가”라고 어린애와 같은 비열한 주장을 하고 있다. 서해는 중국에서 부르기를 ‘황해’로 칭하고 있다. 분명 이는 국가의 명칭이 아님을 밝히고, 일본은 덩치에 걸 맞는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학생보다 못한 한국 정부

한국정부와 민간단체의 활동으로 그 동안 국제적으로 많은 성과가 있었다. 프랑스 수로국은 일본의 로비로 막판에 번복하기는 했지만, 제16차 국제수로기구(IHO) 정기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주장한 '동해.일본해' 병기방식에 지지 입장을 표명하였었다. 또 세계지리전문지인 GEO는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특집호를 내면서 동해만 단독 표기했고,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거주하는 한국인 지질학자 김영식씨가 USA

투데이 앞으로 항의서한을 보내 정정을 요구하자 ‘동해(East Sea).일본해(Sea of Japan)’로 함께 표기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와 같은 미국의 유력 일간지나 일본의 지도 전문출판사인 쇼분샤(昭文社)는 2002년 1월 발간한 ‘세카이치즈쵸 (世界地圖帳)’ 세계지도 책자에서도 ‘동해(東海)’와 ‘일본해(日本海)’를 병기(倂記)하였다.

그러나 동해 표기 개정 활동에 있어 정부나 동해 관련단체 학자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가장 일등 공신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바로 알리기 운동’을 벌여온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NK :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다. 반크는 주로 한국이미지가 세계와 연결되는 접점인 외국의 외신뉴스, 외국교과서, 인터넷을 감시하고 '동해는 일본해',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 일본에 점령', '일제식민지는 한국발전에 기여' 등 틀린 외국교과서 내용을 바로잡는데도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그런데 반크(www.prkorea.com)의 구성원은 놀랍게도 초중고학생과 주부 등 네티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풀 뿌리와 같은 존재이지만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반크는 미국 CIA, 유엔 등 세계 300여 개 기관 및 단체에 동해표기의 정당성을 알리는 메일을 꾸준히 보내 전세계 많은 사이트로부터 '동해'를 병기하도록 하는데 적지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의 교육기관과 관공서, 유명 포털사이트에 지도를 공급하는 미국 최대의 지도출판사 Worldatlas.com, 영국 Lycos, 미국 Yahoo, WHO, 유니세프 등 세계 수많은 기관과 사이트가 포함되어 있다. 반크의 승리는 한국의 새로운 힘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항의와 시위 대신 '동해' 관련 정보를 끊임없이 보낸 새로운 집단 설득 방식도 돋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몇 해 전 “그깟 e-메일 몇 통 보내는 것이 무슨 민간 외교냐”는 태도를 보이며 그 동안 반크의 노력을 애써 폄하했다. 일본정부는 동해를 담당하는 관료를 우대하고 사명감도 부여하는데 반해 우리 정부는 이 단체에 대해 그 동안 지원하던 정부보조금 마저도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정부가 못하는 일을 어린 학생들이 하고 있다면 격려는 못해줄 망정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동해’ 표기 문제와 관련해 그 동안 우리 정부가 보인 행태는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동해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고사하고 일본측의 로비에 밀려 제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는 ‘일본해’를 바꾸려는 입장에서 공세적 활동을 할 경우 일본측의 반작용을 불러와 역공세를 당할 것이라며 조용한 활동을 요구했다. 협상전략에서도 ‘동해’ 또는 ‘한국해’로 주장하여 일본을 협상테이블로 끌어 들어야 했음에도 애초부터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하는 저자세 외교는 비난 받을 만한 일이었다. 외무부의 인터넷 사이트 하나만 보더라도 동해관련 홍보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엄연한 공개적 장소인 인터넷 공간에서조차 몸을 사리는 모습은 그 밖의 외교현장에서 적극적 활동을 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반크가 한국인에게 되찾아준 것은 ‘동해’라는 이름만이 아니다. 신세대 네티즌들의 외교적 승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줬을 뿐 만 아니라 신선한 감동이자 미래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나약한 잡초일지라도 꾸준히 생명력을 행사하면 단단한 아스팔트라도 뚫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들의 교훈이다. 아직 국제수로기구(IHO)에서는 일본해 명칭만을 표기하고 있어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동해를 찾아 오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에서도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사명이 있지만, 이 ‘풀뿌리’를 밑동 삼아 정부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면 더욱 큰 결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역사를 지배한다
UN은 1998년을 '세계 해양의 해'로 지정할 정도로 21세기는 해양이 갖는 의미가 대단히 크며, 바다는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위대한 大路다. 역사를 되돌아 보면 해양을 지배하는 진취적 기상을 소유한 국가가 세계 역사를 지배하여 왔다. 세계사적 진운(進運)은 바다를 누가 장악하느냐와 관련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왔다. 지중해를 장악한 로마의 Pax Romana에서 대서양을 장악한 영국의 Pax Britannica로 옮겨갔고, 대서양 중심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시에 장악한 미국 중심의 Pax Americana로 옮겼다. 다시 21세기를 맞아 동아시아 태평양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진운의 중심에 중국이 Pax Cinica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고, 러시아가 넘보고 있다.

러시아는 18세기 이전까지 내륙국가로써 250년 간 몽골족의 지배를 받은 2류 변방 국가였다. 그러나 1700년 표트로 대제(大帝)는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발트해를 장악하고 있는 북구 최강의 군사대국 스웨덴과 국가 진운을 건 항구 확보 전쟁에 나선다. 1712년 표트로 대제는 바다 근처 페테르부르크로 천도(遷都) 단행과 21년간에 걸친 대북방(大北方)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항구 확보에 성공한다. 항구 확보가 되자 페트르부르크는 유럽으로 나아가는 창(窓)이 되어 오늘날 러시아가 세계 강대국의 하나로 성장하는 기틀이 되었다.

또 구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태평양 국가’를 선언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북아의 무역 및 산업 전진기지로 삼아 동해로의 진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 동해의 인접을 상실했지만 1995년 이후 두만강을 통한 동해 출해권(出海權)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도 나진·선봉에 자유 무역지역을 설정했다. 이처럼 각국들이 동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동해를 지배하는 국가가 향후 다가오는 동아시아 진운에 있어 세계역사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는 숙련된 노동력 및 일본과 대륙을 연결할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을 가진 남북한, 자본과 기술이 앞선 일본, 자원을 보유한 러시아, 노동력과 시장을 겸비한 중국 등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교합(交合)하는 바다로써 동북아 경제의 중심 축으로 떠오르는 21세기 신실크로드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요동치고 있는 중심의 바다가 바로 동해인 것이다. 따라서 동해는 국제적으로 정치.경제.문화적 측면에서 크게 변하고 있는 바다이다.

한반도 내에서도 해양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 가장 강성한 국가를 형성해 왔다. 고구려는 7세기 때 비사성으로 쳐들어 오는 수나라 함대를 서해 앞바다에서 일거에 무찔러 수나라를 멸망케 하고 동아시아의 패권자가 되었다. 이 때 중국역사는 질병과 태풍으로 패하였다고 기록하여 수치심을 애써 감추기 위하여 비굴함을 자처하였다. 9세기 때에는 신라 장보고가 동아시아 해상을 장악하고 해상무역을 통하여 강성한 신라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까지 일본신사에서 해신(海神)으로 모셔져 추앙 받고 있다. 또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선대 때부터 해상무역으로 바다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이순신장군 역시 바다를 지배했기 때문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이때 이순신장군은 세계전투 역사에서 23전 23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세계적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본 해군제독 도고 헤이아치로(東鄕平八郞)는 러시아와 일전을 앞두고 자신의 함대에서 이순신장군에게 승리 기원제를 올렸다. 동해대해전에서 승리한 그는 영웅이 되어 일본에서 4대 군신중 한명이 되었다. 전쟁영웅이 된 도고는 스스로 “자신과 영국의 넬슨제독은 비교할 수 있지만 이순신장군과는 비교할 수 없다”며 이순신장군을 극찬했다. 그리고 일본해군은 지금도 ‘이순신 진혼제’를 매년 올린다.

이와 같이 세계적차원이나 지역적차원에서 보더라도 해양 지배 여부에 따라 국가 진운이 결정되어 왔다. 이 점 우리는 명심하고 Sea Power를 크게 향상시켜 2000년 간 사용한 우리의 ‘동해’를 되찾아야 한다. 반대로 일본은 100년 전 러시아와 동해 대해전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제국주의 야욕을 불태워 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동해를 잃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사회는 오직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
적절하지 않는 지명은 국제관계상 이름을 변경하는 것이 국제 관례다. 많은 세계지명이 과거지향보다 미래지향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관계국들과 협의하여 변경되어 왔다. IHO와 UN는 분쟁지역의 명칭은 병기하도록 결의했고 IHO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동해·일본해’ 병기를 일본에 권유한 적이 있다. 또 유엔 지명전문가회의 의장 피터 레이퍼(Peter E.Raper)는 지명을 정할 때는 무엇보다 ‘역사성과 대표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사적인 사료에서 보듯이 수천년간 일본은 동해에 대해 이름을 갖지 못하다가 불과 100여 년 전에 'Sea of Japan'를 가졌다. 역사성과 대표성을 따진다면 ‘동해’로 변경되어야 하는 것이 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나 일본은 소아적 섬나라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기구에 많은 재원을 분담하는 두꺼운 지갑을 무기로 그 누구의 말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하물며 한국과 아시아인들을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악우(惡友)’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일본은 한국과 협의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일본 국민들의 평균적인 본심이며, 지갑 두께를 배경으로 한 오만 방자한 국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일본인들을 속과 겉이 다른 비열한 섬나라 국민으로 만들었던 것은 바로 근대국가의 기틀을 형성하기 시작한 메이지쿠데타였다. 그것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칼등을 쓰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 같은 문과 무를 겸비한 1급 사무라이보다 권모술수와 무자비한 잔인함을 무기로 상대방을 제거하는 3류 무사인 이토오히로부미와 사이고 다카모리 같은 자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시바 시로우. 후쿠자와 유키치와 같은 속과 겉이 다른 이중 인격자들이 일본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를 부시 미대통령의 애완견으로 묘사한 그림을 들고 가두행진하는 일본시위대(조선일보)


이리하여 일본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비열한 3류 사무라이 기질이 보통적 사고방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보다 힘이 강한 미국에 대하여는 개를 자처하고 있지만 나머지 국가나 유엔의 기구에는 안중에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간나오토(菅直人) 前민주당 대표가 “일본은 ‘금붕어의 똥’처럼 미국의 꽁무니만 따라다녔다” 고 비판하자 "일본에 위기가 닥쳐도 유엔에는 지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며, 일본은 혼자서 평화와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만큼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일 안보조약을 통해 동맹을 맺고 있다"고 강조한 고이즈미 일본수상의 답변에 함축되어있다.

이러한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로지 힘뿐이다. 한국정부는 늘 ‘총력외교(總力外交)’를 펼치겠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동해’나 ‘한국해’ 단독 주장보다는 ‘동해.일본해’ 병기를 제안하면서 일본을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며 조용한 외교를 부르짖고 있다. 이는 우리의 국력이 일본 보다 열세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리 알아서 취한 저자세 외교의 표본이다.

또한 정부가 실제 할 수 있는 일에 비해 국민의 기대가 너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관계자는 “일본이 많은 나라에 막대한 자금을 원조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을 이해하는 나라도 막상 투표 때는 일본의 눈치를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 국제사회에서는 오직 국력 ‘달러의 힘’ 밖에 없다. 동해 표기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상설조직 설치,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논의 무대 마련, 전문가 양성,관계자 우대 및 자긍심 고취, 북한.러시아.중국 등 관계국들과의 협조체제 구축 등도 필요하겠지만 냉엄한 국제사회의 질서 속에서 정부가 총력외교를 펼칠 수 있도록 국력을 키우는 데 국민의 역량을 총 집결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우리를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악우’로 비하하면서 끊임없이 멸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의 제품을 무분별하게 구입하여 사랑하는 후대에 이 멸시를 대물림하고 있다. 2004년 한국이 일본에 갖다 바친 대일(對日)무역수지 적자는 우리나라 총흑자 297억 달러의 84.2%에 해당하는250억 달러 원화로 약26조 원에 이른다.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대일본 누적 적자가 무려 2천 4백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는 우리가 피땀 흘려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에 종자씨를 더하여 일본에 갖다 받친 꼴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일본에 준 선물은 반드시 비수가 되어 되돌아왔다. 수천년간 무지몽매한 일본열도에 정치.경제.문화.언어.문자 모든 것을 전수했지만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비수로 돌아왔다. 또 조선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막부의 권위를 인정 받기 위하여 경쟁을 하듯 조선통신사를 초청하였지만 이는 한국을 강제 합병이라는 비수로 돌아왔다. 그 이후 일본은 아시아침략전쟁 패전으로 피폐해진 일본경제에는 한국전쟁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수 십년 간 대일무역적자로 일본에 건넨 달러는 IMF라는 비수로 돌아왔다.

그렇다. 역사는 분명 되풀이 된다. 이 시간 무분별한 일본문화지향, 일본제품 구매는 혼이 없는 큐리오나 아시모(로봇)를 양산하게 한다. 피가 흐르지 않는 이들은 사랑하는 아들딸의 폐부를 파고드는 칼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수천년 간 사용하던 동해(Sea of East)가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국제적으로는 일본해(Sea of Japan)로 바뀌어졌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국제사회에서는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거 지배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국력이 강할 때 일본은 우리의 협상에 응할 것이지만 우리가 역량을 합치지 못하고 분산된다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를 수천번 아니 수만 번 외쳐도 2000년 간 지켜온 푸른 바다 ‘동해(東海)’는 우리에게는 없다. 세계 각국의 지도에는 오로지 ‘일본해(Sea of Japan)’라는 문패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천추에 누가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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